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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2월 31일 성 실베스테르 1세 교황

by 세포네 2006. 12. 31.

 

축일:12월 31일

성 실베스테르 1세 교황

San Silvestro I Papa

St. Pope SYLVESTER I

St. Silvester, Pap. C

St. Slyvester

31 December (Latin calendar); 2 January (Eastern calendar)

Born :Roman

Papal Ascension 31/01/314

-31 December 335 at Rome, Italy

Canonized :Pre-Congregation

 

 

 

성 실베스텔은 로마 사람이다. 그는 313년에 종교의 자유를 얻고 평화를 획득한 시기에

성 밀시아데스를 계승하여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의 이름이 교회사에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은 알려진게 거의 없다.

교회의 첫번째 공의회는 325년의 니체아회의이다.

그러나 실베스뗄은 감옥에 있었으므로 직접 참석치 못하고 대표자 2명을 파견하였다.

그는 비아 살라리안의 프리실라 묘지에 안장되어 있으며,

그때까지의 교회사를 보면 순교하지 않은 최초의 교황이었다고 한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로마의 콘스탄티노 대제와 막세시오 황제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을 때다. 막센시오측의 군세는 매우 우세했다.

그때 대제는 홀연히 하늘에서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나

"이표로 인해 승리를 얻을 것이다. "라는 글자가 적혀 있음을 보고,

십자가 표를 한 군기를 만들어 전두에 내세우고 진군해,

과연 로마 성문 밖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어 천하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것은 312년 10월 28일의 일이었는데, 그는 비로소 그리스도교가 참된 교임을 깨닫고

이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했다.

이리하여 과거 3백년동안 게속되었던 박해는 종식되었는데,

당시의 교황 멜키아데스를 비롯한 온교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성 콘스탄틴 황제 축일:5월21일

성 밀시아데스 교황 축일:12월10일

 

 

밀라노칙령

Edictum Mediolanense

 

313년 2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치니우스(Licinius)가 밀라노에서 회담하고 6월에 발표한 칙령으로

로마제국의 전 영토 내에서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라 박해시대에 몰수되었던 교회의 재산이 모두 반환되었고,

그리스도 교인을 속박하던 모든 법률은 폐지되었다.

이 칙령은 리치니우스가 막시미누스 다자(Maximinus Daza)를 무찌른 후 오리엔트 총독에게 보내

<박해자의 죽음에 대하여>(De mortibus persecutorum, 348)란 서한 속에 실려 있었고, 이것이 다시

락탄시오(Lactantius)와 에우세비오(Eusebius)에 의해 인용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밀라노칙령은 양 황제의 의견차로 인하여 밀라노에서 공포되지 못하였고,

칙령이라기보다는 동방지역의 총독들에게 보낸 포고문의 형식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가톨릭대사전에서)

 

 

멜키아데스 교황이 세상을 떠나자, 그 후계자가 된 분은 박해시대에 많은 공로를 세운 실베스테르였다.

그는 로마 명문의 영식이요, 열심한 어머니 유스티나의 교육을 받아 경건하게 자라났으며

더욱이 학덕을 겸비한 카리노라는 신부에게 신학과 기타 학문을 배우고 신품을 받았다.

 

그 당시에 디오클레시아노와 막시미아노 두 황제의 혹심하고도 가장 잔인한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실베스테르는 하느님의 안배하심인지 기묘하게 관가의 손을 피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이를 다행으로 여기고 잠복한 장소에서 잡힌 신자들을 찾아가 몰래 영성체를 시켜 주며,

혹은 위로하고 혹은 격려하며 그들의 순교에 대한 각오를 굳게 해 주었다.

그 열성, 그 성실, 이것이 인정되어 그는 뒷날 교황으로 선택된 것이다.

 

외부에서의 박해에서 숨을 약간 돌리기도 무섭게, 이제는 내부에서 오는 박해에

실베스테르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당시 인심을 현혹시킨 것은 은총이 없는 성직자가 행한 성사는 무효라고 주장하는 도나투스(도나토)파와,

성자(聖子)는 최고의 피조물이며 하느님은 아니라는 아리우스(아리오)파의 이단들이었다.

그래서 실베스테르 교황은 프랑스의 아를르에서 공의회를 열어 도나투스의 사설을 파문하고,

이어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공의회를 열고 아리우스파를 파문해 교회를 순수히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그의 최대의 공적이었다. 그러나 실베스테르 교황은 너무 고령이었으므로 니케아에는 참석치 못했다.

그는 대리로 코르도바의 주교 호시우스(소시오)와 수행원으로 비토 및 빈첸시오 신부를 보냈다.

그리고 아리우스파에 대항해서 구세주의 천주성을 명확히 규정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 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만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이는 곧 니케아 신경으로 미사때 외우고 있는 것이다.

 

 

실베스테르에게 파문을 당한 이단자들은 자신들의 도리에 어긋남을 회개함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에게 앙심을 품고 갖은 모략과 중상으로 그의 평판을 나쁘게 하고 그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통을 주었으나, 일단 교회를 위해 이미 생명을 내건 교황인지라 그런 정도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침내는 오랜 박해로 인해 슬프게도 미사 성제를 카타콤바 같은 곳에서 숨어서 지냈으나, 실베스테르는

교회에 자유를 준 콘스탄티노 대제의 원조를 받아 공공연히 예식을 거행할 수 있는 성당을 도처에 건립했다.

 

 

세계에 유명한 성 베드로 대성전이며 성 바오로 대성전도 최초의 것은 그 시대에 건축되었다.

그리고 그는 빈민 구제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이같이 교회를 위해 많은 공적을 남긴 실베스테르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은 335년12월31일이었다.

그는 비아 살라리안의 프리실라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때까지의 교회사를 보면

순교하지 않은 최초의 교황이었다고 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314년 로마 교회의 주교로 서품되어 콘그탄티누스 대제 때 교회를 다스렸다.

그 당시 도나투스파 분열주의자와 아리우스 이단이 교회에 큰 문제를 가져다 주었다.

335년에 세상을 떠나 비아 살라리아의 프리스킬라 묘지에 묻혔다.

 

 

교회사상 매우 중요한 시기에 로마교구에 있었으면서도 거의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5세기 말경 로마에서 성립된 전설 <실베스테르 행 전>(Actus Silvestri)에 의하면,

그리스도 교도를 박해한 벌로 나병에 걸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꿈속에 나타난 베드로와 바울로에게서 실베스테르를 찾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그에게 라테라노에서 세례를 받고 나병이 치유된 것 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황제는 교회나 로마의 주교들을 위해 유리한 법률을 제정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공헌을 찬양하고 있는데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가 황제로 부터 하사받은 땅에 로마의 대성당으로서 라테라노 대성당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그는 또한 교회에 대한 광범한 권리를 준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문서>의 수령자이다.

니체아 공의회(325)에 그 자신은 출석치 않았으나 두 사람의 교황사절을 파견하였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 주교의 [교회사]에서

(Lib.  10, 1-3: PG 20, 842-847)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평화

 

모든 것에 대해 우주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우리 영혼의 구원자이시고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드린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의 평화가 온갖 외적 위험과 온갖 악한 내적 성향 및 혼란 속에서 벗어나

견고하고 안전히 보존되기를 간구한다.

 

한 점의 구름도 없는 맑고 잔잔한 날이 밝아 와 그 빛으로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비추게 되었다.

우리의 일치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들까지도 우리같이 완전치는 못하다 해도

부분적으로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즐기고 있다.

 

이제까지 폭군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산산히 파괴된 모든 곳이

길고도 치명적인 파괴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는 우리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고 우리의 얼굴은 신적 기쁨으로 빛났다.

성당들도 파괴에서 일어나 높이 솟아오르고 그것을 헐어버린 이들이

그 안에서 행한 예식보다 더 큰 광채를 지닌 예식으로 빛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고 기원한 것을 목격했다.

도시마다 새로 지은 성당과 경당의 축성식을 지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축제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곳에서마저 많은 주교들과 무수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럴때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한 조화에로 일치되어 민족들간의 친교와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때에 "뼈에서 뼈가 이어지고 관절에서 관절이 이어지리라."는

예언자의 말과 미래에 일어날 것을 은밀히 예시한 다른 여러 가지 예언의 비밀이 밝혀진 것이다.

모든 지체들을 통해서 같은 성령의 힘이 흐르고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며 같은 신앙과 열성과 합심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바쳤다.

 

주교들은 장엄한 예식을 거행하고 사제들은 교회의 엄숙한 예식에 따라 순수한 제사를 바쳤다.

시편을 노래하고 하느님께서 남겨 주신 말씀을 들으며 구원적 수난의 신비들을 나누어 받았다.

모든 연령과 남녀 할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다해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기도와 감사로써 찬양 드렸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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