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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2월 31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2. 31.

고르넬리오(12.31)

미네르비노(12.31)

스테파노(12.31)

심플리치아노(12.31)

아탈로(12.31)

퀸시아노(12.31)

파비아노(12.31)

폰시아노(12.31)

플로스(12.31)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와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성 아탈루스(Attalus), 성 파비아누스(Fabianus),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 성 플로스(Flos), 성 퀸티아누스(Quinctianus), 성 미네르비누스(Minervinus), 성 심플리키아누스(Simplicianus)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카타니아(Catania)에서 순교하였다.

 

골룸바(12.31)

신분 : 동정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상스

 

   상스의 성녀 콜룸바(또는 골룸바)는 프랑스에서 크게 공경을 받는 순교자이나, 순교한 연대와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미난다(12.31)도나타(12.31)루스티카(12.31)바울리나(12.31)세로시나(12.31)힐라리아(12.31)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녀 도나타(Donata)와 성녀 바울리나(Paulina), 성녀 루스티카(Rustica), 성녀 노미난다, 성녀 세로티나(Serotina), 성녀 힐라리아(Hilaria)와 동료 신자들은 로마의 여인들로 로마제국의 초기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살라리아(Salaria) 가도에 있는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멜라니아(12.31)

(과부)

피니아노(12.31)

신분 : 자선가

연대 : 383-439년

 

   성녀 멜라니아는 로마 원로원인 푸블리콜라와 이교 사제의 딸 또는 그리스도인이 된 체이오니아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불과 14세의 나이로 사촌인 성 피니아누스(Pinianus)와 결혼했는데, 이 결혼은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두 아이가 태어났지만 곧 죽었는데, 남편인 성 발레리우스 피니아누스는 아내의 신심을 인정하여 그녀의 부친이 사망하면 하느님께 대한 봉헌생활을 하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녀의 부친이 막대한 유산을 딸에게 남긴 채 사망했을 때, 그녀와 성 피니아누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알비나(Albina)는 로마(Rome)를 떠나 신앙의 중심지인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성녀 멜라니아가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막대한 재산의 일부를 매각하자 집안의 심각한 반발을 샀지만, 황제 호노리우스에게 호소하여 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당대 최고의 박애주의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Palestina)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고, 유럽의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도왔으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 포로들과 순례자들을 도왔고, 2년 동안 약 8천명의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406년 그녀와 그 일행들은 고트족의 침입을 피하여 메시나(Messina)로 갔고, 거기서 다시 카르타고(Carthago)로 건너갔다. 그들은 리파리 섬에 좌초하였으나 해적들에게 속량금을 줌으로써 풀려날 수 있었으며, 410년경에는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남자와 여자를 위한 수도원을 각각 세우고, 자기 자신도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며 지냈고, 417년에는 남편과 어머니 알비나와 더불어 성지를 순례하고,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을 찾아보고는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사촌 바울라(Paula, 1월 26일), 조카 성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9월 28일)을 만났고, 이들의 안내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지도하는 베들레헴의 수도자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 후 14년 뒤에 알비나가 사망하고 그 이듬해에는 성 피니아누스가 운명하자 그녀는 그들의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므로 자신이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439년 성탄절을 베들레헴에서 지내고 그 해 12월 31일에 예루살렘에서 사망하였다.

 

바르바시아노(12.31)

신분 : 신부

연대 : 5세기

지역 : 라벤나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사제인 성 바르바티아누스(Barbatianus, 또는 바르바시아노)는 선교를 위해 로마(Rome)로 갔고 그곳에서 황후 플라키디아 아우구스타(Placidia Augusta)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그녀는 성 바르바티아누스를 설득해 황제궁 근처인 라벤나에 거주하도록 하였고, 그곳에 그를 위해 수도원을 건립해 주었다. 그는 현명한 충고를 통해 황후의 호의에 보답하였다.

 

사비니아노(12.31)포텐시아노(12.31)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00년

지역 : 상스

 

   성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또는 사비니아노)는 프랑스 상스의 초대주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성 포텐티아누스(Potentianus)는 아마도 그를 계승하여 상스 교구의 두 번째 주교가 된 듯하다. 그들 둘은 모두 순교하였고 상스 교구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사도 베드로(Petrus)의 직제자라고 하나 오늘날 그러한 이야기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요한 프란치스코 레지스(12.31)

신분 : 신부, 선교사

연대 : 1597-1640년

 

  성 요한 프란치스코 레지스(Joannes Franciscus Regis)는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 지방의 나르본(Narbonne) 교구의 한 마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불과 10여 년 동안만 예수회의 신부로서 선교사로 활동하였지만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활동 영역은 주로 오베르뉴(Auvergne)와 랑그도크에 한정되었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그는 몸으로 그들과 함께 산 사람이었다. 그는 1716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조티코(12.31)

신분 : 신부

연대 : 350년

지역 : 콘스탄티노플

 

  성 조티쿠스(또는 조티코)는 로마(Rome)의 사제였다. 그런데 그 당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김에 따라 그 역시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수도에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들을 위한 자선시설을 설립하였다. 고아들의 부양자로서 헌신한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 앞에서 그리스도교의 정통신앙을 증거하였다

 

헤르메스(12.31)

신분 : 구마자, 순교자

연대 : 270년

지역 : 로마

 

   성 헤르메스는 구마자로서 아마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한 듯하다. 그는 또한 다른 헤르메스 성인과 혼동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1월 4일에 기념하는 성 헤르메스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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