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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성전의 파멸

by 세포네 2016. 12. 4.

 

프란체스코 하예즈,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1867년, 캔버스에 유채, 252x183cm, 국립현대 미술관,  베네치아, 이탈리아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19년 이두매 출신 헤로데 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웅장한 규모의 증개축(增改築)을 시작하여 서기 64년에 마쳤다. 헤로데가 만들고 있던 성전을 본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복음서에서도 ‘자원 예물’과 ‘아름다운 돌’로 꾸며진 빼어난 성전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장대한 빛을 발하던 성전은 완공된 지 겨우 6년 만에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탈리아 낭만주의의 주요 화가로 손꼽히는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x, 1791~1882)는 예루살렘 성전의 몰락 광경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장엄한 성전의 파괴 장면이다. 서기 70년경 로마의 티투스 황제가 이끄는 군사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루카 21,6) 거의 허물어지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완전히 함락되어 성전이 파괴되고 무려 110만 명이 죽었으며 1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로마군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가 끝날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힌다.   

 그림에서 유다인들은 로마 군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되고 있다. 높은 성전 벽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 이미 벽에서 떨어져 바닥에 깔려 죽어 있는 사람들, 바닥에 주검으로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오른쪽 앞에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여인들 등 참혹한 광경이 그려져 있다. 동시대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유대인 고대사의 기록에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이때 기근까지 퍼져 ‘다락에는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로 가득 찼고, 거리의 길이란 길은 모두 늙은이의 시체로 채워져 있었으며, 어린아이들도 젊은이들도 굶주림으로 퉁퉁 부어서 망령처럼 거리를 헤매다가 쓰러졌다. 이런 재난에 대하여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고 슬프게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화가는 낭만주의 화가답게 현실에서 인간이 겪는 비합리적인 감정과 폭력들을 여과하지 않은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학살 장면 가운데, 화면 왼쪽에 메노라(혹은 므노라)라는 유다인의 촛대를 빼앗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일곱 가지 촛대인 메노라는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이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영혼을 빼앗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유다인들에게 성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 성전의 파멸은 하느님께서 성전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들에게는 큰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떨 것이 아니라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루카 21,28)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 파괴는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오심을 예고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지막에 다시 오시는 것이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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