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안고 뒤척이는 강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동강에 가면-”
산이 ‘몸’이라면 강은 ‘몸짓’이다.
산이 ‘손’이라면 강은 ‘손뼉’이다.
산이 ‘구름’이라면 강은 ‘비’다.
산이 ‘아버지’라면 강은 ‘어머니’다.
온 생명이 이 둘 사이에 깃들어 산다.
나무와 풀, 기고 날고 걷는 것들이. 산은 대지의 들숨이고, 강은 대지의 날숨이다. 그 호흡지간에 온 생명이 걸려 있다.
인류 문명이 강에서 비롯된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강에서 비롯된 문명은 자연과는 반대로 흘렀다. 현대 문명을 포식한 대도시의 강들은 거대한 욕망의 배출구가 된 지 오래다. 거만한 치수(治水)에 무릎 꿇린 채 신음하는 강에서 대지의 호흡을, 근원적 생명의 율동을 느끼기는 어렵다.
강물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강물도 만나는 이에게는 말을 합니다. 자갈밭을 만나면 간지럽다 깔깔, 웅덩이를 만나면 심심하다 웅얼웅얼, 벼랑을 만나면 무섭다고 와와, 세상의 모든 것은 만나야만 말을 합니다. 늦봄 어느날 내가 꽃잎으로 떠내려가는 저녁이었습니다. 갈대 우거진 기슭에서 나는 들었지요. 풍덩 별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를, 별을 안고 뒤척이는 강물의 소리를,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것만은 모릅니다. 그때 그 강물이 무엇이라 말했는지를,
님이여, 귀먹어 듣지 못하는 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눈멀어 보지 못하는 나의 시도 이와 같습니다.
―오세영 ‘강물’(전문)
시인은, 별을 안고 뒤척이는 강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대의 슬픔을 자신의 귀먼 사랑에 빗댄다. 차마 눈을 뜨지도 못한다. 그래도 시인은 꽃으로 떠내려가 보기는 했다. 세상은 아예 자신의 귀가 먹었는지 눈이 멀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렸다. 아스팔트 위에는 돌아갈 발자국조차 남겨져 있지 않다.
더 없이 평화롭고 자족적인 삶의 풍경 속으로
콘크리트로 지은 다리를 지나며 강물의 파동을 느낄 수는 없다. 도시를 흐르는 강물은 더 이상 생명의 강이 아니다. 가끔씩 언론 뉴스에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따위로나 주목 받는 ‘소비재’일 뿐이다. 이런 강물에 시와 음악이 흐르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40대 후반 이상의 서울 토박이들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들이 어릴 때만 해도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그 물을 떠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한다. 불과 50년도 안 지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별을 안고 뒤척이는 강물의 소리를 들을 것인가.
10여 년 전 동강에 댐을 만드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으로 시끄러울 무렵, 이틀 동안 동강을 따라 걸은 적이 있다. 놀라웠다.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강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물길이 크게 휘어 도는 곳마다 산은 자신의 몸을 허물어 마을을 품고 있었다. 사람살이의 모양새는 다소곳했다. 산은 물을 담고 물은 산을 곧추 세우며 절경을 빚어 놓고 있었지만 그 흔한 정자 하나 없었다. 그곳에는 거들먹거리며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시선이 없었다. 버들치, 황조롱이, 수달… 그리고 사람들은 동등한 거주자였다.
- ▲ 하늘에서 본 동강(항공촬영). 하단 오른쪽 화면 밖이 백운산이고, 왼쪽의 첫 번째 굽이의 뼝대 앞이 나리소다. 가운데 오른쪽 굽이가 소동마을, 다음 왼쪽 굽이가 제장마을이다.
![](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08/06/19/2008061901136_2.jpg)
줄을 당겨 이쪽저쪽을 오가는 배나 삿대질만으로 움직이는 조각배를 타거나 혹은 바지를 걷고 강을 건너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가는 할아버지가 부르는 정선아라리였다. 시름겨운 세월을, 나날의 힘든 노동을 저 노랫가락으로 넘었겠지 싶어서 조금은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한참 동안 서서 그 노래를 듣다 보니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할아버지는 지금 자신과 한 몸이 되어 밭을 가는 소한테 노래를 불러 주는구나. 나는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고 아직도 그렇게 믿으며 생생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후 동강댐 계획은 백지화되었고 몇 년 사이에 소위 국민관광지로 변했다. 여름이면 래프팅 보트가 빼곡히 강을 메웠고 사람들의 발길에 의한 환경 훼손이 입길에 오르내렸다. 자탄과 냉소의 소리도 들려왔다.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았다. 곱게 간직된 기억에 상처를 내기 싫었다. 그런데 문득 백운산에서 내려다본 작은 마을과 나리소의 비오리 가족 생각이 났다. 더 없이 평화롭고 자족적인 삶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작아지는, 더 작아지는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도 자고 나면 군더더기가 늘어나는 내 삶의 엇박자를 조롱받고 싶었다.
역시 동강은 변해 있었다. 길목마다 입장료를 받았고 넓어진 길은 날씬하게 포장돼 있었다. 마을마다 다리가 놓아졌고 바깥세상과 마을을 이어주던 배들은 강가 모래 언덕에 누워 뜻한 바 없는 휴식을 노역 삼고 있었다. 시비할 일도 실망할 일도 아니다. 입장료는 조신이라고는 모르는 외지인의 행티를 먼저 탓할 일이고, 유람 삼아 오는 사람들 볼거리 삼자고 그곳 사람들의 불편한 생활을 기대하는 것도 고약스런 심보다. 하지만 주변과의 조화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펜션은 을씨년스럽다. 그곳엔 삶이 담겨 있지 않았다.
- ▲ 전교생이 9명인 운치분교. 동강과 함께 흘러가야할 사람의 샘물.
얽히고설킨 삶의 무게를 한 방울 이슬인 양 털어낼 수 있는 곳
앞서 한 말을 수정해야겠다. 역시 동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사람뿐이다. 동강의 진정한 매력은 동강일 뿐이다. 억겁의 물과 바람이 굽이 따라 흐르며 산을 헐어 하늘을 내려앉히고, 밤마다 별들의 꿈자리를 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구름도 조심조심 발을 딛는 아스라한 뼝대(절벽) 앞에서, 참으로 보잘것없는 나를 발견하는 일은 또 얼마나 통쾌한가. 백운산에 오르면 구비 도는 강물, 그 거대한 시간의 화석은 인류라는 종이 지구에 등장한 몇 십만 년의 역사가 찰나였음을 일깨워준다.
동강만큼 산이 어떻게 강을 꼴 짓고 물이 어떻게 산을 변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도 드물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에게 강산(江山)은 자연 또는 국토의 다른 말이 된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이고 산이 곧 강의 모태이니, 우리 모두는 산과 강에 깃들어 사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산을 고장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경우도 있고, 발원에서 하구까지를 이르는 지리학적 강의 개념은 그리 단단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한강은 백두대간의 함백산과 매봉산 사이에 있는 금대봉에서 발원하여 서해에 이르는 514km의 강줄기를 일컫지만, 이와는 별도로 지역마다 달리 이름을 붙인다. 홍천강, 여강, 동강 등도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 ▲ 연포. 원치 않은 휴식을 노역 삼고 있는 나룻배. 하지만 자연은 늘 그래왔듯이 스스로 흐르고 그렇게 푸르다. 이것이 신통묘용.
동강은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아우라지에서 대관령에서 발원한 송천을 만나 조양강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다가, 오대산에서 흘러내리는 오대천을 정선군 북평면의 남평 들녘에서 품에 안은 다음, 가수리의 수미 마을에서 동남천과 합치면서 비로소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여기서부터 영월읍 하송리의 합수거리에서 서강을 만나기까지 정선·평창·영월 3개군에 걸쳐 흐르는 51km의 물줄기가 바로 동강이다. 첩첩이 가로막고 선 산을 돌고 또 돌며 왕성한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른 절경이 빚어진 것이다. 또한 석회암이 물에 녹는 화학적 침식으로 많은 굴이 만들어져 철새인 비오리가 텃새처럼 눌러앉아 사는 독특한 생태환경을 이룬다.
우리에게 강산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더없이 위엄스런 몸짓으로 보여 주는 곳이 바로 동강이다. 개울 같은 살가움과 장강 같은 유장함이 어우러져 있다. 황새여울이나 된꼬까리 같은 살여울이 급하게 흐르기도 하고, 나리소와 어라연 같이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기도 한다. 우리의 강산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래서 동강은 특별하다.
- ▲ 소골(소동마을)의 아침. 숲과 산과 사람의 집을 어루만지는 강의 손길. 동강의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동강을 제대로 만나려면 무엇을 어떻게 보겠다고 작심하고 수험생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어서는 곤란하다. 이곳저곳 발길 닿는 대로 기웃거려도 좋고, 연포분교처럼 아이들 대신 잡초만 무성한 학교 마당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불러내 봐도 좋고, 하염없이 절벽을 바라보면서 얽히고설킨 삶의 무게를 한 방울 이슬인 양 털어내 보는 것도 좋겠다. 물안개가 산을 지우는 새벽이나 햇살이 산을 다시 살려내는 이른 아침에, 문득 다가갔다가 슬며시 돌아서는 건 또 어떨까. 동강은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야 할 강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고, 깜빡 졸다 깨어나 정신없이 달리는 그런 강이 바로 동강이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다시 동강에 가면 산처럼 물처럼 사는 법을 물들이고 싶다. 행여 그리 될 수만 있다면 별을 안고 뒤척이는 강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ㆍ동화작가 사진 정정현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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