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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여행이야기

[그 섬에 가고 싶다] 신앙 선조들의 숨결 살아있는 '추자도'

by 세포네 2007. 7. 15.

신앙 선조들의 숨결 살아있는 '추자도'

 

■바다 낚시터, 추자10경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1271년(고려 원종 13년)까지 후풍도(候風島)라고 불렀으며, 그 후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면서 추자도로 개칭하고, 1910년 제주에 딸리게 되었다.

다금바리를 제외한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며,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로 많은 낚시인들이 찾는다.

현재 인구는 2800여 명 정도이며 주업은 수산업, 특히 멸치잡이로 유명하다. 우두일출(牛頭日出, 속칭 소머리섬), 신양 포구의 해변인 장작평사(長作平沙) 등 ‘추자 10경’이 있어 볼거리 면에서는 어느 관광지 못지않다.

■신앙의 뿌리를 내리다

1801년은 추자도의 신앙이 싹을 틔운 시기다. 신앙의 거름을 준 이들은 황사영(알렉시오)·정난주(마리아) 부부.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황경한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황사영은 순교했고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 정난주는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됐다.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것을 걱정한 정난주는 제주도로 가기 전 아들 경한을 추자도의 갯바위(속칭 황새바위)에 남겨놓았다.

아들 경한은 그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 두 아들을 낳았다. 갯바위에서 울던 경한은 생을 다한 후 하추자도 예초리 남쪽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묻혔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상추자도에는 제주교구 서문본당(주임 양명현 신부) 추자공소가 위치해있다. 이곳 신자들의 신앙은 무척이나 뿌리 깊다.

추자공소의 신자수는 약 30여 명. 매주일 오전 11시에 공소예절을 하며, 미사는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달에 1번 서문본당 주임 또는 보좌 신부가 방문해 미사 집전을 한다.

신자들은 마땅한 전례서가 없어 가톨릭교회교리서를 바탕으로 예절을 하고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양한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들이 아쉬워하는 가장 큰 부분은 육지 신자라면 매일 영할 수 있는 성체를 1달에 1번, 그것도 기후가 좋을 때만 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었다. 전례력에 따른 기도생활과 성체조배도 열심히 했다. 이와함께 명절 때면 황경한 묘역 벌초를 통해 신앙 후손으로서의 의지를 다지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추자도 가는 길

추자도는 목포와 제주에서 배편을 이용해 갈 수 있다.

목포에서 출발할 경우 목포항에서 오전 9시10분 또는 9시30분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7월 20일부터 8월 15일까지는 특별수송기간으로 10% 할인 요금이 적용된다.

제주는 제주공항에서 출발할 경우 공항좌석 100번 버스를 이용(약 10분 간격), 종점인 제주항여객선터미널에서 하차. 약 30분 소요된다.

배편은 오전 10시에 출발해 1시간 정도 걸리는 쾌속선과 오전 11시에 출발해 2시간30분 정도 걸리는 배, 두 편이 있다. 현재는 비성수기라 따로 예약이 필요없다.

저렴한 가격의 숙소를 원한다면 추자공소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공소에는 20여 명 수용 가능한 방이 있으며 식당이 있어 자체적으로 취사를 해결할 수 있다. 세면시설도 있으며 이용료는 무료.

※문의 064-742-3777 추자공소, island.haewoon.co.kr 제주여객터미널, www.seaferry.co.kr 씨월드 고속훼리(주)

두 달 만의 공소 미사

추자공소 신자들

7월 2일 오후 5시. 공소로 신자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었다. 이날은 두 달 만에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었다.

제주교구 서문본당 주임 양명현 신부는 공소에 도착하자마자 신자들을 반갑게 맞았다.

“신부님 잘 지내수꽈” “어이구~ 얼굴 좋아졌네” 양신부와 신자들은 2달 만에 재회(?)한 기쁨을 한껏 나타냈다. 미사에 참석한 신자는 25명 정도. 이정도 수치면 신자 대부분이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사 후 모두가 식당으로 모였다. 삼치·조기 구이, 광어회 등 지역특산물이 그대로 상위로 올라왔다.

“신부님 우리 식당 문에 붙일 모기장 좀 갈아줘요” “광어 좀 드세요. 이게 5~6월 밖에 안 잡히는 거예요”

이태재(미카엘?53)씨는 “신부님이 오시는 날에는 공소 신자 대부분이 모여 신부님과 음식을 나누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고 귀띔했다.

한 자매님이 기자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기자 양반, 내 술 한잔 받아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어요?” 쓰디쓴 술의 맛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 따뜻한 정(情)만이 한껏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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