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浦口
- 여강 최재효
하룻밤 사이에 수묵화가 되어버린 쓸쓸한 포구
바닷바람과 갈매기조차 자취를 감춘 회백의 그곳에
맥없이 파도가 몰려와 하얀 혀를 날름거리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비릿한 바다를 사모하는 겨울 사내는 다리에 선채
석상이 되었다. 수많은 발길이 스쳐 지나가면서
새로운 추억들이 만들어지는 공간에 로댕은 홀로
서해를 응시하고 그들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린다
해가 빛을 잃고 겨우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 무렵
포구는 하얀 분으로 단장을 마치고 들떠있다
해가 거의 제 집에 다다를 즈음 그들이 나타났다
구불구불한 뱃길이 한 여름 뱀처럼 살아나고 그 위를
바쁜 입김들이 이어지면서 겨울새들은 휘파람을 분다
고소한 입맛을 잊지 못해 달려 온 수많은 바퀴들이
꾸역꾸역 사연들을 토해내자 이내 포구는 다시
젊어졌다. 살점이 녹고 잔(盞)들이 불협화음을 낸다
푸른 치맛바람에 눈도 녹고 짙은 립스틱에 번뇌도
사그라질 때 사내는 그저 멍하니 남녘 하늘만 응시한다
싸구려 가사(歌辭)에 포구도 황홀하게 취할 때면
비릿한 냄새대신 진한 꽃 냄새에 유혹 된 낯선
영혼들은 괜히 시간을 탓하거나 날씨를 들먹인다
수묵화가 끈적한 서양화로 변해 버린 포구의 초저녁
욕망의 파도가 슬며시 몰려와 붉은 혀를 날름거린다
사내 휑한 마음을 못다 채운듯 등대처럼 서있다
2006. 12. 17. 18:20
- 소래포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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