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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

by 세포네 200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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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 살아있는 가톨릭 미술의 '보고' "

가톨릭 등록문화재를 찾아서-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등록문화재 제54호)

춘천 죽림동성당(주임 문양기 신부) 잔디밭에 쏟아지는 만추(晩秋)의 빛이 영롱하다.


 

▲ 울굿불긋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죽림동성당. 춘천교구 역사와 교회미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모자상 옆 단풍은 한낮 햇살을 안고 반짝거린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을 타고 한가로이 나뒹군다. 파란 하늘을 향해 솟은 종탑도 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춘천시내 약사리 고개 정상에 자리잡은 죽림동주교좌성당은 아일랜드에서 진출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건축한 석조성당의 대표작이다.


 

 이 성당에서 보듯 서양 선교사들이 건축한 성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마을 한가운데 고지대에 들어서 있다. 첨탑과 색유리화, 장방(長房)형이 특징인 고딕식 또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그 연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랜 박해 속에서 숨죽였던 교회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죽림동성당은 교구 역사와 빼어난 건축 예술미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성당 입구에서 올려다 보이는 종탑 십자가는 서울 명동대성당의 옛 십자가와 똑같은 모양이다. 1939년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돼 지목구(知牧區)로 출발한 교구임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 성당 청동문에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선교 공적을 기리는 옛 아일랜드 십자 문양(위)과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안고 이집트로 피난가는 장면(아래) 등이 새겨져 있다

 

청동문 윗단에는 옛 아일랜드풍 십자 문양 한 쌍이 새겨져 있다. 척박한 강원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한국전쟁 전후의 궁핍한 시기에 주교좌성당을 건축한 성골롬반회의 업적을 기리는 표식이다.


 성당건축 기공일은 벽에 붙어있는 라틴어 초석이 말해주듯 1949년 4월 5일이다. 부지는 교구 요람인 곰실공소(춘천시 동래면 고은리)의 신자들이 마련한 아랫터와 구 토마스 신부가 매입한 윗터를 합해 마련했다. 실제 건축은 전남 광주에서 온 '자'씨 성을 가진 중국인 기술자와 또 한 명의 기술자가 맡았다. 지금도 흠잡을 데 없이 튼튼한 석재는 멀리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실어왔다.

 그러나 외벽을 쌓고 동판 지붕까지 얹고 나자 전쟁이 일어났다. 공사를 지휘하던 구 토마스 신부는 미사 집전 도중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성당은 유엔군 공습으로 인해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 때문에 1956년에야 봉헌식을 가질 수 있었다.

 죽림동성당뿐 아니라 춘천교구 역사를 얘기할 때 곰실공소 엄주언(마르티노, 1872~1955)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엄 회장은 외로이 공소를 세워 춘천 전역으로 신앙을 전파한 평신도 지도자다. 가족을 이끌고 천진암에 가서 교리를 배우고 돌아와 열렬하게 복음을 전한 그의 헌신적 활동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그는 수년간 공을 들인 끝에 1920년 김유용 신부를 모셔오고, 성당을 짓기 위해 전답까지 처분했다. 성당 아래에 있는 '말딩회관'은 교구가 그의 업적을 기리려 1999년에 건축한 것이다.

 죽림동성당은 흔히 한국 가톨릭미술의 보고(寶庫)라고 불린다. 특히 성당 내부는 '전례공간 구성의 교과서'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서 요즘 성당 신축을 준비 중인 타 교구 사목자들이 심심찮게 찾아와 살펴보고 간다.

 이런 명성은 1998년 대대적 보수공사를 벌인 덕분에 얻었다. 성미술과 전례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는 교구장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계의 내로라하는 예술가 20여 명이 야외 성상부터 촛대까지 구석구석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었다.


▲ 약사리 고개를 자비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예수성심상.

 

 마당 한 켠에서 약사리 고개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예수성심상은 조각가 최종태(요셉) 선생 작품이다. 이보다 더 뜨겁게 예수 성심을 찬미할 수 있을까 하는 신앙고백이 성상 좌대에 적혀 있다.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성심은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마음 자체이며, 온 인류 구원의 중심이자 원천이시다."

 청동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레 화강암 제대 쪽으로 쏠린다. 시선을 빼앗는 장식물이 극도로 절제된 덕분이다. 제대는 미사전례의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기념되고 재현되는 장소이자 성체성사로 마련된 주님의 식탁이다.

▲ 성당 내부 제단.

 

 최영심(빅토리아) 선생 작품인 22개 유리화는 '색과 빛으로 쓴 성경'이라고 할만하다. 도금 동판의 감실, 주교좌(主敎座), 독경대, 십자가의 길 14처, 성수대 등 모든 것이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배치돼 있다.


 성당 내부에 열주(列柱, 줄기둥)가 사라지고 평면이 하나의 강당처럼 통합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 성당 뒤편에 있는 교구 성직자 묘역.

 

 앞서 건축된 용소막(1915년)ㆍ공세리(1921년)ㆍ구 합덕성당(1929년) 등은 열주가 있다. 하지만 종탑과 아치 등 형태에 관심이 집중된 데다 시공이 불완전해 열주가 갖는 공간 분절화 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게 건축가들 평이다. 죽림동성당 건축을 기점으로 원주 원동(1954)ㆍ서울 돈암동(1955)ㆍ강릉 임당동성당(1955) 등은 열주 없이 평면이 통합됐다. 

 이를 놓고 볼 때 죽림동성당은 성당 공간의 전환기적 성격을 띠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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