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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교회의 보물창고

(23) 런던 ‘성 바오로 대성당’과 ‘새천년 다리’

by 세포네 2017.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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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양식의 성전… 큰 규모와 화려함 뽐내

 

성 바오로 대성당과 새천년 다리.
 

문화의 도시 런던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뿐 아니라 크고 작은 성당들이 산재해 있다. 그 성당들은 마치 작은 박물관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성당에는 교회와 관련된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큰 성당에는 지하나 부속 건물에 박물관을 만들어 교회의 오랜 역사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문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복음을 선포하는 문화 선교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런던에는 가톨릭과 성공회 성당들이 많은데 가장 돋보이는 곳이 성공회 소속인 ‘세인트 폴 카테드랄’(St. Paul’s Cathedral), 즉 ‘성 바오로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큰 규모와 화려함 때문에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과 자주 비교된다.

성 바오로 대성당은 영국의 건축가이며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1632~1723)의 설계로 1675년 착공해 1711년에 완공했다. 바로크 양식의 석조 건물인 이 성당은 길이 158m, 폭 75m, 높이 111m이다. 이처럼 큰 성당을 불과 35년 만에 완성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설계한 런던의 52개 성당 가운데서 성 바오로 대성당은 대표적 건물로 꼽힌다.

이미 이곳에는 오래 전에 여러 차례나 지어진 성당들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교회는 604년에 목조로 지어졌는데 사도 바오로에게 봉헌됐다. 이 성당은 7세기 말에 석조 건물로 다시 건립됐지만, 화재로 소실되자 재건축 과정을 통해 규모가 더욱 확장됐다. 1300년에는 고딕 양식의 (구)성 바오로 대성당이 있었지만 1666년 런던 대화재 사건으로 전소되고 말았다. 1675년 크리스토프 렌의 설계로 공사가 진행돼 현재의 대성당이 완공됐다. 성당의 건축이나 역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는 지하 경당과 박물관에 잘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 성당은 바티칸 대성당처럼 언덕이 아니라 시내를 관통하는 템스 강변 평지인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의 건축 규모에 비해서 앞 광장은 매우 협소하다. 성당의 외부 계단을 내려오면 동상이 서 있는 좁은 광장이 있고 그 둘레에 차도가 있다. 도로 주변에도 상가가 밀집해 있어 성당 전면을 제대로 조망하거나 광장을 거닐면서 명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광장은 큰 건물이 숨을 쉴 수 있는 허파와 같지만 주변 건물에 갇힌 이 성당은 매우 답답해 보인다.

 

성당 내부의 제단 주변 모습.
 

런던시와 교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에 성당과 마주한 템즈강에 보행자 전용인 새천년 다리(Millennium Bridge)를 놓았다. 강 건너편에 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에서 대성당의 남쪽 면으로 향하는 다리를 놓아 숨통을 열어 놓았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대성당에 다다르게 되는데 밑에 흐르는 물은 세례수처럼 사람들의 죄를 씻어 주는 것 같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다리처럼 내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좁은 광장의 문제를 새 다리로 해결하면서 오래된 성당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바로크 양식의 이 성당은 내·외부가 모두 예술작품처럼 화려하게 장식돼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곳인지를 이 같은 예술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1890년에 윌리엄 리치몬드(William Richmond)가 성당 내부를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헨리 무어의 ‘성모자상’.
 

또한 제단 가까이에는 영국의 대표 조각가인 헨리 무어(Henry Moore·1898~1986)가 만든 성모자상이 있다.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은 이 조각은 우리가 흔히 보던 구상 작품이 아니라 반추상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이상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완전 추상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를 자신의 온 몸으로 감싸며 안아 주신다.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룬 모습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미 교회의 유리화에는 성모자상과 같은 반추상이나 완전 추상적인 작품이 많이 장식되어 있다. 교회 미술은 한 시대의 것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의 것이나 받아들인다는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성 바오로 대성당과 연결된 새천년 다리를 걸으면서 성당과 광장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다리를 만들어 좁은 광장의 문제를 해결한 지혜로운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성당 주변의 광장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교회 건물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은 성당을 돋보이게 하고, 성당은 광장을 돋보이게 한다. 따라서 성당 주변의 마당이나 정원은 성당을 관리하는 것처럼 온갖 정성을 다해 가꾸며 보존해야 한다. 그곳에서 사람뿐 아니라 성당이 숨쉬기 때문이다.

교회 주변에 빈터가 있더라도 그곳에 건물을 짓거나 주차 타워를 만드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성당 가까이에 높은 건물을 짓는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성당을 가리고 숨 막히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당 주변에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한다면 먼저 현재 공간을 효율적으로 가치 있게 사용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평가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건물을 짓게 되면 성당 자체가 매몰되고 질식하게 된다. 그러면 성당의 건물도 빛을 잃게 되고 사람들은 떠나간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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