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도라(3.13)◀
▶마르코(3.13)◀
▶아라비아(3.13)◀
▶테오도라(3.13)◀
▶테우세타(3.13)◀
▶호레(3.13)◀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초기 순교록들은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방의 니케아(Nicaea)에서 순교한 성 테우세타(Theusetas), 성 호레(Horres), 성녀 테오도라(Theodora), 성녀 님포도라, 성 마르코(Marcus), 성 아라비아(Arabia)와 함께 더 많은 순교자들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 성 호레는 성 테우세타의 어린 아들이었다.
▶루데리코(3.13)◀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857년
지역 : 카브라
순교자 성 루데리쿠스(또는 루데리코)와 성 살로몬(Salomon)에 대한 기록은 성 에울로기우스(Eulogius)가
그 목격증인이다. 성 루데리쿠스는 에스파냐 코르도바(Curdoba) 근처 카브라의 사제였다. 그에게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또 다른 형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냉담한 상태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두 형제가 서로 언쟁을 하다가 싸움까지
하는 것을 보고 루데리쿠스가 끼어들어 말렸는데, 이들은 오히려 그를 길가로 끌어내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렸다. 그 후 이들 형제는 루데리쿠스가
그리스도교를 떠나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고 떠들고 다녔다. 성 루데리쿠스는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는 도망칠 수 있었다. 그 얼마 후 이 두 형제는
자신들의 형제인 루데리쿠스를 코르도바에서 발견하여 그 지방의 관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 고발하였다.
이리하여 성
루데리쿠스는 투옥되었는데 감옥에서 살로몬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역시 루데리쿠스와 비슷한 처지로 끌려온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함께 순교하기로 결심했다. 성 에울로기우스는 그들의 시체가 강에 버려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주민들은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조약돌들을 모아다가 유품으로 공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 루데리쿠스는 카브라와 코르도바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로드리게즈(Rodriguez) 또는 로데릭(Roderic)으로도 불린다.
▶마체도니오(3.13)◀
▶모데스타(3.13)◀
▶파트리치아(3.13)◀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성 마케도니우스(또는 마체도니오)는 니코메디아(Nicomedia)의 순교자로 그의 아내 성녀 파트리치아(Patricia)와 딸 성녀 모데스타(Modesta)와 함께 순교하였다. 초기 순교록에는 성 마케도니우스 가족을 포함해서 22명의 순교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모코에목(3.13)◀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656년
성 이타(Ita)의 조카인 성 모코에목은 카운티 다운(County Down)의 뱅거(Bangor) 수도원에서 지내던 중, 성 콤갈(Comgall)로부터 아더린(Arderin)에 공동체를 세우라는 명을 받고 리아트-모르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성 다간과 성 쿠낭하스의 스승이었다.
▶베드로(3.13)◀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123년
지역 : 카바
베드로는 이탈리아의 살레르노(Salerno) 출신으로 성 알페리우스(Alpherius)의 조카이다. 그는 매우 젊은 나이에 수도생활에 입문하여 성 레오(Leo)의 지도를 받았는데, 탁월한 신심과 고독을 사랑하는 모습이 크게 돋보였다. 그 후 그는 폴리카스트로의 초대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그 자신이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싫어하여 즉시 사임허가를 받고 카바로 물러났다. 특히 그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와는 절친한 친구였는데, 교황은 자신의 신분도 잊고 말할 정도로 이 거룩한 사람과 사심 없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사비노(3.13)◀
신분 : 순교자
연대 : 287년
지역 : 이집트
유명한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나일(Nile)강에 던져지는 익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살로몬(3.13)◀
신분 : 순교자
연대 : 857년
순교자 성 루데리쿠스(Rudericus)와 성 살로몬에 대한 기록은 성 에울로기우스(Eulogius)가 그
목격증인이다. 성 루데리쿠스는 에스파냐 코르도바(Curdoba) 근처 카브라(Cabra)의 사제였다. 그에게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또 다른 형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냉담한 상태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두 형제가 서로 언쟁을 하다가
싸움까지 하는 것을 보고 루데리쿠스가 끼어들어 말렸는데, 이들은 오히려 그를 길가로 끌어내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렸다. 그 후 이들 형제는
루데리쿠스가 그리스도교를 떠나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고 떠들고 다녔다. 성 루데리쿠스는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는 도망칠 수 있었다. 그 얼마 후 이
두 형제는 자신들의 형제인 루데리쿠스를 코르도바에서 발견하여 그 지방의 관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 고발하였다.
이리하여 성 루데리쿠스는 투옥되었는데 감옥에서 살로몬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역시 루데리쿠스와 비슷한 처지로 끌려온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함께 순교하기로 결심했다. 성 에울로기우스는 그들의 시체가 강에 버려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주민들은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조약돌들을 모아다가 유품으로 공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 루데리쿠스는 카브라와 코르도바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살로몬은 솔로몬(Solomon)으로도 불린다.
▶아넬로(3.13)◀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236년
지역 : 피사
프란치스코회의 영국 관구의 설립자인 아넬루스(또는 아넬로)는 성 프란치스코가 피사에 머물 때 직접 입회시킨
초기의 제자에 속한다. 그는 파리 수도원에 파견되었다가 원장이 되었으나, 1224년 성 프란치스코가 영국 관구 설립을 위하여 그를 대표자로
파견하였다. 그는 부제에 불과하였다. 8명의 수사들이 영국에 들어갔으나 사제라고는 리카르두스(Richardus) 한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의 회칙에 따라 돈을 한 푼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버 해협을 건널 때 페캄프의 수도자들이 대신하여 통행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먼저 캔터베리에 그 다음에 런던에 거주지를 정하였다. 그들의 집은 낮 동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고, 밤이 되면 그들의 집이 되는 그런 형편이었다. 프란치스코의 극도의 가난 생활을 여기서도 계속하여 수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아넬루스는 도버 해협을 건넌 지 11년 되던 해, 41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그의 가난 정신은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와 견줄만
하였다.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칠 때면 늘 눈물을 글썽이며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회칙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크게
반대하였다. 그는 3일 동안의 투병 끝에 “오소서, 오 감미로운 예수여” 하며 기도하는 중에 운명하였다. 그의 축일은 오늘날 버밍햄에서 성대히
거행되고 있다.
▶안소비노(3.13)◀
신분 : 주교
연대 : 840년
지역 : 카메리노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카메리노에서 태어난 성 안소비누스(또는 안소비노)는 사제직에 오른 뒤에 즉시 카스텔-다이몬도의 한적한 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성덕과 기적은 여기서부터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의 명성을 들은 루이 황제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그를 고해신부로 모셨고 나중에는 카메리노의 주교로 천거하였다. 그는 참으로 지혜롭고 어진 목자였다. 또 자신이 받은 치유의 은사로 많은 병자들을 직접 치유하였다.
▶에우프라시아(3.13)◀
신분 : 동정녀
연대 : 382-412년
지역 : 콘스탄티노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출신인 그녀가 일곱 살 때 그녀의 홀어머니가 중부 이집트의 타베니시에 살도록 하였다. 소녀 때 그녀의 소망은 동정생활을 하는 공동체에서 지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성취되어 그녀는 수녀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남은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세속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사는 공동체의 내부 일이 너무나 힘이 들어 뛰쳐나오려는 유혹에 수없이 직면할 때마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등의 온갖 고행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그녀는 이런 노력으로 보여주는 인내심으로 인하여 동료들로부터 위대한 성녀로 높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제랄도(3.13)◀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732년
지역 : 마요
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서 출생한 성 게랄두스(Geraldus, 또는 제랄도)는 린디스파른(Lindisfarne)에서 은수자가 되었고, 켈트(Celtic) 전례 거행이 노섬브리아에서 금지를 당하자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의 마요 해안에 인접한 이니스보핀 섬에 들어가 생활하였다. 영국과 아일랜드 수도자간의 분쟁이 야기되자 그는 그 섬의 중심부에 영국인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고, 성 콜만누스(Colmannus)를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다.
▶크리스티나(3.13)◀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페르시아
성녀 크리스티나는 페르시아의 처녀로 채찍에 맞아 순교하였다.
▶헬드라드(3.13)◀
신분 : 소도원장
연대 : 842년경
지역 : 노발레즈
프랑스 남동부의 옛 지방인 프로방스(Provence)에서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 성 헬드라드는 부친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어느 날 그는 시장바닥에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시장 곁에 성당과 구호소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모두에게 무료 급식을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좋은 일을 많이 했으나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완덕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는 전 재산을 교회와 자선사업을 위해 그곳의 주교에게 바치고, 자신은 프랑스와
스페인 등지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그는 알프스 산중의 몽 세니에 있는 노발레즈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생을
그곳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그는 후일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30년간을 지도하였다. 또한 그는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알프스 서부의 몽스니
고개(Mont Cenis Pass)에 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건립하였다. 그는 엘드라드(Eldrad)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가톨릭과 교리] > 축일 (聖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 14일 성인들 (0) | 2006.03.14 |
---|---|
3월 14일 성녀 마틸다 왕후 (0) | 2006.03.14 |
3월13일 성녀 에우프라시아 동정 (0) | 2006.03.14 |
3월 12일 성인들 (0) | 2006.03.12 |
3월 12일 성녀 세라피나(피나) (0) | 2006.03.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