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by 세포네 2007. 10. 14.
728x90
근대적 성당 건축의 모태

 

2007년 10월 현재 정부가 지정한 등록문화재 357건 가운데 가톨릭교회 관련 건축물은 모두 19건. 그 중에서 서울에 있는 것은 단 하나, 혜화동성당(주임 김철호 신부)이다. 

서울 한복판 종로구에 있는 혜화동은 한국교회 '믿음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제 양성의 요람인 대신학교와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가톨릭의 명문 동성고등학교, 중림동본당(1892년)과 명동본당(1898년)에 이어 서울에서 세번째(1927년)로 설립된 혜화동본당이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혜화동이 믿음의 고향이 된 데는 독일 성베네딕도회의 공이 컸다. 조선대목구장 뮈텔 대주교가 한국교회 교육사업을 맡아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한국에 진출한 독일 '성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 회원들은 1909년 혜화동 일대 전망 좋은 땅 10만여㎡을 구입해 수도원을 세웠다. 이후 베네딕도회가 1927년 수도원을 덕원으로 옮겨가자 서울대목구가 수도원 땅을 매입했고, 이 수도원 터에 지금의 대신학교와 혜화동성당, 동성고(1929년에 이전)가 들어섰다.
 2006년 3월 2일에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된 혜화동성당은 80년 전 본당 설립 당시 성당이 아니라, 1960년 5월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문화재청은 아직 50살도 되지 않은 혜화동성당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붉은 벽돌조 종탑의 대비를 통한 균형미, 비대칭 입면구성 등은 당시 고딕 양식으로 정형화되어 있던 성당 건축의 틀을 깨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건축되는 근대적 성당 건축의 모형이 되는 기념비적 건물이다. 또한 조각가 김세중의 부조 작품으로도 유명하며, 종교사적ㆍ건축사적ㆍ미술사적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 건축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기념비적 성당이라는 설명이다. 오늘날 세워지고 있는 다른 성당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근대적 건축미를 자랑하는 혜화동성당. 이 성당이 반백 년 전인 1960년에 세워진 건물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성당 건물만 문화재가 아니다. 소장하고 있는 성미술품 모두가 문화재급이다. 어느 것 하나 대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정웅모(서울대교구) 신부는 저서 「교회미술 이야기」에서 "이 성당 건립에 내로라하는 가톨릭 예술가들의 정성이 하나로 집결됐기 때문에 이 성당을 건축하면서 한국교회 미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성당 건립은 1950년대 후반 장발(루도비코, 1901∼2001년, 장면 전 국무총리의 동생)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의 지휘로 이뤄졌다. 설계를 맡은 이는 이희태(요한, 1925∼1981)씨. '절두산 순교 기념관' 설계자이기도 한 이씨는 기존 성당 개념을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살려나간 독창적 건축가였다.
 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관 위에 있는 '최후의 심판도' 화강석 부조다. 1961년 김세중(프란치스코, 1928∼1986) 서울대 교수가 원도를 작성하고 장기은 교수와 함께 조각한 이 부조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요한 14,6),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루카 21,33)는 성경 구절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명의 복음서 저자 상징이 좌우에 자리잡고 있다.
 혜화동성당에 있는 수많은 성물들 가운데 일반 신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으로는 제대 앞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는 '103위 순교 성인화'(1977년, 285×330㎝)를 꼽을 수 있겠다.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3위 성인 시성식을 계기로 한국교회 공식 성인화가 되다시피한 이 그림은 문학진(토마스) 화백이 10개월 동안 전례ㆍ역사ㆍ복식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은 뒤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103위 한분 한분 표정을 특색있게 그려낸 것이다. 시대와 신분이 각기 다른 순교자들이 기쁨에 가득찬 모습으로 천국 개선을 기다리는 이 그림은 보는 이에게 푸근한 감동과 평화를 안겨준다.
 혜화동성당에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성미술품은 한둘이 아니다.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대작만 꼽아도 이남규(루카, 1931∼1993년) 교수의 유리화 29점이 있고, 권순형(프란치스코) 교수가 '성사'라는 주제로 제작한 제대 뒤편 도자 벽화가 있다. 김세중 교수가 1958년에 청녹색 대리석으로 제작한 제대는 당시 본당 사목회장이었던 장면(요한) 전 국무총리가 본당에 기증한 작품이다.
 성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활 성수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종상(요셉) 화백이 1994년에 제작한 성수대 위에 예수 부활상(임영선 교수 제작)을 얹은 합작품으로, 상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관을 쓴 채 못자국이 선명한 두 손을 포개 얹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최종태 교수, 최봉자 수녀 등 내로라하는 성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교회 미술의 보물창고'가 혜화동성당이다. 전문적 식견은 없더라도 차분한 마음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하나하나 음미한다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숨결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철호 주임신부는 "성당 건물만 문화재가 아니라 영성적으로도 문화재급인 본당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면서 "특히 혜화동성당이 젊음과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와 붙어있는 만큼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 혜화동성당 전경. 혜화동성당은 1960년대 이후 건축되는 근대적 성당의 모형이 되는 기념비적 건물이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 성미술 대가들의 작품이 가득한 성당 내부는 교회 미술의 보물창고다.

 

▲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 김세중 교수가 1958년에 청녹색 대리석으로 제작한 제대는 당시 본당 사목회장이었던 장면(요한) 전 국무총리가 본당에 기증한 것이다.

 

▲ 제대 앞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는 '103위 순교 성인화'. 문학진 화백 작품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