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예수 성탄대축일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고 있는 청주교구 옥천본당 청년들. 해질녘 석양이 겨울 하늘에 나지막이 깔리는 가운데 성탄수를 밝히는 촛불이 하나하나 켜지며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 청주교구 옥천성당과 삼나무과 거대 수종인 메타세콰이어 사이에 자리한 본당 주보 소화 데레사 성녀상.
3. 죽향리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을 때 본당 제대 밑에 놓여있던 성석으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유해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4. 옥천성당 초입의 십자고상.
5. 옥천성당의 야생화 중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산비장이'. 주로 7월에서 10월 사이에 연하고 붉은 자줏빛꽃이 피며 두화(頭花) 지름은 약 3~4㎝이고 가지 끝과 줄기 끝에 각각 1개씩 달린다. 사진=옥천본당 제공
신사 있던 자리에 하느님의 집 '우뚝'.. 1906년 본당 설정, 충북 남부3군 '신앙의 모태'
겨울의 한복판. 제 몸 오도마니 내어놓고 삭풍에 떨고 있는 겨울나무 몇그루…. 한낮임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매운 추위. "사랑만이/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던 김남주 시인의 시 '사랑' 한 대목이 문득 떠오르는 혹한. 겨울 성당 유리화엔 그러나 얇은 햇살 한자락 기도하는 이들을 어루만지 듯 따스하게 머물다 간다.
서울에서 대전을 거쳐 부산 방향으로 10여분 남짓 지났을까. 옥천 인터체인지가 나온다. 옥천 IC에서 우회전하자마자 2004년 새해로 본당 설정 98돌을 맞는 청주교구 옥천성당 팻말이 눈에 띈다. 몇년전만 해도 옥천 지역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옥천성모병원은 노인요양원으로 변해있고, 요양원을 왼쪽에 두고 비탈길을 오르자 작은 언덕 위에 '그림같은' 성당이 나타났다. 바로 '향수'의 시인으로 한국전쟁 때 납북 실종된 정지용(프란치스코, 1902~?) 선생의 고향 성당인 옥천성당이다.
성당 정문엔 마침 예수 성탄대축일을 앞두고 본당 청년들이 한창 '성탄수'를 장식하느라 한창 분주했다. 바람이 스밀까 목도리로 목을 둘러싼 채 성전을 꾸며가는 손길이 정겹기만 하고, 하나둘씩 등에 불이 들어오자 거센 바람마저 훈풍이 되어버리는 듯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6년으로 본당 설정 100돌을 맞게 되는 우리 성당은 짜임새있는 전례공간입니다. 여느 시골성당과 마찬가지로 시끄럽지 않고 아주 조용한 성당이죠. 지난 2000년 KBS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꼽힐만치 그윽하고 아름다운 종소리에 '향수의 고장'이란 옥천의 별칭답게 우리 성당은 고향같은 푸근한 느낌을 줍니다. 현 성당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가 자리잡고 있던 공간에 세워졌는데, 적산을 불하받아 5978평의 너른 공간에 자리하게 됐지요. '기도하는 성당'으로는 그만입니다."
'문화재청 지정 등록문화재 7호'로 지정돼 있긴 하지만, 옥천성당이 건축적으로 그리 빼어나게 아름다운 성당은 아니다. 지난해 2월28일자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도 우리 근대건축역사상 40~50년대 부실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건축물 중 드물게 남아있는 건축물이기 때문이었다. 규모도 연건평 210평에 불과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1956년 신축된 이 성당은 인근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이 답사를 오고 가는 단골 성당 건축물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하지만 성당의 진면목은 외관보다는 오히려 알찬 성당 내부에 있다. 성전에 들어서는 이들은 외관과 달리 예상외로 넓은 전례공간에 놀라고 그 포근한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고 한다. 91년 110평을 늘려 라틴십자형 형태로 증축된 성전은 아직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만 하는 마루바닥 성전으로, 장방형 천장에 아름다운 유리화로 둘러싸인 제대, 왼쪽 간이 유물전시공간 등이 한데 어우러져 아늑한 느낌을 준다.
98년 본당사를 함축하는 소규모 유물 전시공간이 특기할 만하다. 1906년 초대 주임 홍병철(루가) 신부가 충북 옥천군 옥천읍 이문동에 본당을 설립한 이후 22평 규모 죽향리 성당 시기를 거쳐 현 삼양리에 성당이 자리하기까지 신앙 유산 70여점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전 주보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제대 성석(聖石), 죽향리 성당시절 감실·십자고상·종, 3대주임 윤예원(토마) 신부가 썼던 가죽털모자, 지금은 없어진 잣고개(현 백향리)공소 제대, 메리놀회 선교사들리 설치한 십자가의 길 14처, 현 주보 소화 데레사 성녀의 유해가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대 성석, 각종 교리문답집 등은 옛 신앙의 향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옥천성당은 특히 보은·옥천·영동군 등 충북 남부3군 신앙공동체의 모태(母胎)가 된 유서깊은 신앙의 현장이다. 병인박해(1866년) 이후 소백산맥 산줄기에 숨어살던 신자들이 파리외방전교회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신부가 전교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집단으로 이주, 정착하게 되면서 신앙공동체가 형성됐다. 장호원본당(현 청주교구 감곡본당) 주임 임 가밀로 신부의 전교로 공동체가 활성화됐으며 한국인으로는 열번째 사제인 홍병철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본당이 설정돼 공동체 초석이 만들어졌다. 이어 보은·영동본당에 이어 청산·이원본당 등을 분가, 남부3군 모본당이 된 것. 대전본당(현 대전교구 대흥동주교좌본당·목동본당 전신) 뿌리 또한 옥천본당에서 비롯될 정도였다.
그러나 옥천본당 또한 우리 민족과 교회가 겪은 수난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중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한국인 사제가 사목한 탓에 그 흔한 외국교회 지원 한번 받지 못했고 일제의 압력으로 본당 사목 또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공동체가 분열되고 전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1914년, 1943년 두차례나 공소로 격하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48년 7월 김영근(베드로) 신부가 7대 주임에 부임, 다시 본당이 되면서 옥천본당은 활성화 계기를 맞게 된다.
성당 왼쪽으로 난 쪽문을 나선다. 문턱을 넘자마자 재빨리 옷섶 여미게 하는 지독한 한기에 들꽃조차 숨을 죽인다. 조경 흔적이 역력한 성당 정원을 성당과 강당, 소화 데레사 교육관, 유치원 등이 둘러싸고 있다. 정원엔 은행나무와 소나무, 느티나무 사이로 성모상, 성모자상 등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 사이 작은 표지판들이 눈에 띈다. 가만 들여다보니 야생화 이름이 써 있다. 가는쑥부쟁이와 개구리발톱, 미선나무, 가는잎향유, 노랑붓꽃, 복수초, 할미꽃, 민백미, 고려엉겅퀴, 송지나물, 톱풀…. 본당 설정 90주년 당시, 21대 주임 이승용(마태오) 신부와 함께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본당신자 황재현(빈첸시오, 50)씨가 야생화를 180여종이나 옮겨 심었다더니, 바로 그 꽃들인가 보다. 겨울은 빼고 봄부터 가을까지 일주일이나 열흘 간격으로 형형색색 들꽃이 번갈아 피는 게 장관이라는데, 직접 보지 못하고 가는 게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봄'이 오면 하고 많은 들꽃들은 다시 황홀한 생명의 망울을 부활하듯 피워내리라.
이처럼 새 움을 내밀하게 간직한 채 동면하는 들꽃처럼, 고난의 민족사와 함께 시련을 겪던 옥천본당 공동체는 해방 이후 부활시기를 맞게 된다. 48년 7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근(베드로) 신부는 두차례나 본당이 폐쇄돼 활력을 잃고 있던 본당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옥천읍 신읍 삼양리로 성당을 신축 이전했고 이후 8대 변 로이 신부를 시작으로 15대 노 리차드 신부까지 23년간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 주임 시대를 맞게 된다. 특히 평양교구 의주본당 주임으로 있다가 월남한 변 로이 신부는 54년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자마자 성당 신축에 들어가 56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성당인 100여평 규모 새 성전을 완공, 화제가 됐다.
교세 확장에 따라 55년 보은본당, 56년 영동본당이 각각 분가돼 충북 남부3군에 1군 1본당 시대가 열렸으며 성모의원이 개설돼 의료선교도 본격화됐다. 이어 77년 16대 박용수(바오로) 신부가 부임하면서 다시 '한국인 교구 사제 사목시대'가 열려 28년째 3000년기 새 복음화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성당 정원으로 들어서자면,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최봉자(레지나) 수녀가 제작한 성모상과 함께 십자가의 길 14처가 아늑한 기도 분위기를 연출하고, 그 안엔 잔디가 깔려 있어 지난 가을 축구를 하며 뛰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원 옆 '소화 데레사 교육관'은 17대 주임인 서정혁(프란치스코) 신부와 본당 공동체가 합심해 이뤄낸 작품. 본당 설정 80주년을 맞아 86년 착공, 이듬해 완공한 교육관에는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소화 데레사)의 사진이 50여점이나 전시돼 있어 본당 수호성인의 의미를 신자들에게 깨우쳐준다. 1,2층 복도에 흑백사진으로 전시돼 있지만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히 뜯어보면 성녀의 삶과 신앙, 그 향기가 오롯하게 전해진다. 또 박용수 신부 사목 시절 개원한 교육관 뒷편 성모유치원에서는 원아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앙증맞게 새어나오고 옥천본당 공동체의 미래를 기약하는 것 같다.
2006년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게 되는 옥천본당은 이제 초대 주임 홍병철(루가) 신부의 묘역 단장 및 빗돌 건립, 성당 개축 및 보수, 본당 분가 예정부지 확보를 위한 기금조성, 지난 96년 90주년을 기해 편찬된 룗옥천본당사룘(상)에 이어 본당사 하편 편찬 등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내적 사업으로 개인과 가정, 본당 단체의 성화를 비롯해 신자재교육을 통한 쇄신, 쉬는 형제 찾기, 전교 등 4대 중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덕수(레오) 신부는 "40년 가까이 여러 본당에서 사목했지만 '향수의 고장' 옥천성당만큼 아기자기하게 가꿔지고 짜임새 있고 조용한 성당은 본 적이 거의 없다"며 "주5일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 갈 곳이 많겠지만 충청, 경상, 전라 3도 중간 지역에 위치한 옥천성당만큼 조용하게 앉아 기도하기 좋고 성체조배하기 좋은 데다 더불어 야생화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성당은 없을 것"이라며 옥천성당 예찬론을 폈다.
이와 함께 경 신부가 옥천에서 찾아볼 만한 곳으로 꼽은 곳은 국내의 '선구적 가톨릭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정지용(프란치스코) 시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교동 생가다. 옥천IC를 나와 왼쪽 보은방면 37번 국도로 진행하다 보면 나타나는 게 옥천읍 구읍 교동에 위치한 지용 생가. 90년대 중반 복원된 초가집과 청석교, 실개천, 닭장 등이 등장, 다소 단촐해 보이지만 '향수'에서 묘사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듯 지용 생가는 매혹적이기만 하다. 특히 88년 시작돼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지용제가 열리는 5월에 찾으면 옥천성당의 신앙적 향기와 함께 지용의 문학적 향취에 흠씬 젖어볼 수 있다.
지용 생가 관련 문의 : 043-730-3544, 옥천군 문화관광과
지용 생가에서 2.7㎞밖에 떨어지지 않는 '메리워드 영신수련원'에 미리 연락해 피정을 예약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옥천IC에서 좌회전, 3.5㎞정도 가게 되면 마주하는 대청호반 끝자락에 위치한 이 피정 집은 예수수도회(구 동정성모회)가 지난해 4월 폐교를 재단장한 기도공간. '이냐시오 영신수련' 기본으로 삼고, 가정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가족과 부부 영신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옥천에 간다면 꼭 들러볼 만하다.
문의 : 043-733-3228, 메리워드 영신수련원
'[교회와 영성] > 가보고싶은 성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교구] 나바위 성당 (0) | 2005.06.08 |
---|---|
[서울교구] 절두산 성단 (0) | 2005.06.08 |
[대전교구] 공세리 성당 (0) | 2005.06.05 |
[부산교구] 언양성당 (0) | 2005.06.05 |
[광주교구] 북동 성당 (0) | 2005.06.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