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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사도 바오로,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2>

by 세포네 2008. 12. 7.

'사도 바오로,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2>- 그리스 "

 

고난과 축복 가득한 전도길

 

   에게 해. 코발트 빛 바다가 너무 잔잔하고 맑아 그 푸르름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이 부시다. 크레타, 펠레폰네소스, 아테네,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등 수많은 문명들을 품에 안았던 고요의 바다. 307명의 순례자들은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열정을 닮겠다는 '블루 로망'을 꿈꾸며 에게 해 크루즈를 시작했다.
 사도 바오로에게서 에게 해 연안은 신화의 땅 그리스를 유일신 하느님의 나라로 탈바꿈하게 만든 '오라마'(ORAMA-비전)의 땅이었다. '다도해'라는 어원을 가진 에게 해는 수많은 섬들의 수만큼이나 사도 바오로에게는 축복의 땅이었다.
 교회사와 인류 문화사에서 세계적 사건으로 손꼽히는 사도 바오로의 그리스 진출은 자신에게도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오로 자신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제1차 전도여행 때는 예루살렘 교회에 영향을 받았지만, 제2차 전도여행, 특히 소아시아를 건너 유럽의 관문인 필리피에 진출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독자적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순례단은 아테네 피레우스 항에 정박 중인 '크리스탈호'에 오르기 전에 아테네와 코린토를 육로로 순례했다. 시차의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11월 6일 이른 아침 순례단은 아테네 시내에 있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올랐다. 아레오파고스는 사도 바오로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문화와 정신생활에 여전히 중요한 장소였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가 이곳에서 인간 지혜의 오만과 맞닥뜨렸듯이 순례단에게도 자신들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코린토는 아테네에서 90km 남짓 떨어져 있다. 사도 바오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구도시였지만 지금은 퇴적층에서 발굴해 놓은 유적지만 남아있다. 사도 바오로는 약 18개월간 이곳에 머물면서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 이 코린토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세운 교회 가운데 가장 큰 교회로 발전했다.
 순례단과 함께 코린토 유적지를 걷던 정진석 추기경은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순례자들에게 '바오로의 설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바오로 설교는 언제나 근본적으로 십자가 설교였어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났지요. 그 기적이 세례를 통해 드러났고 교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육로 순례를 마친 순례단은 피레우스항에 정박한 크리스탈호에 승선했다. 총 12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이 배는 승무원 수만 400명에 달한다. 승선 수속과 비상탈출 훈련까지 마친 순례단은 미국에서 온 600여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사도 바오로의 여정을 따라 11월 7일 대망의 크루즈 순례를 시작했다.
 미동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배가 8일 새벽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파도도 바람의 심술에 따라 사방에서 배를 때렸다. 선원들도 아직 우기가 아닌데 온난화 탓인 모양이라고 난감해 했다. 아침 미사를 위해 극장에 모인 순례자들 중 뱃멀미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성찬례를 시작할 즈음 성난 파도는 희한하게도 잠잠해졌다. 미사를 주례한 허영민(의정부교구 덕소본당 주임)신부는 "사도 바오로께서 당신이 겪으신 풍랑을 우리도 경험해 보라는 뜻에서 바람을 일으키셨나보다"며 순례자들을 격려했고, 순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리스 순례의 정점은 테살로니카를 거쳐 주일인 9일 순례한 필리피였다. 햇살이 아침 이슬을 영롱하게 비출 만큼 달아오르기 전에 순례단은 원형경기장터에 모였다. 정 추기경은 특별권한으로 순례단에게 전대사를 허락했다. 사제단은 원형경기장 여기저기에서 순례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줬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전대사의 특은을 받기 위해 정성껏 고해를 했다. 고해성사가 끝나자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주일미사가 봉헌됐다. 한국 순례단의 순례 책임을 맡은 크리스탈호 조정자 그리스인 알렉스씨는 "이 원형경기장에서 이렇듯 아름다운 미사를 봉헌한 한국인은 이번 순례단이 처음일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미사는 한마디로 은총의 시간이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눈물의 영성체를 했고, 하이 파이브를 하고 포옹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ㆍ자매임을 체험했다.
 미사를 마친 순례단은 바오로 감옥터와 고대 필리피 유적지를 둘러봤다. 감옥터를 둘러본 한 노부부는 "성경을 몇 번이나 읽고 필사도 했는데 사도 바오로가 엄청난 박해와 배척을 당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느낄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순례길이 제2의 사도행전이라고 말하며 이번 순례를 마련해 준 문화홍보국과 평화방송 평화신문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 필리피 원형 경기장터에서 감격어린 미사를 집전한 사제단이 정진석 추기경과 하이파이브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도 바오로가 18개월간 머물며 교회를 세운 코린토 유적지에서 순례단이 태극기를 든 현지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로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

 

▲ 유럽인으로서는 첫번째로 사도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은 리디아를 기념해 세운 필리피 리디아 기념 경당을 순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 크리스탈호 대극장에서 각국 순례자들이 손에 손을잡고 무희들과 함께 그리스 민속춤을 배우고 있다.

 

▲ 크리스탈호 선장(왼쪽)과의 만남 시간에 고운 한복차림으로 외국인 순례자들의 시선을 모은 서울 청파동본당 양해필 전순화씨 부부가 만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테살로니카 수호성인인 성 디미트리오스를 기념해 비잔틴 시대에 세운 정교회 성당에서 한 부부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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