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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마음가는대로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by 세포네 2008. 5. 7.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故 박경리 선생님을 추모하며...

           

           

          땅에 하늘을 심고

                                         詩 신 영



          황톳바람 짙은 이른 봄
          겨울을 보내지 못한 시린 봄날에
          구겨진 신문지에 씨앗을 싸서
          꼬깃꼬깃 호주머니에 담고
          봄을 기다리며 서성거렸습니다

          겨우내 얼고 언 굳어진 땅
          만지작거리던 호주머니의 씨앗
          차마 기다리지 못한 설움에
          손수 당신의 손을 쟁기 삼아
          갈고 닦아 텃밭을 일궜습니다

          하늘만큼 넓고 높은 푸른 꿈
          가슴에 빼곡히 담아
          이른 봄 텃밭 이랑과 고랑 샛길에
          하늘길을 열며 꿈과 희망을
          씨앗에 묻혀 땅에 심었습니다

          한평생 일구던 채마밭 고랑에는
          어제 뽑다 만 풀뿌리들 누워 있고
          밭 이랑마다 촉촉이 젖은 땀방울
          굽이마다 남은 당신의 숨결은
          오늘 꽃피우고 내일 열매 맺으리.

          봄비 촉촉이 내리는 날
          텃밭의 이랑과 고랑 사이마다
          당신은 하늘과 땅의 비가 되어
          하늘에 땅을 적시고
          땅에 하늘을 심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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