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시데라토(2.10)◀
신분 : 주교
연대 : 6세기경
지역 : 클레르몽
성 데시데라투스(또는 데시데라토)는 성 아비투스(Avitus, 8월 21일)를 계승하여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지방 클레르몽의 주교가 되었다
▶발데군다(2.10)◀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580년
성녀 발데군다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의 하나인 푸아티에(Poitiers)의 생트크루아(Sainte-Croix)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빌리암(2.10)◀
신분 : 은수자
연대 : 1517년
지역 : 말레발
프랑스 태생의 성 빌리암은 한때 프랑스의 군인으로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통회자가 되어
로마(Rome)를 순례했는데, 여기서 교황 성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 7월 8일)에게 보속을 청하였다. 교황의 명에 따라
그는 다시 예루살렘 순례를 한 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는 은둔소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성덕이
차츰 알려지면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몬테 브루노(Monte Bruno)에 정착했다가 더욱 한적한 곳을 찾아 헤매던 중 마침내 말레발(또는 말발
Malval)에 안착하였다. 그는 1155년 9월에 그곳의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맹수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는 알베르투스(Albertus)라고 알려진 제자 한 명만을 키웠다. 그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리날도(Rinaldo)라 불리는 한 의사가 제자로 살겠다고 들어왔다. 그들이 곧 성 빌리암 은수자회, 곧 귈리엘미트회(The
Gulielmites)의 시작이었다. 그 후 이 은수자회는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Flandre) 그리고 독일로 퍼져나갔으나 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로 통합되었다. 그는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소테리스(2.10)◀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304년
지역 : 로마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는 그의 집안에서 성녀 소테리스를 크게 공경해왔다고
증언하였다. 어느 집정관의 딸이었던 성녀 소테리스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신분과 재산 그리고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까지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과 미모 때문에 수없이 많은 유혹과 위험을 당했기 때문에 모든 장신구를 떼어버리고 평민의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
그 즈음에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칙령을
반포하였다. 그녀는 단호히 순교할 결심으로 준비하던 중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재판관에게 끌려갔다. 재판관은 귀족의 딸이기에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회유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성녀 소테리스는 결국 모진 고문 끝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때 성녀의 나이는 불과 15세였다고 한다. 그녀는
소테라(Sotera)로도 불린다.
▶실바노(2.10)◀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테라치나
이탈리아 테라치나의 주교인 성 실바누스(또는 실바노)는 로마 순교록에서 증거자로 기술되고 있다. 그는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는 등 고난을 겪다가 아마도 죽음에까지 이른 듯하다.
▶아만시오(2.10)◀
▶이레네오(2.10)◀
▶조티코(2.10)◀
▶히야친토(2.10)◀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120년
성 조티쿠스(Zoticus), 성 이레네우스(Irenaeus),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성 아만티우스(또는 아만시오)를 비롯한 10명의 군인들이 로마에서 순교한 후 라비카나(Lavicana) 가도(街道)에 묻혔다.
▶아우스트레베르타(2.10)◀
신분 : 동정녀
연대 : 630-704년
지역 : 파빌리
성 프라메칠디스(Framechildis)의 딸인 성녀 아우스트레베르타는 프랑스의 테루안(Therouanne) 교외에서 태어났는데, 신심이 매우 깊었고 항상 교회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느 날 우연히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는데, 자기가 쓰지 않은 베일을 쓴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경험 때문에 그녀는 부친의 결혼 강요를 뿌리치기 위하여 오빠의 인도를 받아 궁중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녀는 성 아우도마루스(Audomarus, 9월 9일)를 만나 아브빌(Abbeville) 수도원에서 그의 지도하에 베네딕토회의 수도서원을 발하였다. 결국 부친의 동의를 얻고 아브빌 수도원에서 지내던 그녀는 수녀원장이 되었고, 후에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에 새로 설립된 파빌리 수도원의 개혁을 돕기 위해 아브빌을 떠났다. 그녀의 신심과 겸손은 만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녀는 에우스트레베르타(Eustreberta)로도 불린다.
▶아포니오(2.10)◀
▶안드레아(2.10)◀
신분 : 순교자
연대 : 1세기경
성 안드레아(Andreas)와 성 아포니우스(또는 아포니오)는 사도행전 12장에 언급된 헤로데 안티파스 1세 왕의 박해 중에 체포되어 베들레헴에서 순교하였다. 그 박해로 말미암아 사도 성 야고보(Jacobus, 7월 25일)가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당했다(사도 12,1-2).
▶클라라(2.10)◀ (복녀)
신분 : 과부
연대 : 1282-1346년
지역 : 리미니
이탈리아 리미니의 부유한 집 딸로 태어난 클라라 아골란티(Clara Agolanti)는 어려서 결혼하였으나
곧 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 집안의 반대자들에 의하여 얼마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부친의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녀는 충동적으로 살았고 또
조심성이 없어서 많은 빈축을 샀다고 한다. 30세 되던 해의 어느 날, 그녀는 어느 프란치스코회의 성당에 갔다가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었다.
“클라라야, 아무런 잡념 없이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한 번만 바쳐보아라." 이때부터 그녀는 아주 신중히 처신하게 되었고, 그 얼마 후에는 같은
성당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였다. 큰 충격과 더불어 완전히 개심한 그녀는 작은 형제회의 제3회에 입회하여 보속생활을
시작하였다.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던 그녀는 철로 된 고행복을 입고 철저한 고행을 시작하였다. 지난날의 허영과
육욕을 벌하기 위하여 스스로 허름한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잤고, 자신의 입맛을 희생하였다. 그녀는 가끔 기아 직전까지 갈 정도로 음식을
절제하였다. 몇몇 부인들이 그녀의 지도하에 재속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어느 해 성 금요일에는 사람들이 그녀의 목에 새끼줄을 매고서 개처럼 끌고
다니게 한 적도 있었다. 또 주님을 본받기 위하여 문전걸식을 하였다.
이처럼 그녀의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기 때문에 반대자들도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주님의 목마름을 실감하기 위하여 물도 먹지 않고 오랫동안 지내기도 하였으니, 정말로 놀라운
사람이라고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수덕생활은 그녀가 죽으면서 즉시 성녀로 공경을 받는 놀라운 빛을 발하게 하였다. 교황 비오
6세(Pius VI)는 1784년에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그녀는 흔히 재속 수도자의 앞길을 밝힌 분으로 공경을 받는다.
▶트룸윈(2.10)◀
신분 : 주교
연대 : 700년경
지역 : 휘트비
성 베다(Beda)에 의하면 성 트룸윈은 681년에 남부 픽트족을 관할하는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그는 자기 교구 내에 여러 수도원을 세웠으나 잉글랜드와의 전투 때문에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으나 결국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의 휘트비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성 베다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몇 년 후 그는 휘트비에서 몇 명의 교구 신자들과 함께 아예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트룸마(Trumma)로도 불린다.
▶프로타디오(2.10)◀
신분 : 주교
연대 : 624년
지역 : 브장송
성 프로타디우스(또는 프로타디오)는 성 니케티우스(Nicetius, 2월 8일)를 계승하여 프랑스 브장송의 주교가 되었다. 프랑스 국왕 클로테르 2세는 모든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그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후고(2.10)◀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연대 : 1164년
지역 : 포세스
벨기에 나무르(Namur) 근교의 포세스 출신인 성 후고(Hugo)는 고아였으나 그 지방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성직자이던 프랑스 캉브레(Cambrai)의 주교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는 항상 맨발로 다녔고, 통회자의 옷을 입었으며, 놀라운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1119년 그는 26세의 나이로 사제가 되었고,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6월 6일)와 함께 프레몽트레회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그 후 그는 벨기에의 하이놀트(Hainault)와 브라반트(Brabant)에서 선교 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126년 그는 성 노르베르투스가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그를 계승하여 프레몽트레회의 총장이 되어 35년 동안 봉사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27년에 승인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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