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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탐욕을 경계하라

by 세포네 2015. 11. 8.

15세기 말 이후 중앙 집권적 체제 국가가 발달하고 지리상의 발견(유럽인들에 의한 인도 항로 및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상공업과 경제가 번영하였다. 그리고 도시시민 계급이 성장하게 되자 북유럽은 지역적 특성으로 운하와 무역, 상업이 발달하였고, 시장 경제가 활발해졌다. 따라서 상공업으로 부와 권력을 차지한 새로운 시민 계급인 상류층 부르주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무역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해상무역은 북부 유럽의 무역항들을 크게 번창시켰으며, 이와 더불어 은행업이나 대출업이 신흥 업종으로 나타났다

 벨기에 화가 쿠엔틴 메치스
(Quentin Matsys, 1466-1530)의 그림 <대부업자와 그의 부인>은 당시의 배경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림은 언뜻 보기에 속세의 한 단면만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정확한 세부 묘사와 인물의 태도와 표정으로 강한 종교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 속의 남자는 대부업자로 그의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열심히 돈을 세고 있다. 남자는 저울에 동전을 올려놓고 정확하게 그 무게를 달아 금의 함량을 재는 데 여념이 없다. 부인은 책을 펼치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온통 금화에 쏠려 있다. 부부의 주변에 황금 받침대와 뚜껑이 달린 수정 잔, 검은 벨벳 헝겊 조각 위에 놓인 진주, , 이국적인 과일 등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두 부부의 눈길은 오직 돈과 저울에만 머물러 있다. 돈과 저울의 의미를 알고 있듯이 그들의 표정에서 진지함과 동시에 엄숙함까지 느껴진다. 돈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이 그림처럼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적인 장면을 다룬 장르화에서는 단순히 사람의 모습이나 정물만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메시지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화가는 여자의 눈길을 남편이 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그녀가 펼치고 있는 책장 속에 그려진 성모자의 모습을 통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당시 앤트워프를 중심으로 서서히 번영하는 상업적 부흥으로 현세의 재물이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부의 등 뒤 선반 위에 놓인 몇 권의 회계장부로 보아 이들은 이미 이런 돈을 세거나 무게를 재는 일을 계속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부부의 표정에는 돈에 대한 탐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의 바로 뒤 선반에는 한 개의 오렌지가 올려져 있다. 오렌지는 에덴동산의 선과 악을 구별하는 사과와 같이 원죄를 상징한다. 부인은 돈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한 남편과 함께 믿음으로 물질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정직한 상거래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물건을 재고 달고 될 때에 부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바른 저울과 바른 추, 바른 에파와 바른 힌을 써야 한다.” (레위 19, 35-36) 더욱이 부부 앞 책상 위에 볼록거울에는 십자가형의 창틀과 그 창밖으로 보이는 성당의 종탑을 담아 부부의 깊은 신앙심을 나타내면서 그림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재물은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 두 부부는 돈을 세는 세상일에 한낱 부질없는 속세의 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고, 거울의 투명함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투명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바른 생각과 올바른 행동을 취하려 한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 1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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