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탁(3.8)◀
신분 : 주교
연대 : 1065년
지역 : 로스
성 두탁은 소위 종교개혁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공경을 받던 성인이다. 로스 출신인 그는 아일랜드에서 교육을 받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서 사제로 활동하다가 로스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수많은 기적과 예언은 모두 그의 높은 성덕을 증명한다고 한다.
▶로가토(3.8)◀
▶마밀로(3.8)◀
▶실바노(3.8)◀
▶우르바노(3.8)◀
▶치릴로(3.8)◀
▶펠리치타(3.8)◀
▶펠릭스(3.8)◀
▶헤레니아(3.8)◀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아프리카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 성 펠릭스(Felix), 성녀 헤레니아(Herenia), 성녀 펠리치타(Felicita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 실바누스(Silvanus), 성 마밀루스(Mamillus)는 모두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이다. 성 키릴루스는 주교로 묘사되고, 그들의 이름이 모든 고대 순교록에 올라 있으나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베레문도(3.8)◀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92년
성 베레문두스(Veremundus, 또는 베레문도)는 젊어서 수도원에 들어가 아주 모범적인 수도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주로 문지기 수사로 일하면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 그 이상의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한 번은 그가 수도복 속에 많은 빵을 가져가는 것을 엿보던 원장이 그에게 물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나무 조각입니다.” 화가 난 원장이 그의 수도복을 펼치니 과연 나무 조각들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에게는 전설적인 기적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있다.
▶빈첸시오(3.8)◀
신분 : 주교
연대 : 1150?-1223년
지역 : 크라쿠프
성 빈첸시오 카드루벡(Vincentius Kadlubeck)은 폴란드의 크라쿠프 출신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수학한 뒤에 학위를 받고, 산도미르(Sandomir) 대성당을 비롯한 여러 교회의 주요 직책을 맡아 봉사하였다. 1208년 그는 크라쿠프의 주교로 선출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니에즈노(Gniezno)의 대주교인 하인리히 키에틀리츠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의 개혁 의지를 적극 추진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성 빈첸시오(Vincentius) 주교는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로써 그를 도와 개혁을 진행하였다. 지극히 불안한 나라 안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종교적 분위기도 여의치 않았지만, 성 빈첸시오는 교회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곧 정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정책을 펼쳤다. 1218년 그는 주교좌를 사임하고 예드르제호브(Jedrzejow)의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개혁 시토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뛰어난 성덕을 쌓으며 살다가 그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64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세난(3.8)◀
신분 : 수도원장, 주교
연대 : 6세기경
지역 : 스캐터리
아일랜드에는 세난이란 이름이 많은데, 성 세난은 아일랜드 도처에 수도원을 세우고 성공적으로 지도했던 탁월한 수도자였다. 그의 수도원은 웩스퍼드(Wexford)의 슬래니(Slaney) 삼각강으로부터 클레어(Clare) 해안에 이르는 전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가 최종적으로 정착한곳은 스캐터리 섬이었다. 그러나 성 세난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스테파노(3.8)◀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154년
지역 : 오바진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프랑스의 중부 리무쟁(Limousin) 지방에서 부모와
함께 살면서 어릴 때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에 눈을 떴다. 사제가 된 그는 더욱 엄격한 생활을 희구하여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을 끊어버리고 자발적인 고행을 시작하였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품은 어느 사제와 함께 그는 은수생활을 하기 위하여 오바진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수없이 몰려들자 그는 대수도원 건축 허가를 받아야만
하였다. 그들의 은수 수도원은 단일 건물이 아니라, 한 두 명이 사는 은둔소의 집단지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기도와 독서 그리고
노동이었다. 성 스테파누스는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처신했으며, 자신도 부엌일을 하며 형제들의 시중을 들었다. 또 그는 자매들을 위한 수녀원도
세웠는데, 그 당시에 150명의 수녀들이 남자들과 똑같은 규칙을 따랐다. 그는 은수자들을 위한 규칙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1142년에 그는
시토회의 수도복을 받고, 리모주(Limoges) 교구 주교의 명에 따라 정식으로 원장 취임을 하였다.
▶아리아노(3.8)◀
신분 : 지방장관, 순교자
연대 : 311년
성 아리아누스(또는 아리아노)는 이집트 테베(Thebes, 오늘날의 룩소르 Luxor 근방)의 지방장관이었는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3월 8일)와 성 필레몬(Philemon, 3월 8일)의 순교를 목격하고 성 테오티쿠스(Theoticus)와 다른 세 명의 동료와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들은 모두 바다에 던져 익사시키라는 재판관의 명령에 따라 순교하였다.
▶아폴로니오(3.8)◀
▶필레몬(3.8)◀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305년경
지역 : 안티노예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는 이집트 안티노에의 부제이고, 성 필레몬(Philemon)은 대중 음악가이자 연예인이었다.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아리아누스(Arrianus)라는 판관 앞으로 끌려갔다. 그 후 이들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이송되어 바다로 던져지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오그문도(3.8)◀
신분 : 주교
연대 : 1121년
지역 : 훌라르
아이슬란드 스칼홀트(Skalholt)의 주교인 아이슬레퍼(Isleifur)의 제자인 성 오그문두스(Ogmundus, 또는 오그문도)는 1106년 홀라르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아이슬란드를 복음화한 위대한 사도 중의 한 명이다. 그는 홀라르의 요한(Joannes)으로도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1201년에 승인되었다.
▶율리아노(3.8)◀
신분 : 주교
연대 : 690년
지역 : 톨레도
매우 유능하고 학식 있던 성 율리아누스(또는 율리아노)는 에스파냐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주교이자 저술가였다. 그는 교회의 공적인 전례에서 모자라빅 예식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원래 유대인의 후손이란 말도 있다. 그는 자신의 주교좌인 톨레도에서 선종하였다.
▶퀸틸리스(3.8)◀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니코메디아
니코메디아(오늘날의 터키 북서부 이즈미트, Izmit)의 주교인 성 퀸틸리스는 니코메디아의 순교자이다. 대부분의 옛 전승과 기록들은 성 퀸틸리스의 동료 순교자로서 성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를 언급하고 있다.
▶테오티코(3.8)◀
신분 : 순교자
연대 : 311년
성 아리아누스(Arianus)는 이집트 테베(Thebes, 오늘날의 룩소르 Luxor 근방)의 지방장관이었는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3월 8일)와 성 필레몬(Philemon, 3월 8일)의 순교를 목격하고 성 테오티쿠스(또는 테오티코)와 다른 세 명의 동료와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들은 모두 바다에 던져 익사시키라는 재판관의 명령에 따라 순교하였다.
▶펠릭스(3.8)◀
신분 : 주교, 선교사
연대 : 648년
지역 : 던위치
성 펠릭스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주교였는데,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 호노리우스(Honorius, 9월 30일)로부터 명을 받고 이스트 앵글리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631년에 그는 던위치에 주교좌를 설정하고 17년 동안 그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 이스트 앵글리아의 국왕인 시제베르트가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는 소년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캔터베리의 학교에서 교사들을 불러오는 등 교육 사업에 큰 기여를 하였다. 성 펠릭스의 유해는 던위치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램지(Ramsey) 대수도원으로 옮겨졌다.
▶폰시오(3.8)◀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260년경
지역 : 카르타고
카르타고의 위대한 주교인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가 쿠루비스로 추방될 때, 그의 부제이던 성 폰티우스(또는 폰시오)는 자원해서 그를 수행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가 단죄를 받을 때 성 폰티우스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려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순교를 갈망하던 그에게 굉장한 실망을 안겨 주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순교했다는 사실이다.
▶프로비노(3.8)◀
신분 : 주교
연대 : 420년
지역 : 코모
갈리아(Gallia) 지방 출신인 성 프로비누스(또는 프로비노)는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그는 코모의 초대주교인 성 펠릭스(Felix, 7월 14일)의 보좌주교가 되었다가 391년에 그를 계승해서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훈프리도(3.8)◀
신분 : 주교
연대 : 871년
지역 : 프륌
성 훈프리두스(Hunfridus, 또는 훈프리도)는 테루안(Therouanne)의 주교인 성 포크윈이 서거한 후 그를 계승하여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툴루즈(Toulouse)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 플랑드르(Flandre)의 테루안 지방은 북방 노르만족(바이킹)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주교직보다 수도자로 머물기를 선호했던 그는 주교직을 사임하고 아르덴(Ardennes)에 있는 프륌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이를 두고 그가 비겁하여 박해자를 피하여 숨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북방인의 침입이 있은 후 그는 즉시 자기 교구로 돌아와 재차 교구를 부흥하고자 노력하다가 3년 뒤에 운명하였다. 그는 험프리(Humphery)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느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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