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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일을 할 것인가, 사랑을 할 것인가?

by 세포네 2019. 7. 21.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오늘 주제는 하느님 시중 또는 하느님 대접입니다.
          오늘 독서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길 가는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느님 천사를 대접하고 시중들게 된 얘기를 들려주고 있고,
          복음은 마르타가 주님께 시중을 든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대접을 잘 한 결과로 상을 받게 되는데 비해
          마르타는 기껏 주님을 초대하고 시중들고는 꾸지람을 듣습니다.
          똑같이 시중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똑같이 시중을 들었다지만 그 시중이 똑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요.
          겉 시중은 같지만 속 시중이 달랐던 것이고,
          속 시중이 다른 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불평입니다
           
          아브라함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끝까지 대접을 하고 시중을 든데 비해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난 뒤 불평을 하는데 그 불평의 내용이
          바로 동생 마리아가 일을 거들지 않은 것에 대한 겁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잘못이라고 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마르타가 오히려 잘못이라고 하시며
          마리아의 몫과 마르타의 몫이 다르다고 판가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 어쩌면 마르타의 불평이 사뭇 맞는 말 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님을 시중드는데 자매가 같이 시중들면
          보기에도 좋고 일을 나누면 힘도 덜 드니 그것이 맞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당연한 불평이라고 마르타가 생각하고 우리도 흔히 그 생각하는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논리로 잘못이라고 하십니다.
          왜 같이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공동체 안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쟤는 공부하는데 왜 나는 주방 일을 하고,
          나는 무거운 책임을 맡았는데 왜 쟤는 아무 책임 맡지 않고
          자기 영성생활만 신경 쓰느냐, 그런 것이 진정 영적인 생활이냐 불평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떤 힘든 일을 사랑으로 같이 하는 것은 좋지만
          모두의 일이 같아야 하고 같은 몫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했다는 주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의 몫만 좋고 마르타의 몫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몫도 좋은 몫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 일을 하는 것도
          좋은 몫이지만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도 좋은 몫이라는 말씀이지요.
           
          사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과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사랑인지 판가름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한다면 그것도 대단한 사랑이고,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경청한 말씀을 반드시 실천할 것이니 말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은 자기 몫을 사랑으로 해야 하는데 일로 하고
          그 결과로 일에 대해 많이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평하는 점입니다.
           
          우선 마르타는 마리아의 것과 비교하여 자기 못을
          좋은 몫이라고 생각지 않고 그래서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자기 일이 사랑이 아니라 천한 노역이 되었고 그래서 불평합니다.
           
          사실 펜대 굴리는 일과 비교하여 자기가 하는 막일을 사랑하기 쉽지 않은데
          그러기에 자기가 하는 일이 천한 노역이나 고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심오한 영성적 이해가 필요하고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는 기도와 헌신의 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더 큰 잘못은

          자기 일을 사랑치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일을 주님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임을 명심하는 오늘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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