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헐, <농민의 결혼식>, 1568년경, 패널 위에 유채, 114×163cm, 미술사 박물관, 빈, 오스트리아
신부의 큰 곳간 창고 안은 연회 준비로 한창 분주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풍자적인 그림에 영향을 받은 브뤼헐(Pieter Bruegel de Oude, 1525경-1569)은 주로 민속, 속담, 격언들에 바탕을 두고 하나의 풍경 속에 농촌생활로부터 받은 영감을 화폭에 담았다.
결혼식 주인공인 신부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녀는 벽에 걸린 커다란 녹색 휘장을 배경으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식탁 앞에 앉아 있다. 뺨을 붉힌 채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녀는 당시 풍습대로 머리를 양어깨에 늘어뜨리고 머리에 붉은색 띠 형태의 왕관을 두르고 있다. 신부의 모습은 브뤼헐의 판화 작품 <결혼식의 춤>에 언급한 “저 새아씨는 뚱보이며 귀엽구나.”라는 시와 같이 건강미가 넘쳐흐른다. 신부는 연회의 주인공으로서 영예롭게 좌석에 배치되어 있다.
신부 옆, 의자에 앉은 노인과 그 옆에 있는 부인은 신부의 부모이다. 물론 잔치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이 참석했다. 오른쪽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의 등장은 당시 성직자를 초대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와 마주한 검은 옷에 긴 칼을 찬 사람은 이 마을의 촌장이나 판사쯤으로 결혼의 증인 역할을 한다. 또한, 축제의 흥을 돋우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악기 연주가들이 긴 식탁 옆에 서 있다. 멀리는 떠들썩한 연회장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농부들이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반면, 신랑은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의견으로 다양한 인물로 논의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신랑이 하객을 접대하는 것이 관습이기에 음식을 나르거나 음료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신랑의 모습을 압축할 수 있다. 신랑은 식탁 가장 끝에서 음식 접시를 나눠주고 있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 흰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나르고 있는 남자, 왼쪽 앞에 예복을 잘 갖춰 입고 맥주를 작은 항아리에 붓고 있는 사람 등으로 인해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예복을 갖춘 남자는 화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6만 명의 군사와 알바 공작을 네덜란드 브뤼셀에 급파하여 네덜란드의 민중 봉기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억압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브뤼헐은 이러한 극한적인 피의 학살을 민중들의 생활 안에서 풍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스페인의 간섭과 민중들의 자유로운 축제 장면으로 애국심을 담고자 한 의도도 담겨있다.
그림은 사회적 풍자와 함께 화가 개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나타난다. <농민의 결혼식>을 그린 후 몇 달 뒤에 죽음을 맞이한 화가는 자기 죽음을 예견이나 한 듯, 그림 안에서 신부에 적합한 신랑의 모습을 예복을 차려입은 겸손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신부를 교회의 상징으로 볼 때, 신랑(화가)은 그에 적합한 예의를 갖추고자 한 것이다. 그는 잔치의 주인 몫으로 윗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초대 손님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나누어 주려고 준비 중인 남자로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벽의 쇠갈퀴에 매달려 있는 밀 두 단은 수확의 맨 나중 것으로 추수가 끝났음을 알린다. 이미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였듯이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 결과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희망적인 모습은 남자의 바로 옆 바닥에 앉은 아이이다. 아이는 다 먹고 난 빈 접시를 들고 손가락을 빨고 있다. 커다란 모자가 푹 덮어져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모자 뒤에 달린 공작새 깃털이 눈에 띈다. 공작새 깃털 끝에 달린 눈은 하느님의 눈으로 영원 불멸성을 상징한다. 아이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을 의미한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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