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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추기경 김수환

동성상업학교 시절(下)

by 세포네 2009.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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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답지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김 추기경이 갈등 속에서 사제의 꿈을 키운 동성상업학교(현 서울 혜화동 동성중고등학교) 옛 교사(校舍).

 담임이었던 공 신부님께 신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도둑'이 되기 싫어서였다. 사건의 발단은 공 신부님 강론이었다.

 공 신부님은 미사 강론 중에 '착한 목자'(요한 10, 7-21)의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서에 나와있듯이, 양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도둑은 양을 훔쳐다가 죽이려고 울타리를 넘는다. 하지만 양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너희들 중에도 이런 도둑같은 심보를 갖고 신학교에 온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녀석은 지금이라도 보따리를 싸는 게 낫다."

 공 신부님이 나를 지목해서 말씀 하신 게 틀림없었다. 신부님은 고해성사때 "자꾸 그러면 신부가 될 수 없다"라고 몇 차례나 주의를 주었다. 또 내가 어머니한테 등 떠밀려서 신학교에 들어오고, 집에 가고 싶어 꾀병을 부린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직접 말씀은 못하시고 강론시간에 에둘러서 '너 같은 녀석은 일찌감치 다른 길 찾는 게 좋다'라고 충고하시는 줄 알았다.

   신부님 말씀을 듣고나니 양을 훔치려고 우리를 넘는 도둑이나 신부가 될 생각도 없이 신학교 교문을 들어선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신부님께 이런저런 이유로 신학교에서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신부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셨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부란 자기가 되고 싶다고 되고,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저는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나가!"
 "… …어디로 나가란 말씀인지?"
 "어디긴 어디야. 내 방에서 당장 나가."
 
 일반 상업학교 과정을 밟는 갑조(甲組) 학생들과는 교련수업을 같이 하는 정도였지 별 교류는 없었다. 지금 은퇴해서 분당에 살고 있는 나상조(아우구스티노) 신부는 그 당시 갑조 학생이었는데 학교 대대장을 맡을 정도로 소문난 수재였다. 신자가 아니었던 그는 일반 대학에 진학한 후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와 사제가 된 경우다.

 갑조 선생님들은 신학생반인 을조(乙組) 수업에 들어오면 신부님들과 달리 3.1 운동, 일제 식민통치 만행 등 민족혼을 일깨워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선생님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피가 역류하는 듯 울분이 치밀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는 신학생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겨 신음하는 백성이었다.

 선생님들이 조국애를 부추긴 건지, 아니면 정의감이 부쩍 자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제에 대한 울분이 치솟을 때마다 그 심정을 일기장에 토해놓곤 했다. 서랍에 넣어둔 그 일기장을 들켜 교장 신부님께 불려가서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무렵 동한 형과 북한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 일본에 빼앗긴 조국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동한 형은 "너는 신부가 될 거니? 아니면 독립운동가가 될 거니?"라며 걱정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 안에서는 이미 독립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시간에 그 전쟁이 밖으로까지 비화(飛火)되고 말았다.

 5학년 졸업반 수신(修身, 지금의 윤리)과목 시험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소크라테스 철학에 관한 것이라 우리는 당연히 그와 관련된 문제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조선반도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일본 천황의 칙유(勅諭)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다.

   아마도 조선총독부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전 학교에서 그같은 시험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던 모양이다.

 순간 민족적 자존심과 젊은 혈기의 반항심이 엇갈렸다. 한 시간 동안 꼼짝않고 앉아있다가 마침 종이 울릴 무렵 답지에 이름을 쓰고 빈난에 "①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②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어린 나이에 뭘 믿고 그런 배짱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예상한대로 이튿날 교장 신부님으로부터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이거 네가 쓴 것 맞아?"
 "네."
 "어쩔려고 이런 답안을 쓰냐. 이게 밖에 알려지면 학교는 그날로 문 닫아야 하고, 너는 감옥에 가고, 교회는 또 박해를 받는다는 걸 모르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럼 그 답지를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되잖습니까."
 "이 녀석이, 어른말 안듣고 어디서 말대꾸야!"

 교장 신부님한테 말대꾸한다고 따귀를 한대 얻어 맞았다. 교장 신부님은 이어 "너는 위험해서 신부가 되면 안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교장 신부님 입에서 그런 말씀이 나왔으니 이젠 정말 끝나는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여름방학이 되어 대구로 내려갔다. 학교로 돌아오지 말라는 기별, 즉 퇴학통지서가 날아오리라고 예상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방학을 끝내고 돌아와 그럭저럭 지내다 졸업을 두어달쯤 남겨두었을 때 우리 교구 주교님(대구대목구 무세 주교)이 신학교를 방문하셨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다 교장 신부님이 주교님 계신 방으로 바삐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교장 신부님이 분명히 나에 대한 얘기를 하실테고, 그러면 정말 쫓겨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

   아니나 다를까. 얼마후 주교님이 나를 부르셨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교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얼토당토않은 명령이신가.

 "스테파노. 여기 졸업하면 일본으로 가라. 거기서 공부를 더 하고 오너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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