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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특집

[한국 천주교회사 특별 기획전] (2) 2막. 새로운 세상을 찾아 - 자생 교회의 탄생

by 세포네 2017. 8. 6.

진리의 목마름 찾아 나서 탄생한 신앙 공동체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자생성이다. 천주교의 전파는 일반적으로 선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한반도에 교회가 탄생할 때까지 어떤 선교사도 조선 땅을 밟은 적이 없었다. 이 땅의 선조들은 서구의 낯선 종교인 천주교를 책을 통해 스스로 공부했고 그 속에서 신앙을 찾았다. 이처럼 자생으로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것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1. 주어사 강학 - 새로운 사상의 모색

1779년 경기도 여주 주어사에서 조선의 진보 학자들이 마련한 강학이 열렸다. 실학파로 불리는 권철신, 이벽, 정약종, 정약용 등의 젊은 유학자들은 책을 읽고 토론하며 조선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그들이 읽은 책에는 서양의 학문인 천주교 서적도 포함돼 있었다.

▲ 「천주실의」는 동양문화권에 가톨릭 신앙을 심어 준 대표적인 책이다. 사진은 「천주실의」 한글본으로 절두산순교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천주실의」(天主實義)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가 1593~1596년 한문으로 저술한 가톨릭 교리서. 「천주실의」는 ‘하느님에 대한 진실된 토론’이라는 뜻으로, 유교 전통의 동양 문화권에 가톨릭 신앙을 심어 준 대표적인 책이다. 이 책은 17세기 초 조선에 전래돼 많은 지식인에게 읽혔다.

▲ 칠극은 천주교인들뿐 아니라 조선의 많은 유학자들의 수양서로 사랑받았다. 사진은 절두산순교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칠극」.


「칠극」(七克)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 신부가 1614년 한문으로 저술한 가톨릭 수양서다.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 즉, 오만ㆍ질투ㆍ탐욕ㆍ분노ㆍ식탐ㆍ음욕ㆍ나태와 이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 덕행 즉, 은혜ㆍ겸손ㆍ절제ㆍ정절ㆍ근면ㆍ관용ㆍ인내를 설명한다. 이 책은 1779년 주어사 강학에서 연구, 검토됐다.

▲ 「주교요지」는 한글로 된 최초의 가톨릭 교리서로 필사본뿐 아니라 활판본으로 널리 보급됐다. 사진은 절두산순교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1800년도 필사본 「주교요지」.


2. 자생 신앙 공동체 탄생

주어사 강학 이후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천주교 신앙 운동이 자라났다. 이승훈은 연행사를 따라 북경에 가서 1784년 북당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이들은 동료들에게 세례를 줬다. 어떤 선교사도 들어가지 못한 나라, 조선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진 순간이었다. 단 한 명의 사제도 없었던 이 땅에서 평신도 스스로 가톨릭 신앙 공동체를 설립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3. 인간 중심으로 시작하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신분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엄격한 차별이 존재했다. 하지만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은 신분을 뛰어넘어 함께 어울려 기도하고 평등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처럼 인간 존중과 평등을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사회적 복음으로 실천했다.

▲ 이승훈은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조선인이다. 사진은 황창배 화백이 그린 이승훈 초상화. 주교좌 명동대성당 소장.


「주교요지」(主敎要旨)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쓴 최초의 한글 가톨릭 교리서.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은 천주의 존재, 사후의 상벌, 영혼의 불멸을 밝히면서 이단을 배척하는 일종의 호교서(護敎書)이고, 하권은 천주의 강생과 구속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 황사영(알렉시오)은 「주교요지」를 “‘어리석은 부녀나 어린아이들도 책을 펴 보기만 하면 환히 알 수 있고, 한 군데도 의심스럽거나 모호한 데가 없다”고 했다.

교회 설립 직후 한글 교리서의 간행과 보급은 학문으로 시작된 천주교가 신앙으로써 민중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천주교회사 특별 기획전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은 9월 9일부터 11월 17일까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브라치오 디 카를로마뇨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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