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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이스라엘 성지를 가다 (4·끝)

by 세포네 2018. 9. 2.

‘인류 구원의 역사’는 지금도 흐른다


성경을 낳고, 성경을 품은 중동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성경의 땅’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인류사에 개입하신 하느님 섭리를 다룬 ‘하느님의 서사시’ 성경 말씀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남부 광활한 광야 지역에는 구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비옥한 평야와 갈릴래아 호수가 넘실대는 북부 지방에는 예수님 설교가 아직 귓전을 때리는 듯 잘 보존돼 있다. 이곳에서 ‘말씀’을 ‘현장’으로 만나는 순간, 누구나 가슴 뜨거운 전율을 느낄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을 ‘성지 중의 성지’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는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는 침탈과 유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기원전 1000년 유다 민족의 12지파를 최초로 통일한 위대한 임금 다윗왕. 이어 가장 번성했던 솔로몬왕 통치로 찬란한 황금시대를 구가한 이스라엘 왕국은 그러나 통치 80여 년 만에 남북으로 분열된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였던 이스라엘은 이후 3000년 가까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마케도니아, 십자군, 이슬람 민족, 터키, 대영 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민족 국가들의 침탈과 유배의 아픔으로 얼룩지고 만다. 모세의 계약의 궤를 모셨던 ‘하느님의 지성소’ 예루살렘 성전은 붕괴와 재건을 반복한 끝에 이슬람 ‘황금 돔 사원’이 1500년째 자리하고 있다.


▲ 유다인들과 순례객들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다.



▲ 2015년 예루살렘 다윗 도시 바로 옆 주차장 부지 아래에서 '아크라(Acra)'라고 알려진 기원전 2세기 고대 그리스 요새 터.



▲ 예루살렘 시온산에 우뚝 세워져 있는 성모영면기념성당. 이곳 지하 경당에 모셔진 성모님상 앞에는 연일 순례객들이 찾아 기도를 바친다.



▲ 유다인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자정까지 춤을 추며 공동체 신앙을 다지고 있다.



▲ '다윗의 탑 박물관'이 예루살렘 서쪽 성벽을 스크린 삼아 이스라엘 역사를 화려한 영상 기법으로 상영해주는 모습.


예수님 시대 이후 2000년이 지난 오늘날. 도시 전체가 거대 박물관이 된 예루살렘은 ‘종교의 백화점’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길이 6㎞로 둘러쳐진 성곽 안 올드 시티(Old City)는 로마 가톨릭, 유다교, 무슬림이 각기 구역을 나눠 살아가는 ‘공존’과 ‘상생’의 터다. 2만 명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 안 3000여 개 크고 작은 상점과 주거지에 산다. 정오 기도 시간이면 이슬람 모스크 사원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와 성당 종소리가 혼재돼 묘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올드 시티 밖은 유럽 각지에서 ‘반유다주의’로 온갖 차별과 핍박을 받던 유다인들이 19세기 이후 정착해 뉴 시티(New City)를 형성하고 있다.

‘신앙’은 기념과 기억이라고 했던가.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한 뒤 전 세계로 흩어졌던 유다인들이 1948년에 이르러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 세우기까지, 특히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 유다인의 3분의 2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가운데서도 이들이 역사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역사와 믿음을 지키는 ‘유다교 신앙’ 때문이었다. 이들은 철저한 율법의 가르침 아래 매주 토요일이면 온 가족이 ‘안식일’을 지킨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전기도 쓰지 않고 오로지 메시아가 오길 기원하며 토라 경전을 외운다. 특히 오늘날에는 안식일에 가족 식사를 마치고 모세 오경 통독과 기도 후 저녁에 회당에 다시 모여 자정까지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춤을 추는 방식으로 공동체 결속을 키우고 있다.

순례 중 초대받은 예루살렘 시온산의 한 회당에서 ‘유다인의 신앙과 공동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낮에는 회당 한편 강의실에서 ‘고시 공부’하듯 토라를 열심히 외우고 토론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각. 다시 모인 이들은 회당 뜰에서 신 나는 리듬에 맞춰 연신 춤을 췄다. 하느님 아래에 사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이다. 어르신, 어린아이할 것 없이 다 같이 손잡고, 모였다가 흩어지길 반복하며 메시아 도래를 위해 찬양하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하나 된 마음이 한편으론 부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전역이 ‘역사 현장’이요, ‘발굴터’다. 수십 미터 지하에서 신구약 속 역사가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땅이다. 새 건물을 신축하다 이내 로마 시대, 혹은 그 이전의 유물과 요새가 대거 발견되곤 한다. 2009년 갈릴래아 막달라 지방에서 1세기 유다교 회당과 어업 공장터가 대규모로 발견된 데 이어, 2010년에는 나자렛에서 기원전 1000년 시대 주거지가 발굴됐다. 2015년에는 예루살렘 다윗 도시 바로 옆 주차장 부지 아래에서 ‘아크라(Acra)’라고 알려진 기원전 2세기 고대 그리스 요새 터가 발견됐다. 그리스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기원전 168년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모든 유다교 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통제하고자 지은 요새로, 고고학자들이 수세기에 걸쳐 찾던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땡볕 아래에서 3년째 발굴터를 복원 중이다.

유다인들은 아픈 과거를 절대 잊지 않는다. 오히려 유배와 학살, 핍박과 박해의 고통을 더 잘 보존하고자 애쓰고 있다. 유다인들은 밤낮으로 20m 높이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통곡의 벽)에서 자신들의 본래 지성소였지만 현재는 이슬람 사원이 돼버린 ‘황금 돔 사원’ 성벽 밖에서 통곡하며 기도를 바친다. 그 옆에서 많은 순례객이 각자 자신의 소망을 종이에 적어 이곳 바위틈에 끼워 넣기도 한다.

역사를 기리는 방법도 현대화되고 있다. 매일 밤마다 올드 시티 서쪽 요빠 성문(Jaffa Gate) 옆 야외에서 성벽을 스크린 삼아 수십 대의 빔프로젝터가 상영해주는 화려한 영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수천 년 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전 세계 유다인의 모금으로 2005년 개장한 ‘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는 유다인 학살의 아픈 역사를 관람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한 민족만의 발자취가 아니다. 모든 민족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드러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다. 틀림없는 사실은 파괴와 복원을 반복한 예루살렘 성벽과 돌 바닥, 성당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섭리, 예수님의 고뇌와 피땀을 온전히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하늘엔 하느님이 창조한 태양이 뜨고, 땅 위엔 아들 예수님의 발자국이 짙게 남아있다. ‘하느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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