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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터키 1 - 이방인 선교 출발, 중심지 '동방의 로마'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

by 세포네 2007. 11. 18.

"터키 1 - 이방인 선교 출발, 중심지 '동방의 로마'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

그리스도를 믿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 첫 탄생, 비밀장소 석굴 보존, 성모님도 머물러


   성경은 교회의 시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바탕을 두고 발생했으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돼 복음 선포를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한 사도들은 스테파노의 순교로 교회 공동체 일부가 예루살렘에서 내쫓기자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전역으로 선교하기 시작했고, 이방인들도 교회에 받아들였다. 그 첫 중심이 바로 당시 시리아의 수도였던 '안티오키아'였다(사도 11,19-26; 갈라 2,11-14).
 안티오키아가 이방인 선교의 출발지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베드로가 환시를 통해 할례를 하는 유다인 정결 계명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기(사도 10,15-20) 때문이다. 또 지리상으로 예루살렘에서 북방으로 약 500km, 지중해로부터 약 30km 내륙에 있어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안티오키아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인 셀레우코스 니카토르가 기원전 312년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우고 도읍으로 삼은 곳이다. 셀레우코스 왕이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따 처음, 안티오케이아로 지은 이 곳은 오론테스 강에 자리해 초대 교회 당시 수십만 명이 거주해 '동방의 로마'라 불릴 만큼 헬레니즘화한 찬란한 대도시였다. 안티오키아는 그리스 말로 '전사', '군인'이란 뜻이다.
 오늘날 터키 땅 '하타이'(Hatay)또는 '안타키아'(Antakya)로 불리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는 그리스도를 믿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 신자들을 유다인들과 구분해 그리스 말로 '크리스티아노이', 우리 말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으로 부른 지역이다.
 안티오키아 선교는 사도 베드로도 직접 나섰지만 주로 예루살렘에서 쫓겨온 키프로스와 키레네 출신 그리스계 선교사(사도 11,20 참조)들이 도맡았다. 그들 중 대표적 인물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견된 키프로스 출신 바르나바(사도 11,23)와 그의 협력자 바오로였다(사도 11,25-26).
 사도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교회를 키프로스와 터키, 그리스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의 영역에서 헬레니즘의 정신세계로 이끌었다. 즉 바오로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을 헬레니즘적 개념의 새로운 칭호 '키리오스'(Kyrios)를 사용,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해 이방인들에게 선교했다.
 안티오키아는 또한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한 루카와 영지주의를 배척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고백한 순교자 이냐시오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안티오키아 교회는 2세기부터 7세기까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와 쌍벽을 이루는 안티오키아 신학파를 형성, 테오필루스, 마르첼루스, 플라비아누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등 당대 최고의 교부들을 탄생시켰다.

▨ 성 베드로 석굴 성당
 교부 오르게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교회 초대 주교라고 한다. 이는 사도 베드로 일행이 안티오키아 지역을 처음으로 선교하고 교회를 설립했음을 알려준다.
 안티오키아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실피우스 산 중턱에 성 베드로 석굴 성당 유적이 남아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생겨난 자연 석굴에 높이 13m, 너비 9.3m, 길이 7m의 석조 성당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석굴 내부는 박해자들 공격을 피하려고 여러 갈래길로 파놓은 약 4km(혹자는 10km라고도 함)의 도피로가 조성돼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이 자연 석굴은 안티오키아 최초의 그리스도인 비밀 집회 장소였고, 사도 베드로가 로마로 선교를 떠나기 전 서기 42~48년까지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또 이 곳에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바르나바가 이방인 선교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갈라 2장 참조)고 한다. 아울러 성모 마리아께서 말년에 이 곳에 잠시 머물면서 살았다고 한다.

▨ 알고 가면 기쁨 두 배
▲ 옛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땅인 오늘날 하타이로 가려면 항공편으로 이스탄불에서 아다나까지 이동한 다음, 버스로 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빠르다.
▲ 하타이에는 변변한 숙소가 없으므로 지중해변 이스켄데른(iskenderun) 지역 호텔에서 묵는 것이 좋다. 호텔 내부는 아담하지만 지중해안을 끼고 야외 수영장도 있는 쿠쿠로바 쉬르멜리(cukurova surmeli) 호텔을 추천한다.
▲ 현재 하타이에는 카푸친 수도회가 관리하고 있는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 있다. 본당 주임은 도메니코 베르톨리(Domenico Bertogli) 신부이며 성당 주소와 연락처는 katolik kilisesi, kutulus cad. kutlu sok 6,p.k 107. 31002 antakya. 0326-215-6703이다. 미사 예약시 언제든 개방돼 있다.
▲ 터키어 한 마디 : 안녕하세요(메르하바, merhaba), 감사합니다(테쉐퀴르 에데림, tesekkur ederim), 얼마예요(네 카다르, nekadar), 깎아주세요(인디림 바르 므, indirim var mi), 도와주세요(임닷, imdat)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 오늘날의 안티오키아 시내 전경. 초대 교회 당시 '동방의 로마'라 불렸던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는 로마와 페르시아 등의 빈번한 외침으로 인한 정복과 약탈로 쇠퇴해져 오늘날에는 볼품없는 소도시로 전락해 있다.

 

▲ 안티오키아 박물관 모자이크. 화려한 모자이크가 옛 시리아 수도였던 안티오키아의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 카푸친 수도회가 관리하고 있는 안티오키아 유일의 가톨릭 성당 전경.

 

▲ 성 베드로 석굴 성당 정면. 겉모습은 초라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천연 동굴의 미로가 박해시기 초대 교회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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