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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그래서 행복합니다.

by 세포네 2009. 11. 10.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제가 좀 겸손해진 모양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조금은 겸손해진 모양입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글을 훔쳐보며
        하느님께 반역의 기회를 엿보던 20대 때는
        이 복음이 적지 아니 거슬렸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종이고 하느님은 주인이라는 것이 불만이어서
        늦게까지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저였는데
        이젠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마당쇠의 ‘당쇠’를 저의 인터넷 이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분부를 받은 대로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복음은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라고 하는데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예전에는 이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지가 비참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비굴함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이젠 그것이 비참함도 비굴함도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겸손이고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Kenosis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한 본질이 비움이고
        사랑의 다른 한 본질이 낮춤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하느님의 Kenosis를 알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그 끝자락을 조금이라도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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