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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2월 15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2. 15.

데코로소(2.15)

신분 : 주교

연대 : 695년

지역 : 카푸아

 

   성 데코로수스(또는 데코로소)는 이탈리아 카푸아에서 30년 동안 주교로 재직하였다. 그는 680년에 열린 로마 공의회에서 교황 성 아가토(Agatho, 1월 10일)를 도운 고위 성직자 중의 한 명이었다.

 

루치오(2.15)

마뇨(2.15)

사투르니노(2.15)

카스툴로(2.15)

신분 : 순교자

연대 : 273년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카스툴루스(Castul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는 이탈리아 테르니(Terni)의 주교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의 신자들로 순교한 후 파새(Passae)에 묻혔다.

 

발프리도(2.15)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765년

 

  갈프리도(Galfrido)로도 불리는 성 발프리두스 델라 게라르데스카(Walfridus della Gheradesca, 또는 발프리도)는 이탈리아의 피사(Pisa) 출신으로 아름다운 아내와 여섯 자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수도생활이라는 소명을 깨닫자 각자 이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성 발프리두스는 이미 결혼한 자신의 두 친구인 군두알드(Gunduald)와 포르티스(Fortis)와 함께 장래 문제를 토의하던 중 꿈에 계시를 받고 피사 근교의 팔라주올로(Palazzuolo)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성 발프리두스가 초대원장이 되었다. 그들은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수도규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원을 세워 그들의 아내들도 수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후 그들의 아들과 딸들도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 같은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61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베라크(2.15)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6세기경

지역 : 클루인

 

   성 베라크는 태어나면서부터 삼촌인 성 프리오크(Freoch)에게 맡겨져 성장하였다. 후에 그는 성 케빈(Kevin, 6월 3일)의 제자가 되었고 아일랜드 북서부 코노트(Connaught)의 클루인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더블린(Dublin)의 킬베리(Kilbarry)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베라키아스(Berachias) 또는 베라키우스(Berachius)로도 불린다.

 

세베로(2.15)

신분 : 신부

연대 : 530년

지역 : 안드로카

 

   성 세베루스(또는 세베로)는 이탈리아 발레리아(Valeria) 지방 안드로카의 본당신부였다. 그는 본당 사목과 정원 돌보는 일을 함께 하였다. 성인의 유해는 10세기에 독일 트리어(Trier) 교구의 뮌스터마이펠트(Muenster-Maifeld)로 옮겨졌다.

 

아가페(2.15)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273년

지역 : 테르니

 

  성녀 아가페(Agapes)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테르니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는 그 도시의 수호성인이다. 테르니에 살던 그녀는 수녀처럼 생활하려는 여자들의 공동체를 이루어 그들을 지도하였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녀는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의 순교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안젤로(2.15)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306년

지역 : 보르고 산 세폴크로(Borgo San Sepolcro)

 

  안젤루스(또는 안젤로)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보르고 산 세폴크로 태생으로 톨렌티노(Tolentino)의 성 니콜라우스(Nicolaus, 9월 10일)가 활약할 당시에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명에 따라 영국 내에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의 보급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1921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에우세비오(2.15)

신분 : 은수자

연대 : 5세기경

지역 : 아스키아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시리아의 아스키아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는 동방교회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엘레우카디오(2.15)

신분 : 주교

연대 : 112년

지역 : 라벤나

 

   그리스(Greece)에서 태어난 성 엘레우카디우스(또는 엘레우카디오)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초대주교인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7월 23일)에 의해 개종하였다. 그는 주교의 부재기간 동안 교회를 돌보다가 성 아데리투스(Aderitus, 9월 27일)를 계승해서 라벤나의 세 번째 주교가 되었다.

 

요르단(2.15)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237년

지역 : 작센

 

   요르단은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의 직계 제자로서 제2대 도미니코회 총장을 지냈다. 그의 출생지와 연대는 미정이나 그의 실제 이름은 조르다노(Jordano)이며 작센 출신으로 1219년경에 파리 대학의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가 수련자로 있을 때 성 도미니코의 전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관구의 요직을 맡다가 도미니코의 사후에는 총장이 되었다. 그의 시대는 도미니코회가 꽃피는 시절이었다. 그는 수많은 지역에 세워진 수도원들을 방문하고 강의하면서 수도회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였다. 1237년 그는 2명의 형제들과 시리아 연안을 따라 예루살렘 성지로 가다가 배가 파선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8년에 승인되었다.

 

요셉(2.15)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안티오키아

 

   성 요셉(Josephus)은 안티오키아에서 고통을 받고 순교한 일곱 부제 중의 한 명이다.

 

율리아(2.15)

신분 : 동정녀

연대 : 1367년

지역 : 체르탈도

 

   이탈리아의 체르탈도에서 가난한 귀족의 딸로 태어난 율리아는 피렌체의 티놀피(Tinolfi) 가문의 하녀로 생활하던 중 19세의 나이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재속 3회에 입회하여 수덕생활에 입문하였다. 그녀는 성 미카엘과 성 야고보 성당의 성물 보관소 곁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녀는 카스텔피오렌티노의 성녀 베르디아나(Verdiana)를 본받기를 소원하면서 거의 30년을 지내다가 48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19년에 승인되었다.

 

제오르지아(2.15)

신분 : 동정 은수자

연대 : 500년

지역 : 클레르몽

 

   성 게오르기아(또는 제오르지아)는 젊은 수녀로, 후에 프랑스 오베르뉴(Auvergne) 지방 클레르몽 근처에서 은수자로서 살다가 선종하였다.

 

지그프리드(2.15)

 

신분 : 주교

연대 : 1045년경

지역 : 스웨덴

 

   영국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출신인 성 지그프리드는 요크(York)에서 사제가 되었고, 선교 주교로 축성된 이후 그림켈(Grimkel)과 요한(Joannes) 주교와 함께 노르웨이 선교 길에 올랐다. 이것은 노르웨이 국왕 올라프 트리그바손(Olaf Tryggvason)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1008년에 스웨덴으로 가서 올라프라는 왕을 개종시킴으로써 스웨덴의 사도가 되었다. 그의 선교는 크게 성공하였다. 성 지그프리드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Hadrianus I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고 하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는 아직껏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콘라도(2.15)

신분 : 수사

연대 : 1154년

지역 : 바이에른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독일 바이에른의 공작인 헨리쿠스(Henricus) 흑인의 아들이다. 그는 공부하기 위하여 쾰른(Koln)으로 갔으나 완덕생활을 하려는 뜻으로 시토회원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의 허락을 받고서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철저한 수덕생활과 애덕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2년에 승인되었다.

 

퀴니디오(2.15)

신분 : 주교

연대 : 579년

지역 : 베종

 

   성 퀴니디우스(또는 퀴니디오)는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 베종의 주교직에 오르기까지 프로방스의 액스(Aix)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는 베종의 두 번째 수호성인이다.

 

클로드 드 라 콜롬비에르(2.15)

신분 : 신부, 설교가

연대 : 1641-1682년

 

   성 클로드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근교에서 태어났고, 그의 가정은 매우 신심이 깊었고 또 유복한 가문이었다. 유아기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없지만 리옹(Lyon)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수도생활에 대한 강력한 이상에 사로잡혔으나, 얼마 동안 이를 억제하다가 끝내는 입회하였다. 아비뇽(Avignon) 수도원에서 수련기를 보내고 다시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에는 5년 동안 교사로서 활동하였다.

   이 당시에 아비뇽에는 정치적 불안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잘 평정되어 아비뇽 주민들은 평화를 되찾았는데, 이때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시성식과 성모 방문 수녀회의 두 수도원이 이 평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성 클로드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시성식 때 생애 처음으로 설교하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의 설교는 대성공이었다. 이어서 파리(Paris)로 가서 신학과정을 마쳤는데, 그곳에 머물면서 그는 프랑스의 지성이 한데 모이는 학문적 분위기에 푹 빠졌다. 그는 당시의 저명인사인 콜베르와 친분을 가졌으나 수도회 안에서는 별로 친구가 없었다.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아비뇽 대학에서 설교가로 활약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그 후 종신서원을 발하기 전에 행한 대피정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는 특히 예수성심 공경에 전념하였고, 예수님의 생애 나이와 같은 33세 때에는 세상에 대하여 더욱 철저히 죽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종신서원을 발한 두 달 뒤에 그는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예수회 원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 10월 16일)를 만나 그녀를 지도하였다.

   그의 다음 임무는 영국에서의 선교활동이었다. 영국내의 가톨릭 입장이 최악의 상태에 빠졌을 때 성 클로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 영국 가톨릭 재건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성공은 많은 반대자들을 만들게 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비록 순교의 영광을 입지는 안았으나 영국에서 추방령을 받고 쫓겨나야 했다. 감옥생활로 크게 손상된 그의 건강은 최악의 상태였다. 결국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682년 2월 15일에 운명하였다.

   흔히 우리는 그의 지성은 예리하였고, 판단은 정확했으며, 예술 애호가였고, 프랑스 아카데미의 올리비어 파투뤼와의 친분을 높이 칭송한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92년 5월 3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로도 불린다.

 

탄코(2.15)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808년

지역 : 베르덴

 

   성 탄코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자이나 아일랜드 출신이다. 그는 선교사의 꿈에 불탄 나머지 독일의 작센(Sachsen) 지방 베르덴의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학문과 신심으로 유명해졌고 나중에 그 수도원의 원장 그리고 베르덴의 주교가 되었다. 순교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그는 자신의 주교좌는 거의 비워둔 채 벨기에의 클레브(Cleves)와 플랑드르(Flandre) 지방 선교여행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순교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몇몇 우상들을 파괴하고 있을 때 야만인들이 몰려와서 그의 팔과 다리를 자르고 두개골을 깨뜨려 살해했다고 한다. 그는 타토(Tatto) 또는 타타(Tatta)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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