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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관현악곡 100선

관현악곡 100선 [81] 라흐마니노프 / 교향시 ‘죽음의 섬’

by 세포네 202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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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le of the Dead Op.29
             라흐마니노프 교향시 ‘죽음의 섬’
             Sergei Rachmaninov 1873-1943


 

화가 뵈클린의 그림을 교향시로 표현
미술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다. 어찌 보면 공간예술인 그림이나 조각을 시간예술인 음악으로 둔갑시킨 것이 더욱 큰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음악의 호소력이 미술보다 크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으로는 흔히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알려져 있지만, 그림의 분위기를 가장 리얼하게 나타낸 음악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이라는 교향시를 들 수 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세계적 작곡가로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비롯한 성악곡 ‘보칼리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35살 때인 1908년에 작곡한 <죽음의 섬>은 무시무시한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도 색다르다. 그가 파리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할 무렵 19세기 스위스의 괴기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1827-1901)의 명화 <죽음의 섬>을 보고 감동하여 교향시라는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뵈클린의 그림으로 <바다구렁이>, <해신>을 비롯한 명화가 많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유달리 <죽음의 섬>을 보고 더욱 큰 영감을 자아낸 까닭은 그가 쇼펜하우어와 같은 염세주의자로서 웃음보다는 오히려 음울한 죽음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마스 후드라는 시인이 쓴 ‘이곳이야말로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가 있다. 이곳에야말로 아무런 소리도 있을 수 없는 고요가 있다.’라는 소네트(14행으로 된 유럽 서정시의 한 형식)도 생각하면서 이 교향시를 썼다고 한다. 화가 뵈클린은 자기의 그림에 관하여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까지도 놀라운 눈을 뜰 만큼 고요와 침묵의 감명을 틀림없이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그림 속의 고요는 죽은 뒤의 ‘없음(無)’의 세계와도 같이 소름끼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죽음의 섬은 햇빛조차 비치지 않는 쓸쓸한 외딴 섬인데, 그지없이 조용한 바다 위에 도사리고 있다. 날카로운 절벽과 우수에 잠긴 듯한 크나큰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져 있어 엄숙하기까지 한 이 그림은 참다운 고독을 보여주고 있다. 한 척의 작은 배에 흰옷을 입은 카론(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는 강의 뱃사공. 저승으로 영혼을 건네주는 일을 함)이 타고 이 무서운 섬으로 향하고 있는 정경은 더욱 큰 전율을 자아낸다.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불안한 인간성을 반영
이런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시 <죽음의 섬> 악보에서 주요 음악적 전개를 알아보자. 첫머리는 8분의 5박자라는 변박자의 느리고도 서글픈 하프 연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섬으로 실어 나르는 카론이 젓는 노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윽고 첼로가 이 죽음의 섬에 부딪치는 물결을 그렸다고 생각되는 분산화음의 반주형(伴奏型)을 나타낸다. 이 물결의 모티프는 이 곡을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운 요소이다. 그 사이에 고뇌가 깃든 듯한 바이올린을 배경으로 첼로가 암시하는 그레고리 성가인 ‘디에스 이레’(Dies irae, 진노의 날)가 단편적으로 어슴푸레 들려온다. 섬에 가까워지면서 소리가 커지고 움직임이 뚜렷해지며, 이때까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죽음의 고통이 나타난다. 이 곡의 중간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갑자기 밝게 나타나지만, 이윽고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에 다시 휩쓸리면서 ‘디에스 이레’가 다시 냉혹하고 집요하게 들리면서 카론의 배는 섬을 떠나 조용히 멀어져 간다. 이 교향시 <죽음의 섬>은 미학에 비추어볼 때 일종의 사실주의적인 정신으로 작곡되었지만, 때로는 인상주의적인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중간 부분을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법)의 차원에서 보면, 바그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그너도 염세주의자였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가 더욱 그에게 공감했는지 모르나, 이 교향시를 지배하는 비극적인 요소는 라흐마니노프의 내성적이며 불안한 인간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 교향시를 감상할 때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보면서 들어보면, 놀랍게도 그림이 음악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림 자체가 생동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림 <죽음의 섬>을 보았지만, 뵈클린은 교향시 <죽음의 섬>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 막스 레거가 뵈클린의 그림을 음악으로 꾸민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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