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개 원형 건물과 5개 부속 동(棟)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형성화한 초당동성당 전경
2. 정귀철 주임신부와 원용훈 보좌신부가 미사에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벽면과 소년 예수상이 눈길을 끈다.
3. 성당 외벽과 내부 공간 사이에 있는 순례길. 신자들은 이 통로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하느님과 만남을 준비한다.
현대건축으로 재현한 '오병이어 기적'
강릉 경포대 건너편 초당마을에 들어서면 키 큰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고요한 솔밭을 한바퀴 휘돌아 나온 바람은 도시생활의 묵은 먼지를 말끔히 털어낸다.
햇콩과 바닷물로 만든 순두부는 또 어떤가. 즉석 음식에 변질되어가는 입맛을 담백하게 씻어내준다. 이래저래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은 동네가 초당이다.
초당동성당 정귀철 주임신부도 기분 좋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정 신부는 "앞으로 외형에 걸맞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며 새해 선교사목 계획을 짜느라 여념이 없다.
2년 전 지은 이 성당은 한국 교회건축의 고정틀에 집착하지 않고 현대건축의 장점을 최대한 반영한 건축물이다. 언뜻보면 대형 갤러리나 연구소로 오해할 정도로 외형이 이채롭다. 이 때문에 낯선 사람이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다 성당이라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일이 흔하다.
성당 외관은 물방울 모양의 평면을 따라 둥글게 에워싼 원형이다. 그 위에 반구형 뚜껑이 덮여 있다. 성당 옆에 12사도를 상징하는 기둥 12개가 박혀 있는 원형 정원이 있다.
그러나 초당동성당 건축미의 진수는 찬찬히 구석구석 살펴보아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원래 성당 부지는 표고 차가 7m나 되는 데다 물고기 형상으로 길쭉했다. 게다가 경사지였다. 설계를 맡은 김영섭(시몬)씨는 기본적으로 땅과 대지에 기초하는 조형관을 갖고 있는 건축가다. 그래서 설계 초기부터 오병이어(五餠二魚, 마태 14, 14-21)의 기적을 상징으로 삼았다. 원형 성당과 마당은 두 마리 물고기를 상징한다. 사무실과 사제 집무실, 회합실 등 5개 부속 동(棟)은 다섯 조각 빵이 된다. 때때로 '과격하다'는 평까지 듣는 그의 실험적 조형관은 성당을 짓기에 부적합한 초당동성당 부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성당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장소는 성당 내부 공간이다.
흰색 원형 벽면으로 둘러싸인 성당 내부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하고 청결하다. 제단 뒤 천장에서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자연광이 세상 풍파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빛은 동양화 여백처럼 한적하고 고요하다. 스테인드 글라스(유리화) 기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빛의 연출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바닥과 천장도 부활과 생명을 상징하는 흰색이어서 정결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거친 콘크리트면을 그대로 살린 내벽도 마음을 침잠(沈潛)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거푸집을 떼어낸 다음 샌드블래스팅(Sandblasting) 공법으로 표면에 압력을 가해 골재 재질과 분포에 따라 요철이 생기게 한 것인데 정으로 자연스럽게 다듬은 느낌이 난다. 위에서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빛이 만들어내는 얕은 그림자 얼룩이 적당히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외벽은 큼직한 타일을 깨뜨려 평탄하게 이어 붙였다.
성당 안 십자가 형상은 충격적이다.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 고상(苦像)은 없다. 대신 부활한 후 하늘로 오르는 예수가 그 자리에 있다. 분명히 앳된 소년의 얼굴이다. 신자들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죽음 뒤의 부활을 희망한다. 할머니 신자들은 처음에 이 예수상을 보고 "분심이 들어 어떻게 기도하겠느냐"고 걱정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성당 내부에 이르는 순례길도 매우 독특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성당 외벽과 내부 공간 사이 통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경사로다. 정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 순례길을 피할 방법이 없다. 하늘에서 빛이 은은하게 내려오는 길을 따라 걷는 이 짧은 순례는 하느님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하느님 집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세심한 배려가 있을까.
원형 마당을 둘러싼 열주 숫자 12개는 예수 부활의 증인인 12사도를 본받아 복음을 널리 전파하려는 공동체 염원을 나타낸다. 마당 옆에 있는 사무실은 X자 기둥에 의해 허공에 들려있다.
사제관과 수녀원도 걸작이다. 성당 옆 12m 도로 건너편 솔밭 경사지에 들어선 목조 사제관과 수녀원은 영락없는 전원주택이다. 강릉시 보호수인 소나무를 한 그루도 훼손하지 않고 건물을 지은 덕분이다. 목조를 선택한 이유는 불가침의 장애물 소나무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경사가 심한 수녀원 지붕 역시 나무에서 떨어지는 솔방울을 땅으로 흘려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초당동성당은 성미술에 해박한 장익 주교가 춘천교구장 부임 이후 처음 지은 성당이다. 장 주교는 춘천교구를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성당을 짓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건축가, 조형 예술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공사 중에도 수차례 현장에 나와 공정을 살피는 등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1997년 착공 직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자 교구 내 모든 본당에서 십시일반 정성으로 건축비를 보태주었다.
장 주교는 성당 건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앙 공동체가 자아의식을 뚜렷이 정립한 후 이를 하나의 성당으로 구상하고 구체화할 때 세가지 중점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는 뜻, 둘은 쓸모, 셋은 아름다움이다. 이 세가지가 그 시대 그 고장 사람답게, 진정 자기답게 하나로 어우러져야 참되고 뿌리깊은 값진 집이 된다."
초당동성당은 지금도 건축 조형미 면에서 전국적으로 회자(膾炙)된다. 1년 전 서울에 사는 예비 신랑신부는 강릉에 놀러왔다가 성당의 아름다움에 반해 서울에 예약해둔 혼배미사 장소를 초당동성당으로 변경하는 일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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