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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수원교구] 안성성당

by 세포네 2005. 6. 14.

수원교구 '안성성당'을 한번 방문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고 했다. 혼자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무게에 지친 신앙인이 조용히 묵상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이야기에 솔깃해 길을 떠났다.

믿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길, 준비가 철저해야 했다. 인터넷에서 '안성 포도'의 고장, 안성시 관련 자료를 훑었다.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안성성당은 '안성 포도' 피라미드의 맨 위 꼭지점에 있었다.

1901년 안성. 안성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파리외방전교회 공안국(孔安國, Gombert) 신부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성당 마당에 무심코 심은 독일산 포도 묘목이 의외로 탐스런 과실을 맺은 것이다. 공 신부는 안성지역이 포도재배에 적합한 기후 및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고국(프랑스) 방문길에 포도나무 32종을 가져와 박숭병 당시 총회장에게 심도록 했다. 이것이 오늘날 '안성 포도'의 효시다.

경기도 안성시 구포동 80-1. 안성성당 측변에 심어진 포도나무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갔다. 그 포도나무에서 1900년대 초 한국 농촌을 걱정하는 선교사들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십자가의 길과 포도나무 길을 한바퀴 돌아 성당 정면에 섰다.전주 전동성당 설계감독 및 명동성당 내부공사를 감독한 위돌박(Victor Poisnel) 신부가 설계 감독을 맡아 공사를 진행, 1922년 봉헌했다.

이색적이다. 전반적 분위기는 전통 서양 교회건축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옆으로 돌아서자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한옥이다. 서양 가톨릭교회 건축 양식과 한국 전통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절충식 건물.

신앙에서 오는 '익숙함'과 한국인만 느낄 수 있을 법한 '편안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 82호. 건축학자들은 이 성당을 두고 종교 건축 토착화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건축양식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성당 건축사 연구에서 '안성 성당'이 빠질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목재로 이뤄진 성당 내부 공간도 이색적이었다. 최근 성당 건축이 제대 주변에 자연채광을 강조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안성성당은 이와 정반대 길을 걷고 있었다. 익랑의 끝을 제대 전면부에서 끊어지게 해 옆창과 위창의 빛을 극도로 제어했다. 제대는 성당의 여타 창문 빛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신자 5명이 성당으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서울 신자들은 성당에 앉아 한참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저절로 기도가 되네요."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에요." 목재 소재의 친근함, 그리고 자연 채광의 절제가 가져온 효과였다.

성당을 나와 문앞에 서면, 4000평에 이르는 성당 부지가 한눈에 보인다. 오른편으로 2000년 10월3일 봉헌된 안성성당 100주년 기념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옛 안성성당이 '과거'라면, 100주년 기념성전은 '현재'였다.

윤성호(자카리아) 한서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설계한 총건평 840여평, 지하 1층 지상 2층 안성성당은 옛 성당과 절묘한 신구 조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옛 성당에선 '빛의 은은함'이 느껴진다면 100주년 기념성전은 오히려 '빛의 흐름'을 강조했다.

제대 위 사각형 창을 배치, 말씀을 뜻하는 빛의 생명력을 강조했고 성당 입구 상부 벽에는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세 개의 사각형 창을, 신자석 옆에도 창을 두었다. 최근 많이 채택되는 '노출 콘크리트기법'으로 외벽을 처리한 것에서도 '현재'가 느껴졌다.

100주년 성당 옆으로 본당 설립 200주년을 향한 '미래의 십자가'가 설치돼 있다. 총길이 18m에 무게만 13t에 이른다. 그 무거움에서 '100년을 넘어 다시 100년'으로 향하려는 믿음 후예들의 진중한 각오가 느껴졌다.

안성을 떠나는 차창 밖으로 '포도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성서에서 읽은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태오 복음 20장 1-16절. 성서는 하느님 나라를 포도원에 비유했다. 포도원으로 둘러싸인 안성성당이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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