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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24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24.

마르도니오(1.24)

메텔로(1.24)

무소니오(1.24)

에우제니오(1.24)

신분 : 순교자

연대 : 305년

 

   성 마르도니우스(또는 마르도니오)와 성 무소니우스(Musoni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메텔루스(Metellus)는 소아시아 어느 곳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마르콜리노(1.24)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317-1397년

지역 : 포를리

 

   이탈리아의 포를리 태생인 마르콜리노 아만니(Marcolino Amanni)는 불과 10세 때에 도미니코회의 수련자가 되었는데, 그의 재능은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규칙 준수는 물론 청빈과 순종에서 단연 돋보인 인물이 되었고, 겸손의 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았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과 어린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였고, 끊임없이 탈혼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는 장시간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몸이 거의 그 상태에서 굳어질 정도였는데, 임종할 때에도 그런 자세였다고 한다. 마르콜리노는 80세에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0년에 승인되었다.

 

마체도니오(1.24)

신분 : 은수자

연대 : 430년경

 

   테오도레트의 기록에 의하면 성 마케도니우스(또는 마체도니오)는 시리아의 수도자였다. 그는 40년 동안 겨울에도 거의 알몸으로 수도생활을 하였고, 극히 소량의 음식으로 하느님만 관조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병자들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치유하여 백성들에게 영육의 건강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거의 90세까지 살았다.

 

바빌라(1.24) (주교)

에폴로니오(1.24) (소년)

우르바노(1.24) (소년)

프릴리디아노(1.24) (소년)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지역 : 안티오키아

 

   성 바빌라(Babilas)는 안티오키아의 옛 주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으로 240년경에 제비누스(Zebinus) 주교를 승계하였으나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에 의하면 그는 244년 부활절에 아라비아 사람인 필리푸스(Philippus) 황제가 선임자인 고르디아누스 황제를 살인한 죄를 회개할 때까지 성당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는 이런 정의감 때문에 데키우스 황제 박해 때 순교하였다.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바빌라는 처형을 기다리며 옥에 갇혀 있다가 사망하였다고 하고, 다른 덜 신뢰할만한 자료에 의하면 아마도 참수당해 순교한 듯하다. 그리고 에우세비우스에 의하면 성 바빌라가 순교할 당시 그의 어린 제자인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 프릴리디아누스(Prilidianus)와 성 에폴로니우스(Epolonius)도 함께 순교하였다.

   성 바빌라는 유해의 이전이 기록된 첫 번째 순교자이다. 그의 시신은 안티오키아에 묻혔다. 그러나 351년 갈루스 황제가 유명한 아폴로 신전과 과히 멀지 않은 다프네(Daphne)로 이장하여 모셨다. 아폴로 신전은 신탁으로 유명한데 이때부터 신탁이 침묵하므로, 362년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재차 이 순교자의 유해를 멀리 이장해 버렸다. 이때 수많은 신자들이 시편을 노래하며 행진하였는데, 아폴로 신전이 어떤 강한 빛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한다.

 

베르트란드(1.24)

신분 : 선교사, 수도원장

연대 : 7세기

지역 : 생캉텡

 

   프랑스의 쿠탕스(Coutance) 근교에서 태어난 성 베르티누스(Bertinus, 9월 5일)는 뤽세이유(Luxeuil) 베네딕토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 그의 친구인 테루안(Therouanne)의 주교 성 아우도마루스(Audomarus, 9월 9일)는 성 베르티누스와 같은 지방 출신인 몸몰리누스(Mommolinus)로도 불리는 성 뭄몰리누스(Mummolinus, 10월 16일)와 성 베르트란드를 초대하여 자신을 도와 프랑스 북부 파스 드 칼레스(Pas-de-Calais) 지방의 모리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성 베르티누스는 동료들과 함께 시티우(Sithiu)에 수도원을 지었고, 성 아우도마루스 주교는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의 수도 규칙을 따르도록 하며 성 뭄몰리누스를 수도원장으로 지명하였다. 콘스탄츠(Konstanz) 출신으로 뤽세이유에 머물던 성 뭄몰리누스가 661년경에 누아용(Noyon)의 주교로 임명되자 성 베르티누스가 원장이 되었다. 그는 시티우 수도원을 프랑스의 학문과 선교의 중심 수도원으로 육성하였다. 후일 시티우 수도원은 성 베르티누스 사후 그를 기념하여 생베르탱(Saint-Bertin)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성 베르티누스의 문장은 배이다.

   성 베르트란드는 성 아우도마루스와 성 베르티누스의 동료로서 생캉탱 수도원의 원장이 되기 전에는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의 선교사로 활약했었다.

 

수라노(1.24)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580년

지역 : 소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는 그의 저서인 "대화집"에서 이탈리아 남부 카세르타(Caserta) 부근 소라의 수도원 원장으로 있던 성 수라누스(또는 수라노)에 대해 기록하였다. 성 수라누스는 수도원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롬바르드족을 피해 달아났다가 돌아오니 이미 모든 것은 약탈당해 남은 것이 없었다. 성 수라누스는 현장에서 그들에게 살해당했다. 성인의 유해는 여러 기적으로 유명하다.

 

아르테미오(1.24)

신분 : 주교

연대 : 396년경

지역 : 클레르몽

 

  성 아르테미우스(또는 아르테미오)는 황제의 사절로서 에스파냐를 향해 여행하던 중 병이 들어 프랑스 오베르뉴(Auvergne) 지방의 클레르몽에 정착하였다. 그 후 그는 클레르몽의 주교가 되었다.

 

엑스수페란시오(1.24)

신분 : 주교

연대 : 5세기

지역 : 친골리

 

   아프리카 출신으로 여겨지는 성 엑스수페란티우스(또는 엑스수페란시오)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 부근 친골리의 주교였다. 교회미술에서 성인은 기(旗)와 책을 들고 있는 주교로 그려진다.

 

자마(1.24)

신분 : 주교

연대 : 268년

지역 : 볼로냐

 

   이탈리아 볼로냐의 첫 번째 주교로 기록된 성 자마는 260년 교황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2월 26일)에 의해 주교로 축성되었다.

 

카독(1.24)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575년경

 

   성 군들레우스(Gundleus, 3월 29일)와 성녀 글래디스(Gladys, 3월 29일)의 아들인 성 카독은 아일랜드인인 성 타테우스(Thaddaeus)에 의하여 체어웬트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후일 수도자가 되었으며 영국 웨일스(Wales) 남단의 카디프(Cardiff) 근교 란카판(Lancarfan)에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후일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3년 동안 더 공부한 후에는 란스피디드에 성당을 세웠으며, 원장이 되어 란카판으로 돌아온 후 브르타뉴(Bretagne), 콘월(Cornwall) 그리고 스코틀랜드를 순회 선교하였고, 로마(Rome)와 예루살렘을 순례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그는 위든(Weedon) 근교에서 색슨인(Saxons)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고 전해온다.

 

티르소(1.24)

프로젝토(1.24)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티르수스(또는 티르소)와 성 프로젝투스(Projectus)에 대해서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펠리치아노(1.24)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59-254년

지역 : 폴리뇨

 

   교황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 5월 26일)의 제자인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또는 펠리치아노)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교황 성 빅토르 1세(Victor I, 7월 28일)로부터 폴리뇨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직접 팔리움(Pallium)을 받은 첫 번째 주교로 기록되었다. 그는 약 50년 동안 주교로서 봉직하다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었다. 이교도의 신에게 희생물을 봉헌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 그는 심한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한 뒤 폴리뇨 교외에서 순교하였다. 그 당시 성 펠리키아누스로부터 수도복을 받은 성녀 메살리나(Messalina, 1월 19일)가 감옥에 갇힌 그를 찾아 극진히 돌보던 중에 체포되어 죽을 때까지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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