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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대전교구] 공세리 성당

by 세포네 2005. 6. 5.

◀ 1. 공세리성당. 성당 올라가는 입구의 노란 들국화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2. 공세리성당 내부 중앙 위쪽에 보이는 것이 본당 주보인 베네딕도 성인상.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사용한 제대, 성체틀, 양쪽 벽 소제대 등이

     옛 성당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포지역 신앙못자리, 선교 전진기지

 

 가을 끝자락인 11월 말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은 발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과 활짝 핀  들국화, 잎새 떨어진 나무에 탐스럽게 달린 감들이 고풍스런 성당 분위기와 어울려 또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대전교구 공세리성당은 1년 사계절의 모습을 모두 절기에 맞게 잘 담아내는 '아름다운 장소'로 알려져 영화, TV 드라마, 사진 촬영 단골 장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내년 2월 개봉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도 얼마전 이곳에서 촬영했다. 순례객의 발길도 연중 끊이지 않고 있다.

 

 공세리성당을 찾았을 때 수령 500년 쯤 되는 아름드리 나무를 보호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조경공사가 마무리 중이었다. 대전교구 최초의 서양식 고딕 건축물(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 144호)로 지난 99년부터 추진해온 성당 원형 복원작업을 끝내고 조경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를 낀 수려한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공세리성당은 부지가 도시성당에서는 꿈도 꿀수 없을 만큼 넓다. 9000평에 달하는 성당 터는 조선시대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곳으로, 한양으로 운송하려고 거둬들인 세곡을 임시 보관했던 장소다. 성당이 있는 언덕 바로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이 지역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입구이자 해상과 육로를 연결하는 중요한 포구이기도 했다.

 

 성당으로 올라가기 전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양손을 벌려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의 한복입은 예수성심상이 눈에 들어온다. 사제관과 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있는 곳이다.

 

 때마침 피정의 집 한켠에서는 한 무리의 여성과 수녀가 앞치마를 두르고 김장 담기에 분주하다. 피정의 집 이용자들이 내년에 먹을 김치다. "본당 어떤 단체가 김장 봉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원한 신자들이란다. "집에도 김장을 다 했느냐"고 물으니 "성당 일이 먼저가 아니냐"며 벌겋게 버무린 배추를 맛보라고 떼어준다.

 

 자신의 일과 마을 일, 성당 일을 굳이 분리하지 않고 품앗이가 잘 이뤄지는 게 이 지역의 특징이라고 설명한 오남한 주임신부는 "이곳은 내포지역 신앙의 못자리이면서 지역민에겐 마음의 고향, 정신적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 명절에 성당 마당에서 마을 잔치가 열리는 것도 전통이다.

 

 오 신부와 같이 성당으로 향하던 중 몇몇 순례자와 마주쳤다. 시간이 없어 제대로 순례하지 못해 아쉽다는 이들은 여유를 갖고 꼭 다시 찾아오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공세리성당 구내에는 오래된 고딕 성당 건물 뿐 아니라 박씨 3형제 순교자 묘, 십자가의 길, 성체조배실, 수령 300~500년 된 보호수들, 피정의 집 등이 있다. 역사적, 교회사적 중요성을 알고 차례차례 순례하다 보면 분위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성당 건물은 1895년 설립된 이 본당의 초대 주임 파리외방전교회 에밀리오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를 불러들여 1922년 완공했다. 지금은 워낙 규모가 큰 성당들이 많아 소박해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공세리성당은 지방 명물로 구경꾼을 끌어모으곤 했다.  

 

 성당 안 정면 중앙 벽에는 성 베네딕도상이 자리하고 있다. 본당 수호성인이다. 드비즈 신부가 성당 부지로 이곳을 매입했을 때는 이미 공세창이 폐쇄돼 폐허화되면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장소가 돼 버린 상태였다. 드비즈 신부는 그런 이곳을 베네딕도 성인께 봉헌하고 가톨릭 신앙의 전진기지로 바꿔놓았다.  

 

 베네딕도 성인상 아래에 나무 십자가가 있고 왼쪽엔 성부자상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엔 원래 성모자상이 있었으나 분실돼 비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전에 벽을 바라보고 미사를 집전하던 제대, 성체 난간틀과 양쪽 벽의 소제대, 성가대틀, 고해소 등은 옛 성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당을 복원하면서 유리창은 밝은 색상의 14처 유리화로 꾸몄다.    

 

 공세리성당을 얘기할 때 이곳에서 35년간 사목하면서 본당의 기초를 다진 드비즈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가난한 지역민을 위해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드비즈 신부는 직접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했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고약 비법을 전수시켰다.

 

  고향 프랑스에서 재정을 지원받아 성당을 지을 때 가난한 신자들에게 공사에 참여하도록 해 품삯을 지불했으며, 가난한 신자들이 죽은 후 육신이 묻힐 곳이 없음을 딱하게 여겨 성당 맞으편 산을 구입, 충청도에선 첫 공원 교회묘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금도 노인 신자들은 세상을 떠나면 이곳에 묻히길 바라고 있다.

 

 성당 밖으로 나와 왼쪽으로 돌아 성당 뒤로 한바퀴 돌면서 이어지는 길은 14처 길이다.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따라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14처 길의 각 처는 실물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순례자들의 성금과 후원자들의 참여에 힘입어 건립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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