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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교회적인 회개

by 세포네 2020.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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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교회적인 회개.

 

오늘 사도행전은 드디어 사도 바오로가 회개하는 대목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개는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회개를 시작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프란치스코가 유언에서 회고하듯이

주님께서 시작하게 하신 회개이고 그런 만큼 아주 극적입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회개할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고,

특히 예수께로 돌아가는 회개는 꿈도 꾸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편지에서 얘기하듯 훌륭한 스승 밑에서 율법을 배웠고,

하느님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섬겼기에 자기에게 회개할 것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수를 하느님의 적대자로 여겼기에 그리고

그 잔당들을 완전히 없애려고 했기에 예수께로 돌아설 마음이 없었지요.

 

그러니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의 회개는 주님께서 시작하게

하신 회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바오로나 프란치스코뿐 아니라

우리도 회개를 했다면 그 회개는 주님께서 시작하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회개를 한다면 이렇게 회개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회개이어야 주님께로 돌아서는 회개가 되겠지요.

 

주님께서 이끄시는 회개가 아닐 때 우리의 회개는 자주 주님께로

돌아서는 회개가 아니라 그저 내 마음에 드는 회개이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드는 회개도 있습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성격을 바꾸는 회개,

안 좋은 습관과 관계를 고치는 회개와 같은 거지요.

물론 이런 회개도 해야겠지만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주님께로 돌아가 주님과 일치하는 회개여야지요.

 

아무튼 바오로의 회개는 이런 회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우리가 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교회적인 회개입니다.

교회 공동체와의 화해 말입니다.

 

적대적이었던 관계를 형제 관계로 돌리는 것이 또한 회개지요.

주님과의 관계 개선이 수직적인 회개라면

형제들과의 관계 개선은 수평적인 회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하느님께는 돌아서서 다가가지만 하느님께 다가갈수록

이웃에게 더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회개가 아니고 교회적인 회개도 아닙니다.

 

진정 바오로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서는 회개를 했다면

하늘에서부터 이 땅에까지 우리와 같아지시고 하나 되려고

내려오신 주님과 달리 이웃과 멀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 때문에 바오로를 '나의 형제'라고 부른 하나니아스처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서로가 형제가 되는 회개를 해야지만

진정한 회개이고 완전한 회개가 될 것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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