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리나(2.2)◀
신분 : 수녀
연대 : 1522-1590년
지역 : 리치
성녀 리치의 카타리나(Catharina de Ricciis,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프라토(Prato)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수녀이다. 그녀는 좋은 감각과 정성을 다하여 맡아온 수련장과 장상직을
사임하였는데, 그녀의 놀라운 신앙 체험들은 많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매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탈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성녀 카타리나의 영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타난 그대로 교회의 개혁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그리고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아왔다. 성녀 카타리나는 1590년
2월 2일 선종하였고,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47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고르넬리오(2.2)◀
신분 : 백부장, 베드로의 제자, 주교
연대 : 1세기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주재 로마군 보병대의 백인대장이던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는 하느님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당신 천사를 통해 요빠에 있던 사도 베드로(Petrus)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사도 베드로를 모셔왔고, 그로부터 자신은 물론 온 집안사람들 모두 세례를 받았다(사도 10,1-48). 그때부터 성 코르넬리우스는 사도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성 코르넬리우스는 카이사레아의 첫 주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
▶라우렌시오(2.2)◀
신분 : 주교
연대 : 619년
지역 : 켄터베리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명에 따라 영국 선교를 위해 파견된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를 수행하여 로마(Rome)의 성 안드레아(Andreas) 수도원에서 영국으로 온 13명의 수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604년에 캔터베리의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브리턴인(Britons)들로 하여금 로마 전례를 수용케 하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또 에드발드가 부왕 에텔베르트를 계승하여 왕이 된 후 자기 부친의 아내와 결혼한 사건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지방으로 가려다가 꿈에서 사도 베드로(Petrus)의 지시에 보고 자기 양떼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그 환시 이후 그는 국왕 에드발드를 회개시켜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베드로 캄비아노(2.2)◀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320-1365년
베드로 캄비아노(Petrus Cambiano)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e)의 키에리(Chieri)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그 당시 북부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하는 소수의 이단들이 득실거렸는데, 베드로는 특히 발도파(Waldenses)의 퇴치를 위하여 14년 동안이나 수고하였다. 아마도 그의 성공은 그 이단자들이 그를 살해한 것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1365년 그는 수사(Susa)의 수도원에 머물다가 몇 사람의 발도파 이단자들에 의해 수도원 밖에서 살해되었다. 그는 1856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브루노(2.2)◀
신분 : 순교자
연대 : 880년
지역 : 에브즈도르프
프랑스의 왕 루이 3세 때 성 브루노 대공과 그의 동료 군인들은 북유럽 사람들의 습격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오늘날 독일의 작센(Sachsen) 지방에 있는 에브즈도르프에서 학살당했다. 그 때 성 브루노와 그의 동료들 외에 네 명의 주교와 11명의 귀족도 함께 학살당했다. 그들은 에브즈도르프의 순교자들로서 기억되고 있다.
▶아달발도(2.2)◀
신분 : 순교자
연대 : 652년
지역 : 오스트레반트
성 아달발두스(Adalbaldus, 또는 아달발도)는 아마예(Hamaye) 수도원을 세운 성녀
게르트루다(Gertrudis, 12월 6일)의 손자이다.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궁중의 젊은 그리스도인 귀족이었던 그는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는 반란을 일으키는 가스코뉴(Gascogne) 사람들을 정벌하기 위하여 수차례나 출정하였고, 그러는 동안에 그 지방의
에르놀드라는 귀족과 친분을 두터워져 그의 딸인 성녀 릭트루다(Rictrudis, 5월 12일)와 결혼까지
하였다.
결혼식은 신부 측의 반감 때문에 기쁘지 못하였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였다. 이 부부는 틈나는 대로
병자를 방문하거나 범법자들을 개종시키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가스코뉴를 정벌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제는 아내의 친척들과 싸워야 할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의 아내인 성녀 릭트루다는 어찌할 바 몰라 하던 중에 남편이 살해당하였다. 성 아달발두스는 그의 투철한 신앙정신 때문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유해는 엘논느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후일 두에(Douai)로 이장되었다.
▶아델로가(2.2)◀
신분 : 동정녀
연대 : 745년
지역 : 키트징엔
프랑크족의 공주인 성녀 아델로가는 프랑코니아(Franconia) 지방의 키트징엔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초대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하델로가(Hadeloga)로도 불린다.
▶아프로니아노(2.2)◀
신분 : 기록책임자, 순교자
연대 : 304년
성 아프로니아누스(Apronianus, 또는 아프로니아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용기를 준 성인 중의 한 명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그는 로마의 사형 집행인이었으나, 재판 전에 성 시신니우스(Sisinnius)를 수행하면서 복음의 진리에 눈을 뜨고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회개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에서 순교하였다.
▶요안나 드 레스토낙(2.2)◀
신분 : 과부, 설립자
연대 : 1556-1640년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태생으로 저명한 작가인 몽테뉴(Montaigne)의 조카인 성녀 요안나 드 레스토낙(Joanna de Lestonnac)은 불과 14세 때에 가스통 드 몽페랑과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1597년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과부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보르도의 노트르담 수녀회 설립을 시작하여 여성 교육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때 다른 두 수녀의 음모에 의해 희생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96세의 일기로 운명하였으며, 1900년 시복된 후 1949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칸디도(2.2)◀
▶펠리치아노(2.2)◀
▶포르투나토(2.2)◀
▶피르모(2.2)◀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성 피르무스(Firmus)와 성 칸디두스(또는 칸디도)는 우수아르두스(Usuardus)의 순교록에 처음부터 이름이 등장하나 그들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플로스쿨로(2.2)◀
신분 : 주교
연대 : 480년?
지역 : 오를레앙
프랑스 오를레앙의 주교 성 플로스쿨루스(또는 플로스쿨로)는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 8월 21일)와 동시대 인물이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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