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개념은 특히 로마서에 잘 나타나 있다. 바오로는 로마서를 쓰면서 로마서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1, 16~17) 즉,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인 복음은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나도록 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바오로가 로마서의 주제를 설정하면서 사용한 ‘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표현은 바오로 친서에 여덟 번 나온다(2코린 5,21;로마1, 17;3, 5·21·22·25·26;10, 3).
‘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표현은 매우 난해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주제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하느님의 의로움’을 추상명사로 보지 않고 행위명사(nomen actionis)로 설명한다.
즉, 학자들은 하느님의 의로움을 하느님의 속성으로 풀이하지 않고 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이나 결과를 끼치느냐를 이야기한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행위명사라는 것은 이 표현이 사용된 구약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전승은 ‘드보라의 노래’다.
“물구유 사이에 서 있는 양치기들의 목소리에 따라 거기에서 그들은 주님의 의로운 업적을 노래하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선도하신 의로운 업적을, 그때에 주님의 백성이 성문께로 내려갔네.”(판관5, 11)
여기에 나오는 주님의 의로운 업적은 원문에 나오는 ‘하느님의 의로움들’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구원 또는 승리를 뜻한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나는 또 다른 성경 구절은 사무엘기 상권 12장 7절이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그대로 서 있으시오. 내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베푸신 의로운 업적을 모두 들어, 주님 앞에서 여러분과 시비를 가려야겠소.”
여기서도 의로운 업적은 ‘하느님의 모든 의로움들’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원수의 억압에서 구해 주신 구원행위를 가리킨다. 이 두 구절들에 의하면 하느님의 의로움은 이스라엘 백성을 원수들의 억압에서 구해내신 구원의 행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의로움’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행위명사로서 구원과 동의어(同義語)라 하겠다.
한편 바빌론 유배 이전에 씌어진 구약성경에선 하느님의 의로움이 법정용어로 사용되었다(이사 3, 13;예레12, 1;호세 4, 1~2;12, 3;미카 6, 2;시편 9, 9;96, 13;98, 2). 하느님께서 불충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실 때 공정하게 정의롭게 심판하신다는 뜻으로 하느님은 의로우시다고 했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 이후엔 법정용어였던 하느님의 의로움이 사면의 의미로 바뀌었다(이사 46, 13;51, 5~8;56, 1;61, 10;에즈9, 15;느헤9, 8;시편40, 9~10).
하느님께서 백성을 심판하실 때 은총을 베풀어 사면하신다는 뜻으로 하느님은 의로우시다고 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바빌론 유배 이후에 사용된 사면의 의미로 풀이했다(2코린 5, 21; 로마1, 17; 3, 5; 3, 21~22; 3, 25~26; 10, 3).
한편 바오로가 사용한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오는 구절 앞뒤 문맥에 동의어(同義語) 또는 반의어(反義語)가 나오는데 이를 살펴보면 바오로가 어떤 의미로 ‘하느님의 의로움’을 사용했는지가 분명해진다. 동의어가 나오는 대표적인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불성실할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들의 불성실함이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에 당신의 의로움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당신께 재판을 걸면 당신께서 이기실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지만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로마3, 3~4)
“나의 거짓으로 하느님의 진실하심이 더욱 돋보여 그분 영광에 보탬이 된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으로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로마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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