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3월 11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3. 11.

고르고니오(3.11)

피르모(3.11)  

신분 : 순교자

연대 : 3세기

 

   성 고르고니우스(또는 고르고니오)와 성 피르무스(Firmus)는 소아시아 비티니아(Bithynia) 지방의 니케아(Nicaea)나 시리아(Syr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베네딕토(3.11)

신분 : 주교

연대 : 725년

지역 : 밀라노

 

  베네딕투스 크리스푸스(Benedictus Crispus, 또는 베네딕토)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된 후 로마(Rome)에서 대소송에 휘말렸다는 것뿐인데, 우겔리라는 사람은 그를 묘사하기를 ‘주교권의 열렬한 옹호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주교직을 박탈당했다. 베네딕투스는 로마 순교록에 명기되어 있다.

 

베드로(3.11)

신분 : 군인, 은수자

연대 : 연대미상

 

  성 베드로(Petrus)는 로마(Rome)에 온 군인 출신의 에스파냐 순교자로 베롤리(Veroli) 부근 바부코(Babuco)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육체적 고행의 수단으로 맨살 위에 쇠미늘 갑옷을 입고 지냈다.

 

빈디치아노(3.11)

신분 : 주교

연대 : 712년

지역 : 캉브레

 

   바폼 교외 뷜러쿠르에서 태어난 성 빈디키아누스(또는 빈디치아노)는 669년경에 캉브레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착좌하자마자 즉시 교구내의 각 본당을 순례하며 많은 개종자를 얻었고, 성 막셀린다의 유해를 이장하고 또 맹인을 눈뜨게 했으며 살인자의 개종을 인도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켰으나, 교구로 돌아와 보니 큰 비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오툉(Autun)의 주교 성 레제르가 궁중의 총리인 야만적인 에브로인으로부터 참수되어 사르시 숲 속에 버려진 사건이었다. 빈디키아누스는 교회의 대표자로 선출되어 국왕에게 파견되었다. 그는 갖은 위험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왕과 담판을 벌여서 그의 과오를 인정케 하였다. 그 후에는 별다른 큰 사건 없이 교구를 지도하다가 만년에는 몽-생-엘로이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80세경에 선종하였다.

 

소프로니오(3.11)

 

신분 : 주교

연대 : 638년

지역 : 예루살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출신인 성 소프로니우스(또는 소프로니오)는 은수자로 살면서 고향 땅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이집트 등지를 순례하였다. 580년 그는 결국 이집트에서 은수자로 살았는데, 성 사바(Sabas) 수도원에서 요한 모스쿠스(Joannes Moschus)라는 수도자와 함께 지냈다. 이집트의 여러 수도원을 둘러본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성 요한 자선가 밑에 있던 중 634년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시노드(Synod)를 소집하여 그리스도 단성설을 단죄하고, 정통파의 지도자로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몇 사람의 전기를 비롯하여 교리, 강론을 썼으며 몇 편의 시를 남겼다.

 

아우레아(3.11)

신분 : 동정녀

연대 : 1100년경

지역 : 산 밀란

 

   에스파냐가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을 때 수도 생활을 염원하는 신자들은 한적한 산에 그들의 수도원을 손수 짓고 고독한 싸움을 하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 되었다. 칼라호라 교구의 상 에브로 지방에는 라 코골라 원장의 지도하에 이런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거주지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 가르시아 눈누스 혹은 눈니우스와 그의 아내 성녀 아무니아(Amunia)가 딸 아우레아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들은 성서를 늘 공부하고 성녀 아가타(Agatha), 에우랄리아(Eulalia) 그리고 체칠리아(Cecilia)의 전기를 묵상하다가 수도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성녀 아우레아는 그들이 늘 공경해 오던 위의 세 성녀의 환시를 보았는데, 그녀에게 영광의 월계관을 분명히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 때부터 아우레아의 보속 생활과 기적들은 도처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치명적인 병을 앓다가 어머니의 품안에서 운명하였는데, 많은 수도자들이 운집하여 그녀의 임종을 지켜보며 그녀의 성덕을 찬양하였다고 전한다.

 

알베르타(3.11)

신분 : 순교자

연대 : 286년

지역 ; 아쟁

 

  성녀 피데스(Fides)에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확산되어 특히 잉글랜드(England)와 프랑스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녀는 아마도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아쟁에서 순교한 듯 보이나 순교사회는 신빙성이 결여된다고 한다. 성 바오로(Paulus) 대성당의 지하 성당이 이 성녀의 본당이었다는 말도 전해온다. 순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루어졌고, 벌겋게 달군 놋쇠 위에서 고문을 받다가 거룩하게 순교하였다. 성녀 알베르타 역시 성녀 피데스와 함께 처형되었는데, 이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첫 번째 순교자 중의 일원으로 전해진다.

 

에우티미오(3.11)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840년?

지역 ; 사르디스

 

 성 에우티미우스(또는 에우티미오)는 리디아(Lydia) 지방 사르디스의 주교가 되기 위해 수도원의 떠났다. 그는 성상파괴론자들을 용맹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니케포루스 황제에 의해 추방되었다. 성 에우티미우스는 성상파괴론자가 되면 그의 주교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제의를 몇 차례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마침내 매를 맞아 죽을 때까지 29년간 유배지에서 머물렀다.

 

에울로지오(3.11)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859년

지역 : 코르도바

 

   에스파냐의 코르도바가 무어인들의 통치를 받을 때 그곳의 이름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성 에울로기우스(또는 에울로지오)는 스페란도 원장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학덕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성서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나바라(Navarra)와 팜플로나(Pamplona)의 많은 수도원을 위하여 규칙서를 저술하였다.

   850년 무어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 그도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두 그리스도인 여성인 플로라(Flora)와 마리아(Maria)를 위하여 “순교에 대한 권고”를 썼다. 그 두 여성은 처음에 노예로 팔려가도록 결정되었으나 에울로기우스의 권고에 힘입어 며칠 후에 순교하였다. 그런데 에울로기우스 자신과 다른 몇몇 죄수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석방되었다. 그 후에도 박해가 계속되었는데 그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는데 지칠 줄 몰랐다. 그는 톨레도(Toledo)의 대주교로 선출되었으나 착좌하지는 못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서도 이슬람교에서 개종한 레오크리티아(Leocritia)란 여성을 도왔는데, 그 당시의 법으로는 이런 개종자는 즉시 사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그녀를 피신시켜야만 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녀가 발각되었고 또 그녀를 도와 준 이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이때 에울로기우스도 사형을 받았다. 그는 그 당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기록한 “순교록”을 저술하였고, “호교론”을 남겨 그리스도교 신앙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크게 역설하였다.

 

엔고(3.11)

신분 : 주교, 수도원장

연대 : 824년경

 

   성 엔구스(또는 엔고)는 흔히 ‘하느님의 신하’라는 뜻으로 ‘쿨디’(the Culdee)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켈트어(Celtic language)이다. 그는 얼스터(Ulster)의 왕손으로 어릴 때에 렉스의 클로네그(Clonenagh) 수도원으로 들어가 교육을 받았는데, 학덕과 성덕이 탁월하여 촉망받는 인재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세상을 멀리하기 위하여 그는 수도원에서 7마일쯤 떨어진 디사르테노스 은둔소로 숨었다.

   그는 하루에 3백 번씩 무릎을 꿇었고 매일 시편 모두를 외웠다. 그의 명성이 너무나 높아져서 방문객이 계속 밀려오자 그는 또다시 아무도 모르는 은둔소로 숨어야만 하였다. 한번은 쿨바나리 성당에서 천사들의 환시를 보았는데 감미로운 곡조로 시편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늘 시편을 노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성 멜루아인(Maelruain)을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는 ‘아일랜드의 맑은 태양’이란 칭호를 얻었다. 오엔구스(Oengus)로도 불린다.

 

조시모(3.11)

헤라클리오(3.11)

신분 : 순교자

연대 : 263년

 

   성 헤라클리우스(Heraclius)와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는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황제 때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칸디도(3.11)

피페리온(3.11)

신분 : 순교자

연대 : 254-259년

 

   성 칸디두스(또는 칸디도), 성 피페리온(Piperion)을 비롯한 22명의 특별한 아프리카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상실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발레리아누스나 갈리에누스 황제 때 카르타고(Carthago) 또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콘스탄티노(3.11)

신분 : 수도원장, 순교자

연대 : 6세기경

지역 : 스코틀렌드

 

   불확실한 전설이지만 그 전설에 따르면 영국 잉글랜드(England) 콘월(Cornwall)의 왕이 프랑스 브르타뉴(Bretagne) 왕의 딸에게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또는 콘스탄티노)를 결혼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곧 사망하자 그는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아일랜드 라한(Rahan)의 성 모쿠다(Mochuda) 수도원에서 은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수도원에서 매우 하찮은 일을 맡아 하다가 신학을 공부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성 콜룸바(Columba)의 휘하에서 스코틀랜드로 선교 여행을 떠났으며 갤러웨이(Galloway)에서 오랫동안 설교하여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는 고반(Gova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가 연로하여 킨티르(Kintyre)로 돌아오는 길에 해적들의 습격을 받았는데, 무자비한 해적들에 의해 오른팔이 잘린 후 얼마 뒤 운명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첫 순교자로 추앙받고 있다.

 

콘스탄티노(3.11)

신분 : 증거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카르타고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또는 콘스탄티노)에 대해 알려진 유일한 내용은 로마 순교록 목록에 있는 카르타고의 증거자 성 콘스탄티누스라는 것뿐이다.

 

크리스토포로 마카솔리(3.11)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485년

 

   크리스토포루스 마카솔리(Christophorus Macassoli, 또는 크리스토포로, 크리스토폴)는 어린 나이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가난을 진실로 사랑하고 마음의 순수성을 잘 보전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큰 신뢰심을 지닌 사람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자신의 설교와 표양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는 밀라노(Milano) 서쪽 비제바노에서 수많은 회원들을 모집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연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권고를 듣고 또 하느님께 기도해 주기를 바랐다. 그는 1485년에 운명하였고,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그의 공경을 허락하였다. 지금도 그의 무덤에서 기도하면 그 기도가 꼭 성취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탈로(3.11)

트로피모(3.11)

신분 : 순교자

연대 : 300년

 

   성 트로피무스(Trophimus)와 성 탈루스(또는 탈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시리아(Syria) 지방의 라오디케아(Laodicea)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피르미노(3.11)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20년

지역 : 페르모

 

   성 피르미누스(또는 피르미노)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 변경 페르모 부근에 있는 산 사비노 피체노(San Sabino Piceno)의 성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