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목지는 랴오닝교구 차코우본당
◀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 등이 최양업 신부 사목지역 및 선종지 연구와 관련, 토론을 벌이고 있다.
2일 청주교구 연수원에서 열린 '최양업 신부 탄생 185주년 기념 심포지엄'은 경신박해(1860년) 앞뒤 교회사를 복원한 자리였다.
심포지엄의 골자는 한국천주교회 두번째 사제인 '하느님의 종'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 사목지역과 선종지 연구. 우선 최 신부 사목지역 연구를 통해 랴오닝교구 차코우본당과 한국교회, 동골 교회사적지와 배티, 조선교구 신학교 설립, 사목중심지 배티의 변모과정이 드러났다.
이어 최 신부 사목순방지 연구를 통해 경기, 강원, 충청, 경상, 전라 5개도를 아우르는 당시 교우촌이 세세하게 목록으로 만들어지고 그 실상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또 최 신부 선종지 연구를 통해 최 신부와 동료 선교사들의 서한을 중심으로 선종지와 관련한 문서ㆍ전승자료가 낱낱이 해부됐다. 최 신부가 선종한 지역이 '문경'인지, 아니면 '배티(진천)'인지 공개적 논의가 이뤄짐으로써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
▨ 최양업 신부 사목지역
'최양업 신부 사목 중심지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차기진(루카)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장은 1849년 4월15일 사제품을 받은 최 신부 첫 사목지는 랴오닝교구 '차코우본당'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최 신부가 베르뇌 신부(후일 제4대 조선대목구장 주교) 보좌로 첫 사목을 시작한 본당이 랴오뚱 양쿠안이라고 설명돼온 것과는 다른 대목. 이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에서 1999년에 발견된 자료 '최양업 신부의 자필 선서문'을 통해 확인됐다.
이번 발제에선 또 차코우본당 일대는 병인박해(1866년) 이후 랴오뚱으로 피신한 조선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당시 만주교구장이던 베롤 주교가 차코우 사목관할권, 즉 재치권(Jurisdictio)을 넘긴 조선대목구 관할지역이었다는 사실이 새로 공개됐다. 이로써 조선교회 대표부는 1869년 1월말(혹은 2월초)부터 1881년 일본 나가사키로 대표부가 옮겨가기까지 12년간 차코우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번 발제에서 특히 주목할 사항은 첫 조선교구 신학교가 배티에 세워졌다는 점. 이 신학교는 특히 이전과 달리 예비 신학교가 아니라 조선대목구장에 의해 조선교회에 정식으로 설립된 최초 조선교구 신학교라는 점에 뜻이 있다. 교육과정 면에서 본다면 유학준비기관으로서 소신학교에 해당하는 '조선교구 소신학교'였다. 1849년 10월 페레올(제3대 조선대목구장) 주교의 명으로 배티교우촌에 자리잡은 이 신학교는 다블뤼 신부(후일 제5대 조선대목구장)가 설립, 1854년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이 바울리노 등 해외유학생 3명을 교육했고, 1853년 9월에는 최 신부가 신학교 교육을 맡아 1854년 3월까지 책임진다. 페낭으로 신학생이 떠나면서 배티신학교 역사는 사실상 소멸됐다. 차 소장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페낭 유학생들이 돌아와 삭발례까지 받고 대신학교 역할을 했던 배론신학교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 신부의 조선 내 첫 사목지인 '진천 동골'의 소재지가 충북 진천읍 문봉리 동골인지(현재로서는 가장 유력), 아니면 진천읍 연곡리 동골인지, 백곡면 용덕리 동골인지, 백곡면 양백리 동골인지, 이월면 동성리 동골인지 여부는 앞으로 연구과제로 남겨졌다.
최 신부 사목여행지 연구를 주제로 발표한 서종태(스테파노)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11년6개월에 걸친 최 신부의 사목관할구역을 여섯 시기별로 나눠 조망한 뒤 최 신부가 서한을 작성한 교우촌과 서한 등에 나오는 기타 사목 순방지역을 개괄, 당시 교우촌 연구의 길을 터놓았다.
▨ 최양업 신부 선종지
원재연(하상 바오로)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교회 전승'을 중심으로 최 신부 선종지를 파고들었다. 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준 푸르티에 신부가 1861년 10월20일자 서한에서 "그(최양업 신부)가 누워있는 집이 저의 거처(배론신학교)에서 170~180리 떨어져 있었다"고 밝힌 대목이 논란의 관건. 이에 최 신부의 넷째 아우인 최신정 델레신포르의 부인 송 아가다가 작성한 「송아가다 이력서」, 최 신부 셋째 동생 최우정(바실리오)의 장남 최상종(빈첸시오)이 해방 이후에 쓴 「최 바실리오 이력서」와 「최 신부 이력서」 등과 기타 전승이 집중 소개됐다. 하지만 '문경 선종' 주장과 '배티(진천) 선종' 주장이 팽팽히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말의병사 연구자인 이석린 충북대 교수가 옛길 리수와 경로 등에 대해 자문하면서 문경에서 배론간 거리는 계립령(하늘재)를 넘을 경우 120~130리, 배티에서 배론간은 180리 안쪽이라는 견해가 나와 주목된다.
류한영(양업교회사연구소 관장) 신부는 최 신부 동료 선교사들의 편지를 분석한 뒤 "박해시대와 일제시대, 그리고 주재용 신부가 1975년 반론을 제기하기 전까지 최 바르나바, 정규량ㆍ유영근ㆍ오기선 신부, 최 요안나와 남상철 회장, 류홍렬 박사 등을 통해 일관성 있게 '배티가 선종지'라는 구전이 교회에 전해졌다"며 "주 신부가 '배티가 선종지'라는 가족 구전을 비판하면서도 최 신부 선종지가 '문경읍'이라고 주장하지 않은 것 또한 이상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류 신부는 "여러 문헌과 구전을 종합해 볼 때 최 신부님은 문경에서 병을 얻어 진천 인근 작은 교우촌 신자집에 간신히 도착해 선종했고 배티에 초장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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