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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핑계

by 세포네 2010. 2. 9.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어떤 짓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하는 짓이고,
        그래서 가슴을 콕 찌르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우리는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해 부모를 공경할 수 없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뒤늦게 철이 드는 것 중의 하나는
        제가 얼마나 하느님께도 부모님께도

        불효자인지 아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을 하는 한 동안 저는
        육신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잘 못하는 것이
        수도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

        불효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며
        저는 일찍 홀로 되신 어머니께 쌀쌀 맞았고
        오랫동안 자주 찾아가지도 전화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까지
        정말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하느님을 공경하였는가?

        주님께서는 가족을 포기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 다른 데서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나를 버리는 것은 쏙 빼고 가족만 포기하였습니다.

        이런 심사가 잘 드러나는 것이 명절 때입니다.
        이번 명절에도 수도원에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생고생하면서

        부모, 형제들을 만나러 갈 때,
        차가 밀려서 귀성과 귀경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장가 안 들어서 속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웃 사랑을 핑계로 하느님 사랑을 살짝 빗겨 갑니다.

        헐벗은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말씀,
        사람이 안식일에 주일이라는 말씀,
        이런 말씀들을 가지고

        주님의 계명 어기는 것을 합리화하고
        이웃 사랑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게을리 하는 것의 핑계를 댑니다.

        한 신부가 승용차를 타고

        어디를 가게 되어 뒷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왼쪽에는 할머니가 앉고 오른쪽엔 아가씨가 앉았답니다.
        길이 굽어 왼쪽으로 몸이 기울어질 때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하고 기도하고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어질 때는
        “당신 뜻대로 하소서”하고

        기도하였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는데
        제가 하는 짓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내 좋을 대로 하기 위해
        어떤 때는 하느님 사랑을 팔고
        어떤 때는 이웃 사랑을 파는 저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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