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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경에 빠지다72

(24) 마타티아스와 마카베오 박해에 격렬히 저항, 자유 쟁취한 유다인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12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탈환한 후 25일 예루살렘 성전 정화 의식을 거행하고 새 제단을 봉헌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하누카 축제를 지내고 있다. 오리 셔먼, ‘하누카 이야기’, 캘리포니아대학교 소장.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원정길에 오릅니다. 그는 기원전 334년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메소포타미아로 돌아와 지금의 모술 북동쪽으로 30㎞ 떨어진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임금을 꺾고 페르시아를 멸망시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모든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헬라어는 정복지의 공용어가 됐고, 그리스풍의 도시가 건설.. 2023. 6. 4.
(23)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 귀향한 유다인들, 성전 짓고 믿음을 새롭게 에즈라는 예루살렘 재건 시기 유다교를 율법 중심으로 개혁한 사제이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 임금이 이끄는 페르시아인들의 침입으로 기원전 539년 멸망합니다. 키루스 임금은 티그리스 강가 오피스(오늘날 바그다드)에서 단 한 번의 승리로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바빌론으로 입성한 그는 복속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해방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다인은 그대로 바빌론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집도 있고 생계를 꾸릴 일자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런 간섭없이 자.. 2023. 5. 14.
(22) 바빌론 유배 위기를 기회로, 율법 중심으로 다시 서다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 간 유배 생활을 한 유다인 지도자들과 지식층은 율법 중심의 하느님 신앙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제임스 티소, ‘포로들의 대이동’, 뉴욕 유다인박물관.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자국 백성들을 데려와 그 땅에 살게 했습니다. 이러한 식민 정책으로 북 왕국 10개 지파는 혈통의 순수성을 잃고 신앙도 변질됐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 부르며 멸시했죠. 반면,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유다인들을 자기 나라에 끌고 갔습니다. 유다인들의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 모든 것이 뒤바뀌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제도와 체제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 2023. 5. 14.
(21) 유배 이전 예언자들 회개하라 꾸짖고 멸망을 경고한 예언자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깨웠다. 윤혜순 클라라, 엘리야 예언자, 이콘.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임금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할 때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는 말로 예언을 시작하고 끝맺습니다. 예언자들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사명은 임금이 잘못할 때에 두드러집니다. 임금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 숭배에 빠질 때 이를 나무라고 경.. 2023. 4. 30.
(20) 남 왕국 유다(아비야~아하즈) 남 왕국 유다, 부흥과 쇠퇴를 반복 남 왕국 유다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할 때까지 다윗 후손 20명의 임금이 다스렸다. 에드워드 버드 ‘요아스 임금 선포’, 유화, 1815년, 런던 왕립 예술 아카데미, 영국. 출처=Royal Academy of Arts 통일 왕국이 분열된 후 남 왕국 유다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을 완전히 파괴할 때까지 다윗 후손 20명의 임금이 다스립니다. 남 왕국 유다는 북 왕국 이스라엘보다 100년 이상 더 유지했습니다. 르하브암의 뒤를 이은 아비야(아비얌) 임금은 이스라엘의 예로보암과 전쟁을 벌였습니다.(2역대 13장) 유다의 군대는 베텔, 여사나, 에프론까지 추적해 이스라엘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아비야의 뒤를.. 2023. 4. 23.
(19) 북 왕국 이스라엘 우상숭배 일삼던 이스라엘 결국 멸망의 길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예로보암부터 호세아까지 19명의 임금이 다스렸으나 하느님과의 계약을 파기해 멸망하고 말았다. 살만에세르 3세 오벨리스크 부조, 이라크 국립박물관, 바그다드. 북 왕국 이스라엘 예후 임금이 아시리아 살만에세르 3세에게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치고 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예로보암부터 호세아까지 모두 19명의 임금이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끊임없이 모반이 일어나 임금이 죽고, 다른 이가 임금에 오르는 역사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임금들에게 ‘예로보암의 길을 걸었다’ ‘예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1열왕 15,26.34; 22.53; 2열왕 3,3 )라는 평가가 따라다녔습니다. 예로보암은 이스라엘 왕국이 망할 때까지 아니 지금까.. 2023. 4. 23.
(18)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지다 이스라엘, 나라는 분열되고 우상숭배 성행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사망한 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다. ‘프라고나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예로보암’, 1752년, 아카데미 데 보자르, 파리, 프랑스.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 기원전 933년께 솔로몬이 죽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합국’(君合國)이었습니다. 군합국은 최고 권력인 한 임금 아래에 둘 이상의 왕국이 결합해 이루어진 나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의 지파가 합해져 이뤄진 왕국이었습니다. 남쪽 지파는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말합니다. 북쪽 지파는 나머지 열 지파를 일컫습니다. 다윗이 먼저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선출된 다음 북쪽 지파 원로들이 다윗과 계약을 맺으면서 그를 왕으.. 2023. 4. 9.
(17) 솔로몬 솔로몬의 ‘두 얼굴’… 뛰어난 정치가, 불충실한 우상숭배자 출처 = 구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1─2장은 솔로몬이 왕위 계승 서열 1번인 아도니야 대신에 왕좌를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요압 장군과 에비야타르 사제의 지지를 얻어 다윗의 왕좌를 계승하려 했습니다. 나탄 예언자와 차독 사제, 다윗의 경비대장 브나야 등이 이에 반기를 들어 다윗과 밧 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되자 여느 권력자처럼 형제들과 반대자들을 모두 숙청합니다. “이리하여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46)고 성경은 밝힙니다. 솔로몬이 임금이 된 것은 사울이나 다윗처럼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신분과 동조자들의 정치 영향력 때문.. 2023. 4. 2.
(16) 다윗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 황금기를 이루다 구약 성경은 다윗이 가장 훌륭하고 이상적인 임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율법을 지킨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 작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빈 미술사박물관. 하느님께서 사울을 내치셨습니다. 사울이 길보아 산 전투에서 패하고 자결하자 유다 지파 베들레헴 출신 이사이의 작은아들 다윗이 헤브론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워졌습니다.(2사무 2,1-6 참조) 그의 나이 서른이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태조가 된 다윗은 사울 집안인 벤야민 지파의 이스라엘과 통일 전쟁을 벌입니다. 다윗은 7년 6개월간의 오랜 싸움 끝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통일합니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습니다. 사울의 왕위를 계승한.. 2023. 3. 26.
(15) 사울 2 하느님께 내쳐져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울 임금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임금 사울이 하느님께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질투심에 휩싸인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칭송받고 있는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 하고 있는 장면이다. 구글 챕쳐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법 가운데 ‘헤렘’이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헤렘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민족과 싸워 이겼을 때 남녀노소는 물론 가축까지 전멸시켜야 한다는 법입니다. 또 노획물은 하느님께 속하는 것이므로 함부로 사적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헤렘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중죄였습니다. 현대인의 사고로는 반인권 야만의 학살 행위인 헤렘을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으로 지킨 이.. 2023. 3. 19.
(14) 사울 1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은 사울입니다. 히브리어 사울은 우리말로 “요구된 사람”, “바쳐진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울의 헬라어식 이름이 ‘바오로’입니다. 사울의 족보는 사무엘기 상ㆍ하권과 역대기 상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1사무 14,51; 1사무 31,2; 2사무 2,10; 1역대 8,33 참조) 정리하면 사울은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키스의 아들입니다. 아내는 아히마아츠의 딸 아히노암이고요. 자녀는 8명입니다. 여섯 아들은 요나탄, 이스위, 말키수아, 아비나답, 에스바알, 이스 보셋이고, 두 딸은 메랍과 미칼입니다. 요나탄과 아비나답, 말키수아는 필리스티아인들과 벌인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이스 보셋은 사울이 죽은 후 아브네르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되어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작은딸.. 2023. 3. 12.
(13) 이스라엘, 왕을 요구하다 하느님 아래 이스라엘의 임금을 세우다 사무엘은 우리말로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마지막 판관이자 첫 예언자이다. 비슷한 시기에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은 빈번히 충돌했습니다. 기원전 1050년께에는 필리스티아인들이 병거와 철기 무기로 무장한 잘 훈련된 병사들을 이끌고 가나안 내륙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 맞서 각 지파에서 소집한 병사들로 연합 부대를 만들어 대항했지만, 청동기 무기를 든 보병뿐이어서 대패를 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실로에 있던 하느님의 계약 궤를 모셔와 참전했으나 보병 3만 명이 살육당하고 주님의 계약 궤마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1사무 ..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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