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
바오로 사도의 인간관을 고찰할 때 바오로 사도가 인간을 나타내려 사용하는 용어들이 사용되는 맥락과 그 의미를 주목하는 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 육, 혼, 영, 피, 마음, 이성 같은 용어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복잡하고 전문적인데다 이 지면에 소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로마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한 대목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육적인 존재,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로마 7,14-25).
로마서 7장의 이 대목은 인간 본질이 무엇이냐에 관한 문제, 곧 인간이란 근원적으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인간이 실제 삶에서 부딪치는 상황, 곧 실존적 삶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 실존의 측면에서 바오로의 인간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두 실존 : 죄의 종으로 팔린 몸과 속량된 몸
로마서의 위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오로 사도는 인간의 실존을 두 가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죄의 종으로 팔린 몸, 죽을 인간이고, 둘째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된 몸 곧 속량된 몸, 의롭게 된 인간입니다. 여기서 '몸'은 단지 신체를 나타낸다기보다 인간의 전인적 실재, 인간 전체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죄의 종으로 팔린 몸
바오로 사도에게 죄의 종으로 팔린 몸이란 육적인 존재, 또는 죽을 몸(로마 6,1)과 같은 개념으로, 한 마디로 말하면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인간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는 몸, 죄의 종으로 팔린 인간 처지가 "바라는 것은 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자기 소외"가 바로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 처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죄의 지배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아담의 죄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담이 지은 죄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고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됐다는 것입니다(로마 5,12-14).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인간 조건입니다. 유다인이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고, 이방인이라고 해서 부족할 것도 없습니다(로마 3,9 참조). 이것이 바오로 사도가 보는 인간의 실존의 한 가지, 구원받기 이전 인간 조건 혹은 처지입니다.
◇속량된 몸
이렇게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의 반대가 속량된 몸, 구원된 인간, 의롭게 된 인간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어떻게 속량된 인간, 구원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4).
바오로는 이를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시켜 설명합니다. 마치 한 사람의 죄, 곧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 세상에 죄가 들어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됐고 그래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곧 예수 그리스도 순종을 통해 많은 이가 속량되고 의롭다고 선언을 받는다는 것이지요(로마 5,12-21 참조).
그렇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을 속량하신 것은 인간이 잘 나서도 아니며, 율법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느님의 호의,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주신 은총의 덕분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이 은총을 믿음으로써 속량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아버지이신 하느님 뜻에 순종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속량된 사람,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속량된 몸의 중요한 특성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로마 6장 참조). 여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인간 실존의 놀라운 변화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인간의 이런 두 실존, 곧 죄의 지배를 받는 몸과 속량된 몸은 모든 인간을 처음부터 두 부류로 나누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때는 누구나 다 죄의 지배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사람은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성령의 세력에 들어갑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뤄지는 이런 실존적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하느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는 이렇게 변화된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새로운 인간의 삶
믿음으로써 하느님 은총을 통해 속량된 그리스도인은 죄의 지배가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로마 6,12).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로마 7,6). 따라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
이렇게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 있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그것이지요(1테살 1,3 참조).
믿음은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 실존의 기초가 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의롭게 된 것은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거져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지요.
희망은 우리가 구원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힘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파하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로마 4,20). 그리스도인은 이 희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진 하느님 사랑에서 비롯합니다(로마 5,5). 이 사랑으로 우리는 이제 우리 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능력을 갖추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마 8,12). 성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3).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속량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삶임을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바오로의 열정과 복음선포」 (성바오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분도출판사) 「신약성서 새번역」(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나눔터」(기쁜소식)
▲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 주 출입문 오른쪽에 있는 성년 문. 지난 2000년 대희년 때에 청동문으로 새롭게 설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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