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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바오로의 해](4) 충돌은 있었지만 지향점은 '그리스도'

by 세포네 2008. 7. 13.

 마주 앉은 바오로와 베드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말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9).

 주님은 복음이 장차 어떻게 퍼져 나갈 것인지 명확하게 일러줬다. 말씀은 그대로 이뤄졌다.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제국까지 빠르게 뻗어 나갔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게 313년이다.

 그러나 처음에 복음이 유다교 그늘을 벗어나는 일은 무척 힘겨웠다. 그리스도의 지상 제자들조차 유다교 회당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주장했다. 이는 유다교를 거쳐 복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때로는 긴장이 흐르고, 충돌하기까지 했다. 이 사태를 수습하고, 그리스도 복음의 독자성을 주도적으로 확립한 인물이 사도 바오로다.

 

▲ 렘브란트의 '바오로와 베드로의 논쟁'(1628,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소장). 바오로는 약간 높은 의자에 앉아 성경 구절을 짚어가며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베드로는 반론을 펴려고 다른 몇 군데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바오로는 어떻게 유다교 전통과 관습을 떨치고 이방인들에게 갔을까. 예루살렘 사도회의와 안티오키아 사건을 중심으로 궁금증을 풀어본다.

#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바오로가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였다.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바오로는 유다 율법에 얽매여 있는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났다. 그래서 협조자 바르나바와 몇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갔다. 사도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사도 15). 사도들과 원로들 회의가 곧 예루살렘 사도회의다.

 쟁점이 된 문제는 정결하지 않다고 여기는 고기에 관련된 음식규정(신전 제사에 바쳤던 고기와 목 졸라 죽인 짐승 고기는 먹지 못함)과 할례였다. 두 문제는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예민한 사안이었다. 야고보 주장에서 보듯 사도회의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율법을 박차고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바오로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복음을 주장했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이나 할례 의무를 지우지 않고 교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바오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에 복음이 회당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도회의는 이방계 그리스도인 측의 바오로ㆍ바르나바ㆍ디도, 유다계 그리스도인 측의 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으로 진영이 갈렸다.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복음'과 '할례받은 사람들을 위한 복음'을 따로 구분해야 할 지경이었다. 자칫 복음의 단일성이 깨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신학자 카를로 크레모나 신부는 저서 「성 바오로」 에서 이 상황을 '구원의 배'에 비유한다.

 "구원의 배는 십수 세기를 두고 이스라엘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다시 출항을 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선박이 자기네 소유라고 여겼음직하다. 여기서 바오로의 혜안이 등장한다. 저 선박의 키를 잡아야 한다! 모래톱을 빠져나가야 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항로에 표시돼 있는 대로 전 세계 모든 바다를 향해 저어나가야 한다!"

 격론 끝에 두 진영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 선교영역을 분할하기로 한 것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 사도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사도직을 수행하기로 했다(갈라 2).

 사도회의가 끝나갈 때 야고보와 케파(베드로)와 요한은 친교의 표시로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갈라 2,9). 복음의 단일성과 사도들의 일치가 훼손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후 안티오키아에서 바오로와 베드로가 정면 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바오로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향해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갈라 2,11-14)라며 맞섰다.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베드로가 안티오키아에 머물 때였다.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던 베드로는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자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유다교는 이방인들과의 공동식사를 금한다. 그래서 바오로가 위선이라며 격분한 것이다. 두 사도가 이후에 다시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베드로의 소심함을 탓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바오로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부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16세기 종교분열시기, 루터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안티오키아 사건을 끌어 들인 점이다. "성 바오로가 성 베드로를 그릇된 자라고 꾸짖는다. 바오로는 모세 율법에 얽매인 베드로에게 맞서 자신의 의인론, 즉 '오직 믿음으로만'을 지켜내고 있다."

 두 사도와 관련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대목이 있다.

 베드로가 환시를 본 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로마인 백부장)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이다(사도 10).

 베드로는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고백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6).

 코르넬리우스 개종은 그리스도교를 세계 모든 민족에게 열어 놓은 중요한 사건이다. 충돌은 있었을지언정 두 사도가 똑같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튼 바오로는 이스라엘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구원의 배'를 모래톱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키를 잡고 세계를 향해 출항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 바오로의 칼과 베드로의 열쇠
  성화나 성상을 보면 사도 바오로의 손에는 어김없이 큰 칼이 들려 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의 손에는 열쇠가 들려 있다.
 
  바오로의 칼은 우리의 심장까지 꿰뚫는 비수 같은 하느님 말씀을 상징한다.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라고 말했다.
 베드로의 열쇠는 그리스도가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면서 천국 열쇠를 넘겨준데서 유래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 18-20).
 

▲ 성 바오로

 

▲ 성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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