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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14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14.

다시오(1.14)

신분 : 주교

연대 : 552년

지역 : 밀라노

 

   성 다티우스(또는 다시오)의 일생은 참으로 험난하였다. 그의 주교 재임 기간은 530년에서 552년까지 계속되었지만 끝없는 반목과 투쟁 속에서 때로는 영적인 문제보다는 세속적인 일에 대항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고트족(Ostrogoths)의 침공으로부터 밀라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장군과 동맹을 맺었으나 불행하게도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벨리사리우스 장군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전에 그는 체포되어 갇혔기 때문이다. 포로가 된 성 다티우스는 그 얼마 후에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석방되었다. 밀라노에서 쫓겨난 그는 결국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용감하게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를 도와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일파와의 논쟁에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체류하는 동안에 운명한 듯 하고, 그의 유해는 나중에 밀라노의 주교좌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는 매사에 두려움을 몰랐으며 완전한 내적 평화를 간직한 채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말라키(1.14)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연대 :

 

   성 말라키(Malachias, 또는 말라기)는 구약성서 열두 편의 소예언서 중 마지막 책인 말라키서의 저자로 등장한다. 말라키서는 “야훼께서 말라키를 시켜 이스라엘에 내리신 경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키서는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가치있는 증언을 수록하고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함께 유배 시대 이후의 예언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말라키’라는 이름은 말라키서 1장 1절 표제에만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말라기는 ‘나의 특사’ 또는 ‘나의 천사’라는 뜻이다.

   4세기의 유대 전승들을 모은 “예언자들의 삶”(Lives of the Prophets)에는 말라키가 즈불룬의 소파(Sopha) 출신으로 레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승에는, 말라키가 신앙심이 깊고 온유하여 백성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는데, ‘보는 것이 공정하여’ 말라키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한다. 가(假)에피파니우스(Pseudo-Ephiphanius)와 다른 교부들은 이 전승을 받아들였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전승들이 기원이 늦고 비현실적이어서 예언자의 생애에 관한 증명으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만 예언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인간 죄의 심각함(2.17-3,4; 3,6-7. 13-20)을 파악한 인격적인 신앙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와 이혼(2,10-16), 사회 불의(3,5)에 반대한 매우 헌신적이고 통합적인 인물이었다(A.E. Hill). 그는 성전과 사제와 희생 제사 등 종교의 형식에 대한 외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설교하였지만, 단지 형식주의자나 예식주의자가 아니고 윤리적, 영성적으로 알려져 있다.

 

사바(1.14)

 

신분 : 대주교

연대 : 1174-1237년

지역 : 세르비아

 

   중세의 세르비아 왕국인 네만야(Nemanya) 왕조를 세운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의 셋째 아들인 성 사바(Sabas)는 17세 때에 그리스의 아토스 산(Mount Atho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세르비아 수도자들을 위하여 아토스 산에 수도원을 따로 세운 후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다가 1207년 그의 형제인 스테파누스 2세와 불칸(Vulkan) 사이에 불화와 내전이 발발했을 때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었다.

   수많은 수도자들과 함께 돌아온 그는 스투데니트사(Studenitsa) 수도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개혁, 특히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여 땅에 떨어졌던 신앙과 교육이 부흥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력은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 일으켰고 교회 또한 크게 융성하게 하였다. 그는 방인사제와 주교를 존중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맡김으로써 더욱 발전시키는 덕을 지녔다. 그는 두 차례나 성지를 순례했는데, 두 번째 순례 중 불가리아(Bulgaria)의 티르노보(Tirnovo)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사바(Sava)로도 불린다.

 

아마데오(1.14) (복자)

신분 : 수도승

연대 : 1150년경

지역 : 클레르몽

 

   프랑스 오트리브(Hauterives)에서 태어난 아마데우스(또는 아마데오) 영주는 16명의 봉신(封臣)들과 함께 본느보(Bonnevaux)의 시토 수도원에 들어갔다. 후에 그는 그의 아들인 로잔(Lausanne)의 아마데우스(1월 28일)를 교육시키기 위해 한 동안 클뤼니(Cluny)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는 네 개의 수도원을 설립한 뒤 본느보 수도원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선종하였다.

 

에우프라시오(1.14)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성 에우프라시우스(또는 에우프라시오)는 아마도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의 기록에 나오는 성 에우크라티우스(Eucrathius)와 동일인이거나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아리우스파 반달족(Vandals)에 의해 순교한 주교일 것이다.

 

펠릭스(1.14)

신분 : 신부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로마

 

   로마의 사제인 성 펠릭스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그는 종종 같은 날 기념하는 놀라(Nola)의 성 펠릭스와 혼동되기도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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