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특집

(2) 가장 험한 선교 루트에서 산사태를 만나다

by 세포네 2009. 5. 24.
728x90

"조금만 차가 빨리 달렸다면 큰 사고 당할 뻔"

 

   인류 최고(最古)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로 가는 길은 멀었다.
 이번 기행의 시작지인 중국 윈난성(蕓南省) 리장(麗江)은 한국에서 직항기가 없어 인천공항에서 밤 비행기로 쿤밍(昆明)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北京)에서 온 김상진(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와 통역 박철진(베네딕토)씨를 만나 공항에서 5시간 여를 기다렸다 새벽 첫 비행기로 겨우 닿은 곳이다. 꼬박 하룻밤을 새운 셈이다.
 짐을 찾아 리장공항을 나오자 우리 일행을 태우고 일주일간 차마고도 곳곳을 누빌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우리 일행을 보자마자 "첫 목적지인 치중(茨中)까지 560여km 거리라며 쉬지 않고 달려도 10시간은 더 걸릴 것"이라며 재촉했다.

해발 4000m 넘는 아찔한 협곡

 차창으로 본 도심과 시골길은 무섭게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물 차량들의 행렬과 시골 구석구석 눈에 띄는 외국인 관광객 인파, 그리고 현지인들의 활기찬 모습이 차마고도의 신풍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가 티베트 봉기 50주년이어서인지 무장군인들이 곳곳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검문을 하는 바람에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무장군인보다 우리 일행을 더 불안에 떨게 만든 것은 운전기사였다. 그의 주특기는 운전대만 잡았다하면 조는 것이었다. 고개가 떨어질 정도로 졸아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라고 하면 쉬지도 않고 차에서 내려 연신 담배를 피우며 너스레를 떤다. 통상 해발 3000~4000고지를 오르내리는 꼬불꼬불한 협곡 2차선 산길을, 도로 한편에선 수시로 돌이 굴러 떨어지고 다른 편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는데도 그는 3단 변속기어를 물린 채 졸면서 여유 있게(?) 비틀비틀 지그재그 운전을 했다. 그의 묘기에 우리 일행은 "으으윽! 으으윽!" 가는 비명을 토해내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오금이 저리도록 힘을 주며 다연장 '화살기도'를 난사했다.
 서방에 '티로드(Tea Caravan Route)'로 알려진 차마고도는 '비단길(Silk Road')보다 200여 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라고 한다. 푸얼차 산지인 시샹반나(西雙版納)에서 중국 시짱(西藏,옛 티베트)자치구의 주도인 라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무역로였던 이 길은 길이가 무려 5000여km가 된다고 한다. 평균 해발 고도 4000m가 넘는 이 무역로는 매리쉐산(梅里雪山),바이망쉐산(白茫雪山),옥령쉐산(玉龍雪山)등과 진샤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 이 3500여km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고 있다. 이 협곡은 지표상에서 가장 깊고 길며 아름다운 협곡이어서 지난 200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차마고도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다. 가장 높고 험한 문명의 통로였으며,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직할 선교회인 파리외방전교회가 옛 티베트 땅에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내린 '선교루트'였다. 파리외방전교회가 맺은 복음의 결실은 순교의 역사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차마고도 치중ㆍ샤오웨이시(小紐西)ㆍ디마뤄(迪麻洛)ㆍ공산(貢山)ㆍ빙중뤄(丙中洛)ㆍ얜징(鹽井)ㆍ따리(大理)지역에서 꽃피우고 있다.
 차마고도의 가톨릭 신자들은 옛 티베트 땅 원주민들인 장족(壯族)ㆍ나시족(納西族)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최근 들어 어린이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성당을 많이 찾아오고 있어 복음화의 새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산증으로 격심한 고통

 하루 종일 비가 흩뿌리더니 치중까지 10여km를 남겨두고 한밤중에 산사태를 만나 길이 끊겼다. 조금만 차가 빨리 달렸다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하루 종일 졸음운전을 유지해온 운전기사 덕분이다. 차에서 내려 도로 상태를 확인하니 흘러내린 토사가 너무 많아 중장비가 와야만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일행은 차를 돌려 가까운 여관에 짐을 풀었다. 조바심에 "언제쯤 길이 뚫릴 것 같으냐"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그는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아니면 모레, 언제 될지 모르겠다"며 느긋하게 말했다.
 김 신부는 "처음 치중갈 때 사흘, 그 다음엔 이틀, 오늘은 하루 만에 주파해 기록을 깨려 했는데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구먼"하며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우리 일행이 묵을 치중성당 회장댁에 전화를 걸어 내일 차를 대절해 산사태 지점까지 마중 나와 줄 것을 부탁했다
 일행은 준비해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격심한 두통과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 한 통증과 고통스런 호흡이 이어졌다. 고산증이었다. 비몽사몽 헤매다 닭울음소리에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른 아침인데도 다행히 길이 뚫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서둘러 준비해간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차로 달리다보니 산사태 흔적이 2곳이나 됐다. 우여곡절 끝에 해발 4000여m 협곡에 있는 치중 마을에 당도하자 유 펠리페 회장이 반겼다. 그는 일행에게 쌀보리로 만든 칭커주 한 잔씩을 돌리더니 장족말로 '알라퉁'(모든 것이 뜻대로 되길 빈다)을 외치며 환영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 치중으로 가는 길에 1881년 복음이 전래된 샤오웨이시(小紐西)성당을 잠시 들렀다. 전통 중국식 가옥 형태로 지은 성당 모습이 이채롭다. 현재 신학생 출신인 한 청년이 성당을 관리하며 예비자 교리반을 운영하고 있다.

 

▲ 차마고도 협곡. 평균 해발 3000~4000이 넘는 차마고도 협곡은 지표상에서 가장 깊고 긴 협곡이다.

 

▲ 차마고도 신지앙(新建)마을 장터에서 먀오족(苗族) 한 할아버지가 전통의상을 입은채 여유있게 담배를 피고 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