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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이스라엘 성지를 가다 (3)

by 세포네 2018. 8. 26.

고통과 수난의 길 끝에서 주님 부활의 기쁨을 맛보다

 

2000년 전 예수님 시대 때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다.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 치하에서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강제 호구 조사를 당하고, 시도때도없이 로마군에게 멸시받는 등 폭정에 치를 떨고 있었다. 이런 치욕을 두고 보지 못했던 열혈당원과 민중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때마다 많은 유다인이 붙잡혀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학살당했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예루살렘 하늘엔 어김없이 뜨거운 태양이 떴다. 숱한 침략과 전쟁으로 무너졌다가 재건되길 반복한 8m 높이 성벽으로 둘러쳐진 해발 700m 고지의 예루살렘.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역에서의 공생활을 마치고, 무교절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 올리브산에서 본 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 황금 돔 사원과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예루살렘 입성에 앞서 이미 라자로를 살리시고,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치유하신 막바지 기적을 일으키신 터라 많은 유다인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 양옆에 도열해 “호산나”를 외치며 맞았다.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폭정에 항거할 ‘이스라엘의 임금’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멋들어진 말 대신 ‘작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2,46)

예수님의 설교는 예루살렘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불신’과 ‘모함’의 땅이었다. 수석 사제와 율법학자,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은 끈질겼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붙잡아 제거해버릴 심산이었다.

예루살렘 시내가 파스카 축제로 온통 들썩이던 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파스카 음식을 차려주셨다.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님은 붙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셨다. ‘몸’과 ‘피’로 제자들과 새 계약을 맺으신 것이다.

성찬례가 제정된 거룩한 장소인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은 예루살렘 남서쪽 시온산에 있다. 작은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고스란히 제자들에게 내어주셨다. 함께한 제자들을 끝까지 챙기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영광스럽게 되실 예수님의 의중을 잘 알지 못했다.

▲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바위가 있는 ‘겟세마니 성당’에서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겟세마니 동산.


예수님에게도 ‘아버지께 이르는 길’은 고독과 고통의 연속이었으리라. 3년 내내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치유해준 예수님에게도 인간적 번민과 모멸감이 왜 없었을까. 하느님의 큰 뜻은 모른 채 그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려는 유다인들과, 하느님 뜻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비통한 심경이 왜 들지 않았을까.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의 고독은 절정에 달한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하고 기도하신다. 그러자 예수님의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겟세마니 동산은 예루살렘 성벽 밖 키드론 골짜기 넘어 우뚝 솟은 올리브 산자락 아래에 있다. 예수님이 ‘절정의 고뇌’를 맞으신 이곳에 ‘겟세마니 성당’이 있다.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했던 바위가 제대 앞에 자리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성전 분위기가 예수님의 고뇌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300m 떨어진 산 중턱에 ‘주님 눈물 성당’이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곳이다.(루카 19,42-44) 유리창 십자가 뒤로 황금 돔 사원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전히 믿음이 약한 우리 때문에 예수님께선 하늘에서 지금도 이따금 눈물을 흘리고 계시진 않을까.

이윽고 유다의 입맞춤에서 촉발된 포박은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인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사형 선고를 탐탁지 않아 하던 빌라도 총독 앞에서 유다인들은 바라빠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겟세마니 동산 쪽에서 들어갈 수 있는 성 스테파노문(사자문)을 지나 조금 걷다 보면 모욕의 현장인 ‘채찍성당’과 ‘사형선고성당’이 나온다. 사형선고 후 40여 대에 달하는 채찍질에 이어 로마군 조롱 속에 가시관을 쓴 예수님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장소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 수난의 발자취를 따라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바칠 수 있다. 대형 십자가를 빌려주기도 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면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진행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도 거행된다. 크기 2m, 무게 70㎏이 넘는 거칠거칠한 십자가는 피땀으로 범벅이 된 예수님의 살갗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수난의 길’ 위에 내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포갤 때 형언하기 어려운 무거운 마음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들을 먼발치서 지켜봤을 어머니 마리아의 심경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해골산 ‘골고타 언덕’까지 800m. 오늘날 십자가의 길 14처 가운데 제1~9처는 수많은 상점 사이사이와 여러 성당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다가 좁고 혼잡한 거리의 시끄러운 상인들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집중해야 할 정도다.

제10~14처가 있는 ‘주님 무덤 성당’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가톨릭ㆍ그리스 정교회ㆍ콥트 교회 등 여러 종파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주님 무덤 성당’ 입구 오른편에 예수님 십자가가 박혔던 골고타가 있고, 입구 중앙에는 주님 무덤 석관이 있다. 성당 중앙에 자리한 ‘예수님 무덤과 부활 경당’은 매일 수많은 순례객이 조문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주님 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돌 위에 손을 얹고 잠시나마 예수님 고통과 부활의 기쁨을 동시에 봉헌할 수 있다.

▲ ‘주님 무덤 성당’ 내 예수님 무덤과 부활 경당에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고 방문하고 있다.


온갖 모략과 음모를 꾸민 대사제 카야파와 수석 사제들. 금요일 오후 3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목적 달성’을 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흘 후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미 흩어진 제자들 눈앞에 예수님은 친히 방문해 평화까지 기원하셨다. 인간의 모든 죄를 한 아름 안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교는 ‘십자가 종교’요, 예수님 여정은 ‘생명과 구원의 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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