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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170년 전 초대 조선교구장 묘비 발견

by 세포네 2006. 2. 11.

중국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동산향에서...박해시대 묘비론 처음

◀  모방 신부가 세웠던 브뤼기에르 주교 묘비가 중국 동산현 옛 마가자 교우촌에서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동산천주당 이금도 신부가 찍어 보내온 브뤼기에르 주교 묘비.

 

 

 초대 조선교구장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소 주교(1792~1835)의 묘비가 최근 중국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동산향(옛지명 마가자)에서 발견됐다.

 2년 전부터 브뤼기에르 소 주교 현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개포동본당(주임 염수의 신부)은 1일 "중국 적봉교구 동산천주당 이금도 신부로부터 브뤼기에르 주교의 묘비를 찾았다는 편지와 묘비 사진을 받았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인 브뤼기에르 주교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부터 1831년 조선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후 중국 내륙을 거쳐 조선 땅으로 부임하던 중 1835년 내몽골지역 마가자 교우촌에서 병사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로부터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모방(1803~1839, 성인) 신부가 장례미사 후 고인의 유해를 마가자 현지에 안장했고, 묘소 앞에 묘비를 세웠다.

 이후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는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울 용산 성직자 묘역에 이장됐다. 묘비는 마가자 현지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가 1960년대 후반 중국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서양과 관련된 것들을 파괴하는 와중에 사라진 것으로만 알려졌다.

 브뤼기에르 주교 묘비가 중국 현지에서 발견된 것은 지난 1월 초. 이금도 신부는 편지에서 "1월 초 성당에서 20리(약 8km) 떨어진 교우촌을 방문하던 중 교우들이 '문화혁명때 외국인 선교사가 묘비가 파괴될 것을 염려해 옮겨 놓은 것'이라며 비석을 내줘 성당으로 옮겨다 놓았다"고 발견 경위를 밝혔다. 이 신부는 또 "당시 서양 선교사는 홍위병에 의해 살해돼 순교했다"고 덧붙였다.

 발견된 묘비는 어른 가슴 높이만한 돌에 한자로‘首鐸(수탁) 蘇公之墓(소공지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또 '道光(도광·청나라 8대 황제의 연호) 十五年 八月二十九一立'(15년 8월29일립)’이라고 돼 있다. '도광 15년'은 1835년이며 음력 8월29일은 양력으로 10월20일로 브뤼기에르 주교가 선종(善終)한 때와 일치한다.

 차기진(루카,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박사는 "묘비에 새겨진 '수탁'은 '초대 조선교구장'을 뜻하며 '소공'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한자식 성(姓)"이라고 말했다.

 차 박사는 또 "묘비의 금석문 내용과 1897년 촬영한 브뤼기에르 주교 묘비 사진과 비교할 때 이 묘비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무덤 앞에 세워졌던 본래의 묘비임이 확실하다"며 "이번 묘비 발견은 한국 천주교회 사상 최초로 발견된 박해시대 묘비이자 170년전에 세워진 초대 조선교구장의 묘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고 마가자의 무덤자리가 의심할 것 없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본래 무덤자리임을 입증해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염수의 신부는 "이번 묘비 발견은 개포동 신자들이 마가자 현지를 여러 차례 힘들게 찾아가 중국 신자들과 함께 현양 행사를 갖고 기도한 결과"라며 "앞으로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 운동이 시복시성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개포동본당은 본당 설정 2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4년부터 중국 마가자 현지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비 건립, 브뤼기에르 주교 서한집ㆍ 여행기 출간 등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한 다양한 현양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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