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건립된 영국의 대표 성당
런던 시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성당이 많다. 그 가운데는 성공회 성당도 있고 가톨릭 성당도 있는데 외관상으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면 두 교회의 성당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성당은 화려한 깃발 등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가톨릭교회의 성당은 그런 장식 없이 검소한 모습을 보여준다.
헨리 8세(1509~1547년)가 가톨릭교회와 결별하고 성공회를 설립한 후, 가톨릭의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았다. 이런 제약은 오랫동안 지속됐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성공회와 교황청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가톨릭 성당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Cathedral)이다. 웨스트민스터 지역에는 왕궁과 국회의사당 등 정부 기관이 있는데 성당도 그 근처에 있다. 이 성당은 960년에 고딕양식으로 건립된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헛갈린다는 사람들이 있다. 성공회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종교적인 예식뿐 아니라 영국 왕실의 대관식과 장례식 같은 주요 행사들이 열리곤 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터는 토트힐 필드 교도소 자리였는데, 교회에서 1885년에 구입했다. 대성당은 존 프란시스 벤틀리(1839~1902년)가 설계했으며 1895년에 착공해 1903년에 완공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사정으로 내부 장식을 마무리하지 못해 봉헌식은 1910년에 거행됐다. 네오 비잔틴(Neo-Byzantine) 양식의 이 성당은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건축돼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 대부분이 로마네스크나 고딕 양식인 것과 비교하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은 매우 특이하다. 성당 입구의 반월형 아치와 기둥들도 벽돌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길이는 110m이며 폭은 47m이고, 외부 종탑의 높이는 87m에 이른다. 외부는 붉은 벽돌과 흰 대리석으로 꾸며졌으며, 내부의 기둥과 벽은 형형색색의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특히 제단 주변과 여러 경당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꾸며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여러 경당 가운데서 큰 주목을 받는 곳은 제단 오른쪽의 ‘마리아 경당’이다. 성모님께서 늘 기도하셨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아침저녁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작은 경당에 불을 밝히면, 순식간에 환히 빛나는 천상의 공간으로 변화되는 것 같다.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과 관련된 주요 장면들이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그 가운데 한 작품이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는 소년 예수’다(루카 2,41-52 참조). 배경의 황금빛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불변의 고귀한 진리임을 알려준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손을 펼치고 있다. 소년 예수는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손을 들고 있으며, 그 앞에 선 율법 교사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라 손을 들어 올린다. 마리아와 요셉은 잃었던 예수를 발견한 기쁨에 손을 벌리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도 유럽의 큰 성당처럼 지하에 보물실이 있는데, 성당이 완성된 1903년에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성인의 유해, 교회 유물인 성작과 성반, 제의 등이 전시돼 있다. 또 종탑 위 전망대에 올라가면 런던 시내를 잘 내려다 볼 수 있다. 대성당은 지상의 성당과 지하의 보물실, 옥상의 종탑을 사람들에게 다 내어준다.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성당은 도심의 대로변에 있기 때문에 현대 건물처럼 삭막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대성당 규모에 비해 마당이 좁아, 정원이나 조경수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이런 공간의 한계를 건축가 벤틀리는 성당 건물 장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외부의 붉은 벽돌 사이를 흰 대리석으로 장식해 단조로움을 피하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성당 마당도 차도와 직접 연결됐지만 성물방과 서점 같은 교회 부속 건물을 낮게 건립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건물의 외관으로 호기심을 자극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를 보면 성당이나 교회 건축물의 외부는 상품의 포장과 같아, 내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와서 성당을 전통적인 양식으로만 지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당 건축뿐 아니라 담벼락이나 철제 장식, 대문이나 가로등 하나라도 성당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도시에 있는 성당은 주변 건물이나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런 성찰이 부족하면 성당 건물이 지역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성당은 사람뿐 아니라 이웃 건물도 품어 주면서 아름답고 성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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