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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용감하고 복된 순교자 성녀 페루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by 세포네 2017.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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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고타르디, <성녀 페루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의 순교>, 18세기, 캔버스에 유채, 177x230cm, 파엔차 회화관, 이탈리아


 202년 로마 황제 셉티모 세베로(193-211)가 유다교 및 그리스도교에 대한 금지령을 공포한 후, 그리스도교는 강한 압박을 받았다. 그 가운데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o)에서 행해진 박해는 그 가혹함이 극에 달했다. 카르타고의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에 따르면, 203년에 법관 미누치오 앞에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 3세기)와 성녀 펠리치타(Felicitas, 3세기)와 다른 예비자 세 명, 레보카토, 사투르니노, 세쿤둘, 그리고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던 사투로가 체포되었다. 카르타고의 귀족인 성녀 페루페투아는 당시 22살로 이미 어린 아들을 가진 여자였고, 성녀 펠리치타는 페루페투아의 하녀로 임신 8개월이었다. 이들은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지만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감?*?감금되었다. 이때, 성녀 페루페투아의 아버지가 감옥을 방문했다. 이교도인 성녀의 아버지는 딸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배교할 것을 설득하고, 연로한 자기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배반해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성녀 페루페투아는 성녀 펠리치타를 비롯해서 함께 체포된 다른 사람들과 감?*【?세례를 받았다.

 화가 조반니 고타르디(Giovanni Gottardi, 1733-1812)는 두 성녀의 순교 이야기 가운데 성녀 페루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가 재판관 앞으로 끌?*?장면을 제단화로 제작했다. 18세기 이탈리아 북부 회화의 고전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는 건축 배경에 재판장은 높은 기단의 의자에 앉아 판결을 내리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성녀 페루페투아의 아버지는 한 손에 딸의 어린 아들을 안은 채,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성녀의 아버지는 딸이 재판관 앞으로 끌려간 바로 직후, 또다시 자기 딸에게 “늙어서 나이가 많은 나나 철도 안들은 손자가 불쌍하다고 생각되면 제발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눈물을 머금고 애원했다.

 왼쪽에 곱게 의상을 갖춰 입은 성녀 페루페투아는 백발이 다 된 아버지와 사랑스러운 아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성녀의 표정과 동작에는 혈육의 정과 그것을 완강히 물리치고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가 동시에 담겨있다. 성녀는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오롯이 섬기겠다는 굳은 신앙으로 부모와 자녀를 눈앞에서 떠나보내고 있다. 성녀 페루페투아의 뒤에는 성녀 펠리치타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체포 당시 임신 중이었던 성녀 펠리치타는 다른 순교자들과 한 곳에 갇혀 있지 않았으며, 규정에 의해 아이를 출산한 후 처형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임신 중이었던 성녀 펠리치타는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아이의 출산을 간절히 기도하고, 다른 신자들과 천국에 들어가는 날을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고대했다.

 마침내, 두 성녀와 다른 동료는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하느님의 귀여운 자녀답게”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으로 끌려 나가 맹수들의 먹이로 서게 되었다. 죽음에 직면한 이들은 조금도 두?*置求?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그리스도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순교의 화관을 받게 되었다. 하늘의 천사들도 이미 어떠한 환난에도 믿음을 굽히지 않은 성녀들에게 승리의 화관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확실하므로 
하느님께서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거룩한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 중>


윤인복 소화데레사 교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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