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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아일랜드의 사도 성 파트리치오

by 세포네 2017.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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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폴로, <성 파트리치오 기적>, 1746년경, 캔버스에 유채, 시립박물관, 파도바, 이탈리아

 

 

 아일랜드에서 성 파트리치오(Patrick, 385년경-493) 축일인 3월 17일은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ʼs day)로, 이날 사람들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초록색 의상을 입고 클로버를 가슴이나 모자 등에 붙이고 행진을 벌인다. 그 까닭은 어느 날 성인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클로버 한 포기를 손에 들고 “보는 바와 같이 이것은 하나의 클로버이지만 끝은 세 잎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도 한 분이시지만 그의 위(位)는 셋으로 되어 있다.”라고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 파트리치오는 385년경 스코틀랜드 기르바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16살 때 아일랜드의 해적이 스코틀랜드에 침입해 부모님의 농가를 약탈했고, 성인은 포로로 아일랜드로 끌려가 6년 동안 목동으로 노예생활을 했다. 가까스로 탈주에 성공하여 고향으로 되돌아온 성인은 곧 후회했다.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목격한 이교도들의 불쌍한 영혼의 상태가 성인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아 장차 사제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자 결심했다. 그리하여 성인은 사제가 된 후, 자발적으로 아일랜드로 돌아가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소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만 있었고, 주민 대부분이 우상숭배의 미신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성인은 사람들에게 참된 종교와 교회의 진리를 설명하고 복음전파에 노력했다. 성인은 더욱 동분서주하여 성당, 수도원을 세우고 사제를 양성하여 아일랜드 전역을 성공적으로 복음화하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인은 밤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첫 번째 부분에는 시편 백 편을, 두 번째 부분에는 시편 나머지 부분과 기도를 올리고, 세 번째 부분에는 돌을 베개 삼아 수면을 취하며 쉬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도 생활과 더불어 성인은 아일랜드 전 지역을 두루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면서 덕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성인은 기도로 힘을 얻기 위하여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대축일까지 40일 동안은 단식하며 고행을 하였고, 하루에도 수백 번이나 엎드려 기도하였다고 한다.

 주교까지 된 성인은 이교도들을 회심시키고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하느님의 섭리로 기적들을 행했다. 화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 1696-1770)는 이탈리아의 ‘파도바’ 라는 도시에 있는 산 조반니 디 베르다라 성당의 제단화에서 이러한 성인의 행적 가운데, 많은 사람에게 설교하고 기적을 행하는 성인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주교 복장을 한 성인은 대리석 기단에 올라 왼손을 높이 들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성인을 둘러싼 사람들은 제 각각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오른쪽에 지팡이로 몸을 지탱한 채 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한 사람은 몹시 병들어 보이고, 그의 뒤에 있는 젊은 여자 둘은 성인의 행동과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

 왼쪽에 붉은색 옷을 입은 청년은 옆에 있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은 채,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성인은 병든 사람과 악마에 사로잡혀 중풍에 걸린 병자를 치료하고 있다. 그림에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기록에 의하면, 성인은 지팡이로 바다에 있는 독사들을 쫓아내었고, 성인의 설교를 입증해 보이기 위하여 큰 구멍을 파서 연옥의 불길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전한다.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성 파트리치오 주교의 『고백록』에서

윤인복 소화데레사 교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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