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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기름부음을 받은 분

by 세포네 2016. 1. 24.

 

<판토크라토르>, 12세기 경, 모자이크, 몬레알레 성당, 시칠리아

 

지금까지 예수님의 형상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고 상상되어 왔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형상으로 계신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아기 모습의 예수님, 친구 같은 모습의 예수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모습의 예수님 등 그 모습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큰 힘이 느껴지는 형상을 손꼽으라 하면 ‘판토크라토르(Pantoncrator)’ 도상(圖像)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 - 판토크라토르 도상은 성스러움과 우주적 군주에 상응하는 위엄 있는 얼굴과 부동적인 자세로, 비잔틴 교회 내 돔 천장이나 벽에 배치되어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강조한 묘사로 자주 등장했다. 그리스어(크라테오, krateo)로 만물을 지배하는 군주를 뜻하는데 ‘판토크라토르’는 하느님이 자연을 에워싸고 돌본다는 의미가 있어서 우주의 지배자라고 해석된다.

12세기경 제작된 시칠리아의 몬레알레 대성당 앱스(apse)의 반원형 돔에 그려진 예수님은 전형적인 만물을 주관하시는 자의 모습이다. 궁륭(穹窿, 활이나 무지개처럼 높고 길게 굽은 형상)에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환영에서 본 “불타는 숯불 같은 모습”(에제 1,13)의 케루빔과 여러 날개의 세라핌, 대천사와 성인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다. 반신상으로 묘사된 예수님은 오른손을 올려 축복하고 계시고, 왼손에는 커다란 성경을 들고 계시며 머리 뒤의 후광 안에는 십자가형이 있다. 빛나는 영광을 의미하는 후광은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흐르는 하느님의 빛을 의미한다. 따라서 빛을 발하는 구의 단면처럼 성인들의 얼굴 뒤에 그려지는데 예수님의 후광에는 십자가 모양과 글자가 새겨 있다. 십자가 모서리에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 문자 “O Ω N(오 온)”이 적혀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이름으로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번역된다. 이 이름은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고, 생명의 원천이시며 십자가의 죽음으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생명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깨 위 양옆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약자인 IC, XC가 쓰여 있다. 예수님께서 입고 계신 단순하고 아름다운 히마티온과 키톤은 육화를 상징하는 붉은 색과 신성함과 권력을 상징하는 푸른색, 그리고 가끔 왕과 황제보다 높은 지위라는 뜻에서 금빛이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황금색 배경은 유한한 공간인 3차원의 현실공간을 뛰어넘은 무한한 공간, 깊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초월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금색 부분은 시공을 하나로 형성하고 모든 것을 밝혀주는 영적인 빛의 상징과 하늘의 타오르는 성령의 빛의 공간이 된다. 펼쳐진 성경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는 문장이 왼쪽 페이지에는 라틴어로,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시며 참 임금이요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으로,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인 인간성을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모습으로 기품 있는 권위를 극명하게 나타난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름을 발라 주시어, 예수님과 긴밀한 일치를 이루고 영원한 생명의 빛을 얻기를 청한다.

 

"만물은 판토크라토르 안에서 존재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디오니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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