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주님 세례 축일

by 세포네 2006. 1. 8.


The Baptism of Christ-VERROCCHIO, Andrea del
(detail by Leonardo da Vinci)
1472-75. Oil on wood, 177 x 151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주님 세례 축일(1월9일)
Battesimo del Signore
Baptism of the Lord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실
(마태 3,13-17; 마르 1,9-11; 루가 3,21-22)을
기념하는 날로, 보통은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첫 주일에
지내지만 전례력에 따라 옮길 수 있는 이동 축일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공생활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다.
8세기 말 이래 성탄 축일을 본받아 공현 팔부를
여기저기서 받아들임에 따라 제팔일째 되는 날
주의 세례 기사를 읽도록 하였다.

오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오신 구세주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당신의 사명을 공적으로 부여받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겠다는 세례 때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가톨릭홈에서)

13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공현 팔일째 되는 날은 주의 세례 축일이 되었으며,
이 축일을 위한 고유 기도문들도 만들었다.
이 축일은 1960년의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다.
1969년 이 축일은 1월 6일 다음의 주일에,
공현 축일을 주일에 지낼 경우에는 그 다음날 지내도록 정하였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 계획의 첫 실현이
예수님의 강생이라면, 예수님의 세례는 이 강생을
현실속에서 보다 구체화 시키는 첫 작업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봉헌과 봉사의 공적인 약속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요한 9,5).

그리스도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마태,13-17; 마르1, 9-11;루가3,21-22;요한 1,29-34)
그리스도의 세례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과 연대하시는 신학적 상징이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특별한 친교를
이루시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통하여 죄인들의 무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세상에서 인간을 위해 살기 위한
’비움(kenosis)의 첫 발자국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을 위한 세례였지만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도록 모든이를 초대하는 세례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닌 성령의 은총에 우리 인생을 맡기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응할 때
하느님께서는 더욱 기쁘고 사랑스럽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움받은 은혜에 더욱 감사드리며 세례 받을 때의
맹세를 되새겨보는 뜻깊은 축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바오로딸수녀회홈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1월 6일)과 주님 세례 축일(1월 13일)

성탄 때 동방과 서방 교회들이 주님의
탄생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고 있는데 반해, 
공현 전례에 있어서는 각 교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1) 서방 교회의 공현 축일

좁은 의미의 공현에는 현자들의 방문을, 주의 세례 축일에는 주님의 세례를 기린다.

공현
1월 6일이 공휴일인 지방에서는 이날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렇지 않으면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축일을 지낸다.
이 축일에는 어떤 특별한 예식이 없다.
현자들의 방문은 공현 축일이 기념하는 이방인 나라들을 상기시킨다.

복음을 낭독하기 전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를 기록한 독서를 하는데,
여기서 예언자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일 것을 예견한다(이사 60,1-6).
시간 전례에서는 바로 이 구약(이사 60,1-22)을 읽는데,
복음사가는 이 구절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사바의 모든 백성이 금과 향을 들고 오리라." 이 일이 실현되었을 때 성 바울로는,
유대인에게 약속된 것을 복음 선포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게 된다는 이 신비의 의미를 밝힐 수 있었다.(에페 3,2-6)

주의 세례
8세기 말 이래 성탄 축일을 본받아
공현 팔부를 여기저기서 받아들임에 따라
제팔일째 되는 날 주의 세례 기사를 읽도록 하였다.
13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공현 팔일째 되는 날은
주의 세례 축일이 되었으며, 이 축일을 위한 고유 기도문들도 만들었다.
이 축일은 1960년의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다.
1969년 이 축일은 1월 6일 다음의 주일에,
공현 축일을 주일에 지낼 경우에는 그 다음날 지내도록 정하였다.

(2) 동방에서의 공현 축일

모든 동방 그리스도교에서 공현 축일의 특징을 이루는 예식은,
주의 세례를 기념하여 1월 5일 저녁에 물을 강복하는 예식이다.
5세기초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잠기는 것임을 뜻하고자 파스카 성야에
예비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전통을 충실히 지켰었다.
그러나 얼마 후 세례 베푸는 날이 파스카에서
공현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 내려가시면서
영원한 생명의 샘으로 만들기 위해 물을 축성하셨기 때문이다.

후대에 들어 성인 세례가 드물게 되고
아이들 세례는 집에서 베풀게 되었지만
공현 축일에 세례수를 강복하는 전통은 보존되었다.
에디오피아에서는 공현 축일에 수많은
순례자들이 악쑴(Axoum)에 모인다.
사제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물 저장소의 물을 강복하며,
모든 이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경하하기 위하여 거기서 목욕을 한다.
그리고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모두 끝나고 연중 시기로 이어진다.


1월 6일 신현 축일 아뽈리띠끼온 중

공현제-예수의 세례
동방교회에서는 주의 세례를 "주의 공현"또는 "주의 현현"이라고 하는데
이는 세례때에 우리 주께서 인간들에게 공적으로 계시되셨기 때문이다.

즉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콘에서처럼 감각 세계에 최초로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대축일:인창동성당게시판1224,1225,1226번)

이 이콘의 윗부분에서 우리는 하늘을 나타내는
원형체가 지상영역을 꿰뚫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원형체로부터 구세주의 머리 위로 비둘기의 형상을 드러내는 빛이 내려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접적이지만 성부,성자,성령의 묘사를 알수 있다. 

이콘에서 그분은 마치 동굴 안에서 계신 것처럼 물을 배경삼아 서 계신다.
그 동굴은 심연,죽음,매장의 상징이다.
그리고 예수가 들어서 있는 강물은 단순한
요르단 강만이 아니라 구약의 두가지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즉 출애급 때의 홍해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건넜던 요르단 강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이 시작됨을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는 모든 피조물을 위해 죽으시는 종의 형상을
취하신 분의 자기비허 (필립비2,7) 의 겸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오래된 이콘은 예수님을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린데 비해
이 작품은 허리에 옷을 걸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육화로 인해 인간이 원죄로 부터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음을 나타 낸다.

"그리고 아담 당신은 최초의 어머니 에와와 함께 기뻐하라.
그 옛날 낙원에서 처럼 숨지말라.
그리스도께서 벌거벗은 당신들을 보시고
순결의 옷을 입히시기 위해 오셨으니,
진정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들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도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례를 받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도 똑같이 해야한다.

크리스챤 신앙의 입문인 세례는 죄의 고백을 수반해야 한다.
수치심과 이에 따르는 고백없이는 용서가 있을 수 없으며,
하느님께 돌아 갈 수도 없다.
정교회의 신학자 안토니 볼룸은 고백을 선행 하는
겸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겸손은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하느님의 정의 아래 서있는 사람의 태도이다.
그리고 흙과 같은 사람의 태도이다.
겸손은 "기름진 땅" 땅이라는 라틴말(Humus)에서 나왔다.
기름진 땅은 언제나 무시된채 밟히도록 허락되어있다.

땅은 말이 없고 드러나지 않고 검으며,
언제나 어떠한 씨앗도 포용하여
그것에 본질과 생명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땅이 지상의 모든 허접 쓰레기를 받아들일 때
땅은 진정으로 더욱 기름지게 되기 때문에
땅은 자신을 낮추면 낱출수록 더욱 열매를 많이 맺을수 있게 된다.
땅은 너무도 비천해서 그것에 손해를 입히고 창피를 주고
모욕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 땅이 지닌 평화와 기쁨이라는
영혼의 평온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콘.신비의 미에서)



♬4.Occuli Omnium-베네딕도수도원





    

'[가톨릭과 교리] > 축일 (聖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 9일 켄터베리의 성 아드리아노  (0) 2006.01.09
1월 8일 성인들  (0) 2006.01.08
주님 공현 대축일  (0) 2006.01.08
1월 8일 성 세베리노  (0) 2006.01.08
1월 7일 성인들  (0) 2006.01.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