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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당건축이야기

40. 고딕 대성당의 리브 볼트

by 세포네 2023. 10. 22.

‘리브 볼트’ 출현, 넓고 높은 고딕 대성당 구조의 출발점

예루살렘 성전의 건설’, 장 푸케(Jean Fouquet), 1465년경. 출처=BnF

‘야만적인 양식’이라 여겨졌던 고딕 건축

고딕 대성당은 어떤 건축이었는가? 그것은 초월하시는 하느님을 신비로운 빛으로 나타내고자 한 건축, 천상의 예루살렘을 공간으로 미리 보여주려 한 건물이었다. 초기 고딕 건축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듯이 이런 새로운 성당은 12세기 중엽에 일드프랑스(le-de-France)를 중심으로 주로 프랑스 북부에 나타났다. 그래서 이런 고딕 건축을 당시에는 단지 ‘프랑스 건축’으로 불렀다.

고전건축의 눈으로 바라본 르네상스 사람들에게는 이 새로운 건축은 이상한 건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건축을 야만인인 고트족(Goth)이 만든 양식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그러나 후세에 ‘야만적인 양식’이라 여겨졌던 고딕 건축은 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고,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아 오늘날에도 중세의 새로운 대성당을 ‘고딕’ 대성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1465년경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한 프랑스 화가 장 푸케(Jean Fouquet)는 그의 고향 투르(Tours)의 대성당 건축물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건설’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왼쪽에는 시민들이 기부금을 들고 있는 궁전 계단을 오르고 있고, 발코니에서는 왕이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가리키며 공사를 감독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자세히 관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건축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맞지 않는다. 중앙에 있어야 할 포털이 모퉁이에 쏠려 있고, 장미창과 포털의 관계도 이상하다. 대성당 앞에서는 익명의 장인들이 회색의 돌가루가 덮인 채 부재를 망치질하고 끌로 깎고 있고, 조각가는 무릎을 꿇고 조각하고 있다. 지붕에서는 탑을 세우기 위해 크레인으로 자재를 들어 올리고 있다.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순례자는 고딕 성당의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출처=blog.stephens.edu

‘야만적인 양식’이 지어지던 시대이니 사회도 ‘야만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중세에는 도시의 시민이나 상인들은 영주에 반항하여 코뮌이라는 도시 자치체를 만들었다. 중세 도시는 아주 작아서 인구는 보통 5000명 정도였다. 이런 도시 안에서 도시상공업자들은 직업별 길드를 결성했다. 건축 생산은 석공조합, 도편수조합 등 세분된 수공업 조합이 했다. 중세 건설 수공업자는 도제, 석공·목수 등 장인, 감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인구가 증가하고 장인의 수가 늘자, 그들만의 조합을 만들었다. 그들은 조합으로 기술을 유지하고 진보시켰다. 이제까지의 건축 활동의 중심이었던 수도원을 대신하여, 도시의 건축 장인의 건설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고딕 건축은 본질적으로 도시의 건축이었으며, 이런 기술의 시대가 고딕 양식의 시대였다.

고딕 대성당의 가장 큰 특질은 역학적 구조가 건축의 예술적 표현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인문ㆍ종교적 의미에만 익숙한 이들은 고딕 대성당에 관한 이런 설명에 금세 흥미를 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초월하시는 하느님을 신비로운 빛과 이 땅에 표현된 천상의 예루살렘인 고딕 대성당은 어떤 시대에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치밀하고 세련된 석공 기술 위에 성립한 것임을 잊거나 멀리하거나 남의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고딕 대성당은 특히 디테일의 마감도 고도로 완성된 양식만이 갖는 명료한 필연성을 갖추고 있다. 곧 세세한 디테일이 그대로 건물 전체의 형식을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고딕 대성당의 역학적 구조가 있기에 성당의 본질을 이 땅에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아미앵 대성당 리브 볼트 천장, 프랑스. 출처=Jonathan/Fotolia

고딕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볼트’

고딕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스테인드글라스와 빛? 아니다. 그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볼트(vault)다. 볼트를 얹는 기술과 그것을 받쳐주는 지지체의 조직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고딕 대성당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로마네스크 후기에는 이미 넓고 큰 중랑에도 교차 볼트가 걸쳐 놓여 있었다. 교차 볼트란, 대체로 형태가 비슷한 원통 볼트 두 개를 직교해서 생긴 볼트를 말한다. 이렇게 하면 지지체에는 각각 지붕의 하중 1/4로 분산된다. 따라서 교차 볼트를 만들려면 그것이 덮은 베이가 반드시 정사각형이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반지름이 같은 반원통 볼트를 두 개를 그대로 직교시키면, 곡면이 교차하며 생긴 ‘능선(稜線)’이 타원형을 이룬다. 고대 로마의 교차 볼트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중세 사람들은 타원을 그릴 줄 몰랐다. 그래서 능선을 받치는 아치도 대각선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형의 아치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교차 볼트의 중앙부가 이상하게 높아졌다. 이렇게 하면 로마네스크의 볼트에서는 반원형에 가깝게 하도록 중앙부를 높여 어느 정도 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능선이 정확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로마네스크 교차 볼트의 최대 약점이 된다. 그래서 로마네스크에서는 튼튼한 횡단 아치가 그 밑을 받치고 있었다.

셍쎄베랑 성당 리브 볼트 천장, 프랑스 파리. 출처=Wikimedia Commons

리브 볼트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첨두아치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능선을 ‘리브(rib)’라는 아치로 보강하는 것이었다. 이 아치를 ‘대각선 아치’ 또는 ‘대각선 리브’, 프랑스어로 ‘오지브(ogive)’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 교차 볼트의 능선에 대각선 아치를 더한 볼트를 ‘리브 볼트(rib-vault)’라 부른다. ‘리브(rib)’는 갈비뼈이고, 볼트(vault)는 아치형 지붕이므로 ‘리브 볼트’를 ‘갈비뼈 아치형 지붕’이라 할 수도 없어서 그대로 ‘리브 볼트’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하면 볼트의 무게는 모두 리브에 걸리므로 리브 위에 조금 더 가볍게 만든 볼트 판(웹 web)을 얹어 볼트 자체를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리브는 역학적으로 지지하는 기능 말고도 시공을 위한 기준선을 설정하거나 조형적 또는 장식적인 역할을 하며 공간 전체를 가볍게 보이는 중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리브 볼트의 출현은 고딕 대성당 구조의 출발점이었다.

고딕 대성당을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것이 첨두아치(pointed arch)다. 그러나 첨두아치도 리브 볼트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했다. 반원 아치에서는 원의 반지름이 커지면 지지체 간격도 벌어지므로 구조적으로 불리해진다. 더욱이 직사각형 베이를 교차 볼트로 덮으려면 짧은 변 위의 아치(벽 리브)는 가파르게 올리고, 긴 변 위의 아치(횡단 리브)는 덜 가파르게 올려야 중심부 높이가 같아진다. 첨두아치는 지지제의 간격을 고정하고 아치의 가파름을 조정하면 끝은 뾰쪽해지지만, 아치의 역학적 작용은 그대로였다.

첨두아치 때문에 베이가 정사각형만이 아니라 직사각형일 때도 교차 볼트로 자유롭게 덮을 수 있었고, 심지어는 사다리꼴 평면, 주보랑에 주로 나타나는 긴 마름모 베이, 다각형의 경당이나 수사실 등도 쉽게 리브 볼트로 덮을 수 있었다. 더구나 로마네스크의 원통 볼트나 교차 볼트를 얹을 때는 이를 시공하려면 전체 길이와 폭을 나무틀로 다 짜야 했다. 그런데 리브 볼트를 얹으면 일부 베이를 시공하고 해체하고 다른 베이 시공에 다시 쓸 수 있고, 더구나 볼트 판(웹)도 가벼워져 나무틀에 사용되는 목재량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리하여 고딕 대성당의 내부는 넓고 높은 비물질의 공간을 표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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