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400-1455)<
초기 르네상스 시대 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안젤리코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 신부로서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입니다.
그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로 널리 알려진 것은 유명한
시인이자 학자인 코렐라의 도미니코 신부가 그를 '천사 은'(angelic)
화가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신심 깊은 삶에서
우러나온 영성적인 체험이 녹아든 것이었기에,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거룩한 것을 관상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는 수도자로서의 성덕과 화가로서의 재능이 조화롭게 결합된 것이었습니다.
140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비키오(Vicchio)에서 태어난 안젤리코는 1417년에 형 베네데토(Benedetto)와 함께 피렌체의 한 필사본 작업장에서 일했는데, 이때 형은 필사가로, 안젤리코는 채색 화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20세에 피에솔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신앙심 깊고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기도 생활 틈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때 안젤리코는 조반니 다 피에솔레(Giovanni da Fiesole)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1436년부터는 그의 절정기에 속하는 작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생활하였습니다.
1445년에는 교황의 부름을 받고 베드로 대성전의 경당과 바티칸 궁내에 있는 경당 및 교황의 개인 경당에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습니다. 재능 있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안젤리코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청렴한 생활을 했던 그는 당시 교황이 그를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자, 다른 신부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하였습니다.
1450년경 피렌체로 돌아가 약 2년동안 피에솔레 수도원장을 역임하였고, 1453년경 다시 로마로 왔다가 이곳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1455년 2월 18일에 숨을 거두어 산타 마리아 델라 미네르바 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1960년에 시복되었으며, 1984년에 예술가와 미술가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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