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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사도 바오로,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 (3)-소아시아 7대 교회를 찾아서 "

by 세포네 2008. 12. 27.

'사도 바오로,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 (3)-소아시아 7대 교회를 찾아서 "

 

그리스도인 꾸짖은 '천둥의 아들', 사도 요한을 만나다

 

  순례단이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 항해하던 중 파트모스(Patmos)섬에 상륙한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파트모스는 지중해에 떠있는 3000여 개의 섬 가운데 하나다. 남북 길이가 16㎞에 불과하고 척박하기 이를 데 없어 로마제국시대에는 중범죄자들의 유배지로 악명이 높았다.

 

▲ 요한이 묵시록을 쓴 파트모스섬 전경. 순례단을 섬 입구까지 데려다 준 2만6000톤급 크루즈선 크리스탈호(가운데)가 항구에 정박해 있다.

 

 순례단이 그림 같은 풍경의 섬들을 마다하고 이 볼것 없는 작은 섬에 들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사도 요한을 만나기 위해서다.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81~96년) 때 이 섬에 끌려와 18개월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여기서 어느 주일에 성령께 사로잡혀 나팔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듣고(묵시 1, 10)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를 써 보낸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대미를 장식하는 요한묵시록이다.

 요한은 성질이 얼마나 급하고 과격했던지 '천둥의 아들'(마르 3, 17)이라고 불렸다. 천둥의 아들은 말년에 이 작은 섬에 갇혀 하늘에 오르신 예수를 그리워하고, 때로는 그분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 요한에게 들려온 나팔처럼 울리는 목소리

 요한이 계시를 받은 동굴은 산 중턱 벼랑에 있다. 동굴 길이는 10m가 채 안 된다. 창문처럼 뚫려 있는 바위 틈새로 코발트빛 지중해가 보인다. 나이 90이 넘은 그에게 저 바다는 분명 절망과 단절의 망망대해였으리라.

 날로 흉폭해지는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 천상 예루살렘과 왕의 재림을 기다리는 늙은 사도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요한이 일곱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는 사도 바오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결정적 단서가 들어 있다. 그리스도는 요한을 통해 영적으로 가난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꾸짖으셨다. 도미티아누스를 비롯해 로마 황제들은 자신이 '주님이요 하느님'이라고 자처하며 숭배를 강요했다. 또 소아시아 사람들은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정진석 추기경과 순례자들이 페르가몬에 있는 최초의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을 둘러보고 있다. 환자들이 철조망 아래 터널로 지나갈 때 의사들은 위에서 "너는 이제 곧 나을지다"라고 속삭이며 용기를 불어 넣어 줬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는 잡신이 들끓는 소아시아에서 유다인들의 배척까지 받아가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했다. 이방인의 땅 여기저기서 고난을 겪고, 심지어 매질까지 당하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순례 6일째, 디킬리항에서 새 아침을 맞은 순례자들은 크루즈선 크리스탈호에서 하선해 버스를 타고 페르가몬(묵시 2, 12-17)으로 향한다. 소아시아 일곱교회 가운데 하나인 페르가몬 교회의 신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칭찬과 여전히 일부가 우상에 빠져 있다는 책망을 동시에 들어야 했다.

 BC 200년경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고대도시의 유적지에는 육중한 성채 같은 성당 외벽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본래 세라피스 신전으로 사용되던 것을 비잔틴 제국 때 내벽을 쌓아 성당으로 개조한 건물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1100년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운 비잔틴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무릎을 꿇고 이슬람 영토로 변했다. 신전에서 교회로, 교회에서 잊혀진 유적으로 방치된 외벽이 이 땅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어렴풋이 전해준다.

 

 

▲ 소아시아 일곱교회 가운데 하나인 라오디케이아 유적지에서 기도하는 순례자.

 

 이어 찾아간 필라델피아 교회(묵시 3, 7-13). 6세기에 건축된 사도요한성당 터에 남아 있는 3개의 육중한 기둥만이 필라델피아 교회라는 이름으로 순례객을 맞이한다.

 이곳 신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옆에 열어 두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 하지 않았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가난했다.

 순례자들은 "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묵시 3, 12)고 하신 주님 말씀을 묵상하며 필라델피아를 뒤로 하고 라오디케이아(묵시 3, 14-22)로 향한다.

 

 # 너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

 고대도시 라오디케이아는 비옥한 평원을 끼고 있고 교통 요충지라서 상업이 번성했다. 특히 안약과 귓병약이 유명한 의료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덕분에 이 일대 도시 중에서 가장 부유했다. 그래서였을까?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은 주님께 칭찬을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 17) 주님은 이어 "흰옷을 사서 수치스러운 몸을 가리고 안약을 발라 눈을 뜨라"고 타이르신다.

 이것이 어찌 소아시아 일곱교회 신자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겠는가.

 순례자들은 돌 무더기와 대리석 기둥뿐인 고대도시 유적지를 걸으며 주님께서 요한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전하시는 말씀을 묵상한다.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현대인들에게 '흰옷과 안약'은 무엇인가.

 

▲ 마을 한가운데 육중한 기둥만 남아 있는 필라델피아 교회 유적.

 

 글=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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